송국리형집자리

송국리형집자리

송국리형집자리 평면 형태

송국리형집자리 평면 형태

1975년부터 1980년대까지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부여 송국리 유적을 표지로 삼고 있으며, 광주 송암동, 서산 휴암리, 영암 장천리, 거창 대야리 유적 등이 조사되면서 그 윤곽이 밝혀지기 시작하였다.

송국리형집자리〔松菊里型住居址〕의 개념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되고 있다. 하나는 부여 송국리 유적에서 확인된 원형 집자리처럼 집자리의 평면형태가 원형을 이루며 집자리 중앙에 타원형구덩이〔娥圓形竪穴〕와 양측에 2개의 중심 기둥, 집자리 내부에 4개의 기둥이 설치되는 형태만을 지칭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평면형태를 원형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타원형구덩이와 2개의 중심 기둥, 4개의 기둥 등이 어우러져 설치되는 방형의 집자리 형태도 포함하는 것이다.

내부시설 중 타원형구덩이, 2개의 중심 기둥, 4개의 기둥 등은 송국리형집자리의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데, 그 형식 분류에 대해서는 타원형구덩이와 기둥의 위치 등의 내부시설에 비중을 두는 관점과 집자리 평면형태를 함께 살피려는 관점으로 대별된다. 타원형구덩이 내부에 2개의 기둥구멍이 있는 것은 휴암리형(休岩里型)집자리로, 타원형구덩이 외부에 2개의 기둥구멍이 있는 것은 검단리형(檢丹里型)집자리로 세분하기도 한다.

이들 주거형태는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각각 서부와 동부의 특징을 이룬다. 이들 외에 휴암리형과 검단리형이 혼합된 형태, 타원형구덩이만 존재하는 형태도 확인되고 있다. 최근에는 대구 동촌동, 아산 명암리, 진주 대평리 유적 등에서 타원형구덩이가 소멸하고 2개의 중심 기둥만이 설치되는 주거형태가 조사되어 대구형(大邱型)집자리라고 명명되기도 하였다. 이 주거형태는 타원형구덩이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송국리형집자리의 변화형으로 간주되고 있다.

송국리형집자리 출토석기류

송국리형집자리 출토석기류

한편 송국리형집자리 중에는 타원형구덩이를 중심으로 4개의 기둥이 설치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4개의 기둥은 대형의 집자리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고 있어 건축 규모의 대형화를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4개의 기둥이 설치되는 주거형태는 6주식으로 변화·발전되면서 주거의 증축이나 확장이 이루어지게 된다.

집자리 내 2개의 중심 기둥과 더불어 타원형구덩이도 여러가지 변화속성을 지니고 있다. 타원형구덩이는 보관 및 저장구덩이〔貯藏孔〕, 작업구덩이〔作業孔〕, 화덕자리〔爐址〕, 집수시설(集水施設) 등 다양한 기능으로 해석되고 있다. 현재까지 1,000여 기를 전후하는 송국리형집자리에서 타원형구덩이는 보관 및 저장구덩이로 이용된 비율이 가장 많으며, 다음이 작업구덩이이다. 화덕과 집수시설은 전체 비율에 비해 극히 적은 편이다. 타원형구덩이와 2개의 중심기둥 및 4개의 기둥 외에 송국리형집자리의 내부시설로는 내벽 기둥구멍, 외벽 기둥구멍, 벽도랑〔壁溝〕, 유인수로(誘引水路) 등이 확인되고 있다.

송국리형집자리의 분포는 대체적으로 수계(水系)를 중심으로 밀집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한강유역을 포함한 경기·강원 지역, 낙동강 상류지역을 제외하면 남한 전역에서 고루 발견되고 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송국리형집자리의 북한계는 안성천 이남으로 알려져 있으며, 남한계는 바다 건너 제주도에까지 이른다.

보령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중서부 평야지역, 금강유역, 영산강유역, 보성강유역 등 중서남부지역에서는 집자리의 평면형태와 관계없이 타원형구덩이 내부에 2개의 기둥구멍이 설치되는 집자리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특히 금강유역권은 송국리형집자리의 전통성이 매우 강할 뿐만 아니라 모든 주거형태가 발견되고 있어, 형태분화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금강유역의 중·하류지역 일원은 송국리형문화의 기원지로 파악되면서 송국리형집자리의 전파 및 파급에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낙동강유역에서는 진주 남강댐 수몰지역의 대단위 발굴조사를 통해 타원형구덩이 외부에 2개의 중심 기둥이 설치되는 주거형태가 보편적으로 축조되었음이 확인되었다. 특히 방형계의 송국리형집자리가 대부분이었으나 최근 원형계 집자리도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낙동강유역권에서 보이는 송국리형집자리는 황강유역의 거창 대야리 유적, 남강유역의 진주 대평리 유적과 더불어 금강유역의 최상류에 자리하는 진안 모정리(여의곡) 유적의 발굴성과를 통하여 송국리형문화가 금강유역의 내륙 깊숙히 파급되었으며, 내륙루트를 통해 낙동강유역으로 확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송국리형문화(松菊里型文化)의 편년에 대해서는 부여 송국리 유적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과 부채모양청동도끼〔扇形銅斧〕의 거푸집〔鎔范〕 등을 통한 기원전 6세기∼4세기의 연대관이 지배적인 의견이었으나, 최근에는 토기 유물의 형식학적인 연구성과와 방사성탄소연대결정법에 의거하여 기원전 8세기까지 상향조정되고 있는 추세이다. 송국리형문화의 하한연대는 세형동검(細形銅劍)과 덧띠토기〔粘土帶土器〕가 출현하는 기원전 4세기대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광주 신창동 유적에서 이음독널〔合口式甕棺〕로 사용된 송국리형토기, 순천 연향동(대석) 유적에서 삼각형 덧띠토기가 출토되는 송국리형집자리, 제주 삼양동 유적의 송국리형집자리 등으로 미루어 보아 기원을 전후한 시기까지 송국리형문화가 잔존했음을 알 수 있다. (이종철)

참고문헌

  • 송국리형토기에 대한 일고찰(조현종, 홍익대 석사논문, 1989년)
  • 송국리형 주거분류시론(이건무, 일조각, 1992년)
  • 송국리형 주거지에 대한 연구(이종철, 호남고고학보 12, 2000년)
  • 금강유역 송국리형 묘제의 연구(김승옥, 한국고고학보 45, 2001년)

동의어

송국리형주거지(松菊里型住居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