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가와식토기

구로가와식토기

[ 黑川式土器 ]

일본 큐슈(九州)지방 죠몬만기(繩文晩期)의 대표적인 토기형식으로 가고시마켄(鹿兒島縣) 히오키군(日置郡)에 있는 구로가와(黑川) 동굴유적 출토토기를 표식으로 한다. 기본적으로 죠몬만기 전반의 고료식토기(御領式土器)의 형식을 그대로 이은 것으로 무늬가 생략되었을 뿐 선행토기와 별 차이가 없다. 출토된 유적은 북부 큐슈의 오사유키(長行) 유적, 누키가와(貫川) 유적, 후쿠오카켄(福岡縣)의 사이다(才田), 시모바루(下原) 유적 등이 있다.

기종을 보면 검은간토기〔黑色磨硏土器〕류의 정제천발(精製淺鉢)과 패각조흔의 조제심발(粗製深鉢)로 대표되며, 사발모양토기〔燔形土器〕·접시〔皿〕·항아리〔壺〕도 있다. 구로가와식토기의 항아리·얕은바리〔淺鉢〕·굽다리접시〔高杯(臺付淺鉢)〕·2조(條)의 새김무늬〔刻目文〕를 주체로 한 새김덧띠무늬〔突帶文〕가 있는 항아리·조제(粗製)의 민무늬항아리〔無文壺形土器〕라는 기종구성은 이다즈케Ⅰ식토기(板付Ⅰ式土器)의 성립까지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고 지속된다.

얕은바리는 동체부의 굴곡이 완만하며, 구연부에 문양띠가 없어지고, 직립부 내외는 침선(沈線)으로 대체되어 있다. 그 안에는 리본과 지느러미 모양의 돌기가 있으며, 나비넥타이 모양의 점토를 붙인 것도 있다. 깊은바리〔深鉢〕 등에도 나비넥타이 모양새의 돌기로 장식되는 경우가 흔하고, 리본·지느러미 모양의 장식 또는 마디모양덧띠무늬〔節狀帶文〕는 이 시기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항아리는 동체부 상반부가 꺾어져 짧게 외경하는 구연으로 이어지는데, 구연부 외면에는 문양이 없고, 조흔을 남기는 사례가 많다. 저부는 원판붙임으로 제작되고 외연이 벌어져 안정된 형태이다. 구로가와식토기 중에는 구연부 밑에 구멍을 뚫은 것이 있어서 한반도의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도 있다. 이것은 농경을 매개로 한·일간의 문화교류·교섭이 이미 죠몬만기 전반기의 구로가와식토기 단계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북부 큐슈의 오사유키 유적에서 구로가와식 시기에 해당되는 B지구 죠몬만기 유물포함층에서 구멍무늬토기가 검출되었다. 아리아케해(有明海) 연안지역의 나가사키(長崎), 쿠마모토(熊本)등에서도 구멍무늬토기가 출토되었다. 가고시마켄 에노키바루(哥木原) 유적에서 구멍무늬가 있는 깊은바리모양토기가 발견되었는데, 이들 토기는 구로가와식토기 후반 형식인 것이다. 동해에 면한 산인(山陰) 지역 시마네켄(島根縣) 사타코부(佐太講式) 조개무지〔貝塚〕와 이타야(板屋) 유적 등에서도 구멍무늬토기가 검출된다. 또 오사유키 유적에서 가까운 히에다가와(稗田川) 유적의 A4區 모래층에서 죠몬만기 중엽의 구로가와식을 주체로 한 토기군과 같이 출토채집된 비죠몬토기 중에, 기형으로 보아 검단리Ⅰ식토기(檢丹里Ⅰ式土器)로 볼 수 있는 토기가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죠몬만기 전반기부터 한반도에서 복합농경기술이 일본열도 각지에 다방면으로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시마바라만(島原灣)과 겐카이나다(玄海灘) 연안에서 육도(陸稻), 조·피 등의 잡곡복합농경(雜穀複合農耕)이 한반도 남부로부터 전해진 흔적이 보인다. 이들 지역의 유적은 화산의 산기슭 또는 대지 위에 입지하고 있어 논농사(水田)의 입지로서는 적당하지 않은 곳이므로, 밭벼(陸稻)재배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주위의 계곡, 습지와 경사지에서는 소구획수전(小區劃水田)을 이용한 벼재배의 가능성도 있다. 한반도 남부 울산 무거동 옥현 유적을 참고로 한다면 빗물을 이용하여 소구획 수전에서 벼재배(天水畓)를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정한덕)

구로가와식토기(黑川式土器) 일괄 (1~5;福岡縣廣田, 6,7;同三雲サキゾノ, 8~16:長崎縣宮の本, 17,18:鹿兒島縣黑川, 19:長崎縣礫石原)

구로가와식토기(黑川式土器) 일괄 (1~5;福岡縣廣田, 6,7;同三雲サキゾノ, 8~16:長崎縣宮の本, 17,18:鹿兒島縣黑川, 19:長崎縣礫石原)

참고문헌

  • 黑川式土器(小池史哲, 大川淸 外, 『日本土器事典』, 雄山閣, 199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