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의 역사

아테네의 역사

리시크라테스 기념비

리시크라테스 기념비

아테네에 인간이 최초로 살았던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전 1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도시가 처음 역사에 등장한 것은 기원전 1400년경이지만 이 시기 이미 이곳은 미케네 문명의 중심지였다. 아크로폴리스와 키클롭스 성벽(Cyclopean Walls) 안의 잔해들이 이를 증명한다. 기원전 1200년경 다수의 미케네 도시들은 도리아인들의 침략에 의해 파괴되었고 이후 재정립되었다.

기원전 900년경 아테네는 바다에 인접한 지정학적 장점을 이용하여 지중해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기원전 6세기 초까지는 아테네에 민주개혁의 토대를 마련했고 기원전 508년 클리스테네스(Cleisthenes)에 의해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며 아테네 정치의 전반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다. 또 이 시기 아테네의 해군력이 강력해졌고 이를 바탕으로 499년 벌어진 이오니아의 반란을 지원할 수 있었다. 그리스에 파견된 참주들의 반란이 원인이 된 이 반란은 페르시아전쟁 중 소아시아 지역에 속해있는 그리스 내 지역들이 페르시아에 대항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반란은 실패했고, 아테네의 반군에 대한 지지는 기원전 492년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Darius I)를 격분시켰다. 이는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략에 원인이 되었다.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함께 페르시아의 침공을 물리쳤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이후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황금시대로 접어들었으며, 동시에 철학, 드라마, 역사 집필, 예술학, 정치개혁 등 문화적 중심지로도 거듭났다. 하지만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제국주의적 야망이 탐탁치 않았고 이는 기원전 431년부터 404년까지 스파르타 주도의 펠로폰네소스와 아테네 주도의 델로스동맹 간 전쟁을 야기시켰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잘 알려진 이 전쟁은 27년 동안 지속되었고, 전쟁에서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하면서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황금시대가 막을 내렸다.  전쟁 말기 및 전후에는 한동안 민주정체 체제가 중단되고 과두정치 체제가 수립되었으나, 이는 오래가지 못하고 민주정치로 되돌아갔으며 오히려 제도적으로는 전후에 더욱 철저해졌다. 델로스동맹은 해산되고 함선은 몰수되었으며, 피레아스와 아테네를 둘러싼 장성(長城)은 파괴되었다. 아테네는 그리스의 지배자 지위에서 물러나고 경제적으로도 한동안 곤궁하였으나 여전히 그리스의 유력한 폴리스 중 하나였다.

따라서 스파르타의 강압적인 지배에 불만을 품은 테베·코린토스 등의 폴리스들이 아테네를 앞세워 코린토스전쟁(BC 395∼BC 386)을 일으켰다. 이 전쟁에서 스파르타는 패하였으며, 그 결과로 장성도 재건되고 아테네는 에게해의 여러 폴리스와 제2회 해상동맹을 체결하였다. 아테네는 델로스동맹에서 실패한 경험을 살려 여러 시책을 취하였으나, 역시 동맹 도시들의 불만을 사서 동맹시전쟁을 겪어야 했다. 이 무렵 북방에 마케도니아가 등장하여, 필요한 곡물의 태반을 흑해 연안에서 들여오던 아테네로서는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데모스테네스 등의 반(反)마케도니아파(派)는 민회(民會)를 움직여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에게 선전포고하였다.  이 시기 마케도니아 왕국 또한 아테네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했다. 기원전 338년 그리스 보이오티아의 카이로네이아 지역에서 카이로네이아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쟁에서 마케도니아군은 그리스의 아테나이, 테베 연합군에 크게 승리하여 그리스 도시국가연합을 격파하였다.

아테네는 패전 후에도 자치와 독립이 용인되었으며, ‘헬라스 연맹’에도 참가하였다. 그러나 완전한 자주독립을 누리는 폴리스로서의 아테네 역사는 여기서 막을 내리게 된다. 기원전 197년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에서 로마군과 마케도니아 군 사이에서 키노스케팔라이(Cynoscephalae) 전투가 벌어진다. 로마군은 대승을 거두었고 패배한 마케도니아 전군은 그리스에서 철수하였다. 로마가 마케도니아를 물리치면서 아테네는 그리스의 다른 도시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로마 속주(屬州)의 하나가 되었다. 이 시대에도 문화적으로 아테네는 그리스 및 지중해 세계의 학문·예술의 중심지로서 계속 그 위상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4세기 초, 로마제국이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기면서 아테네에 대한 정지적 영향력은 자연히 줄어들었고, 로마제국의 그리스도교화로 인해 아테네의 문화적 번영은 빛을 잃게 되었다.

서로마의 몰락 후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의 지배 하에 들어갔고, 13세기에는 프랑크 공국의 일부가 되었다. 1458년 오스만 제국에 점령당했으며, 그로부터 400년 동안 유럽사 밖으로 밀려났다. 오스만 제국의 통치 하에 도시의 영향력은 감소했다. 그리스가 독립하기 전까지 아테네는 그리스의 일부가 되지 못했다. 오스만 제국의 통치 시절, 그리스도교회로 사용되던 여러 신전은 이슬람교의 사원이 되었으며, 고대 건축의 파괴가 진행되었다. 1687년에는 베네치아군이 아테네시를 공격하여 화약고로 쓰이던 파르테논신전을 포격하였기 때문에 큰 피해를 입었다. 그리스독립전쟁(1822∼1829) 때에는 독립군과 투르크군이 시의 쟁탈을 되풀이하였다.

1834년 그리스가 독립하면서 아테네는 수도가 되었다. 1896년에는 최초의 근대 올림픽을 개최하였다. 그리스-튀르키예 전쟁 후인 1922년 아테네로 많은 이오니아 난민들이 밀려들었고, 1950년대와 1960년대에도 도시는 빠르게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