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로마제국

[ Roman Empire ]

요약 이탈리아 반도 및 유럽 그리고 지중해를 넘어 북아프리카와 페르시아와 이집트까지 지배하였던 고대 최대의 제국(帝國).
로마극장 유적지

로마극장 유적지

로마제국의 역사는 BC 8세기 무렵부터 시작되는데 그리스에서 지중해를 건너 이주해간 한 집단이 테베레 강 근처에 정착하면서 로마의 역사가 시작된다. 설화에 의하면 테베레 강에 두 아이(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버려졌는데 이들은 늑대의 젖을 먹고자란다. 두 형제는 다툼으로 로물루스가 레무스를 죽이고 로물루스는 세력을 넓혀 약 3000여 명의 주민으로 로마(Roma)라는 작은 도시국가를 건설한다. 7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이 일대에서 목축과 농업을 주업으로 했는데 이들을 규합하여 왕으로 선출된 로물루스는 최고 의결기구인 원로원을 창설하였다. 로마는 로물루스 이후 왕정기(王政期, 기원전 753~509)를 거치게 되는데 7명의 왕이 로마를 통치하면서 국가의 기초를 다졌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왕의 독재적인 1인 지배에 저항하였고 공화정을 열게되었다. 이는 로마가 거대한 대제국으로 발전하는데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있는 변화였으며 그리스적인 민주주의 도시국가 운영제도에서 따온 영향이었다.

BC 510년부터 공화정기(共和政期)가 시작되는데 로마의 발전을 이끈 중요한 시기이다. 로마는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지중해 연안의 모든 지역을 지배했고 북아프리카, 아시아까지 확대되었고 북유럽 영국까지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로마가 비대해지고 정복지를 속주로 삼아 통솔하는 1인의 권력이 커지면서 권력이 집중되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였다. 그는 뛰어난 군사전략가로 아시아와 북아프리카 북유럽 등을 정복하면서 속주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로마 원로원을 무력화시키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공화정 체제였지만 군사독제 체제하에서 황제와 같은 권력을 행사하였다. 로마인들은 카이사르의 영광스러운 업적에 열광하였지만 한편으로는 공화정에 대한 신념 또한 높았다. 브루투스(Marcus Junius Brutus)는 카이사르를 암살하면서 공화정을 지키려고 했지만 결국 로마는 다시 왕정으로 전환되었다.

옥타비아누스는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는 칭호를 받으면서 황제가 되었고 로마는 제정기(帝政期)로 들어간다. 로마는 영토를 더욱 확장하고 5현제를 거치면서 역사상 인류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라고 평가하는 팍스로마나(Pax Romana)를 실현했다. 로마는 정복지의 문화와 신을 인정하는 다문화, 다신교 정책으로 제국의 통합과 번영을 누렸지만, 로마에 저항하는 민족은 철저하게 응징하였다. 그리고 하나로 통합된 거대 경제권을 형성하면서 많은 교역이 발생하여 도로와 항구가 발달하였다. 그러나 제정기에 등장한 네로, 카라칼라 등의 황제는 무수한 사람을 학살하며 큰 오점을 남겼고 로마제국의 황제권위가 실추했다. 이에 무력을 가진 군인이 제위를 차지하면서 황제들은 권력다툼으로 단명하게 되었고, 군인들의 충성을 얻기위해 남발된 재정은 국가를 위기로 내몰았다. 결국 프랑크족, 알라마니족, 고트족 등 게르만족이 국경을 넘어 침입해왔고 페르시아가 강성해져 소아시아 국경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이를 감당할 수 없었던 로마제국은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가이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Gaius Aurelius Valerius Diocletianus,245~316)가 황제가 되면서 로마제국은 4등분되어 통치되었다. 제국이 너무 크기 때문에 1명의 황제가 통치하기에 너무 크고 복잡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로마제국은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정치투쟁은 가열되었다. 마침내 395년 로마제국은 동·서로 분열되어 이탈리아,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를 지배했던 서로마제국은 476년에 멸망하고 소아시아 지역을 지배했던 비잔티움제국(동로마제국)은 1453년까지 존속했다. 로마가 이룩한 지중해 세계의 통일은 세계사상 불멸의 의의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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