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케네 문명

미케네 문명

그리스 본토에는 테살리아의 문화로 대표되는 초기 그리스문화가 있었지만, 북방 산지로부터 남하해온 아카이아인은 이 선주민을 정복, BC 2000년을 전후하여 본토 남부의 각지에 소왕국을 건설하였다. 미케네·티린스·오르코메노스·필로스 등이 그 주요한 곳이었다. 그들은 서서히 선진문화를 흡수하고 군사력·경제력 등을 충실히 하여 본토에서의 지위를 확실하게 다져나갔으며, 특히 BC 1600년경부터 급속히 그 힘을 증가하여 남쪽 크레타를 대항할 만큼 되었다. 

미케네 문명 본문 이미지 1

그 중에서도 미케네는 가장 강대하여 본토 여러 세력의 중심적 존재가 되었으며, 특히 크레타의 붕괴 후 지중해 각 지역과의 교류에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 왕궁은 미케네문화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낸 것으로 낮은 산등성이 위에 바위산을 등지고 구축되었으며, 크레타궁전의 개방성과는 대조적으로 성새(城塞)로서의 성격이 강한 것이었다.

주문(主門)으로서 유명한 ‘사자문(獅子門)’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장려한 궁륭묘(穹窿墓)와 원형의 묘군(墓群)도 성벽 내에 만들어졌으며, 또한 몇 개의 주실(主室)에는 중앙에 노(爐)를 가진 메가론형식이 확인되기도 한다. 궁전의 벽화 등, 개개의 미술활동에는 크레타문명의 영향이 분명히 엿보이지만, 전반적인 미케네미술에는 양식화의 경향이 뚜렷하며, 또한 권위표상성(權威表象性)을 중시한 점에서 크레타문화와는 매우 다르다. 도기(陶器)의 무늬에 인물을 주제로 한 것이 나타나는 것도 이 시대에 들어서이다.

미케네 문명의 멸망 원인에 관해서는 많은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 주된 학설은 BC 1200년경부터 그리스 본토에 도리아인이 남하해오자 이를 막지 못함으로써 붕괴되었다는 설인데, 선형문자가 해독되면서 도리아인이 미케네 문명 멸망 전에 그리스로 남하했다는 내용이 밝혀지기도 했다. 그 외 다른 민족의 침입이나 지진, 가뭄 등의 재난을 원인으로 지목한 설도 있다. 미케네 문명이 종말을 고한 뒤, 그리스는 암흑시대로 접어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