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두환

[ 全斗煥 ]

요약 군인, 정치가.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81년 1월 창당된 민주정의당의 총재가 되어 2월 개정된 새헌법에 따라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재임기간 중 군부독재라는 비판을 받았다.
전두환

전두환

출생-사망 1931.1.18 ~ 2021.11.23
본관 완산(完山)
일해
활동분야 군사, 정치
출생지 경남 합천

1931년 경상남도 합천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완산(完山)이며, 호는 일해(日海)이다. 1951년 대구공업고등학교를, 1955년 육군사관학교를 제11기로 졸업하였다.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소위로 임관하여 25사단에서 근무하였고, 1960년에는 미국 육군보병학교를 수료하였다. 1961년 육군본부를 거쳐 5·16군사정변 직후 박정희(朴正熙)에게 발탁되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 민원비서관, 1963년 중앙정보부 인사과장, 1966년 제1공수특전단 부단장, 1867년 수도경비사령부 제30대대장, 1969년 육군참모총장실 수석부관을 지냈다. 1970년 백마부대 제29연대장으로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였고, 1971년 제1공수특전단 단장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1973년 준장으로 진급하였다. 이후 1976년 청와대경호실 차장보가 되었고, 1977년 소장으로 진급하였다. 1978년 제1사단장을 지낸 후 1979년 국군 보안사령관이 되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자 12월 12일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으로서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체포하고, 12·12사태(군사반란)을 일으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1980년 중장으로 진급하고, 이어 중앙정보부 부장서리가 되었다. 같은 해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와 함께 5·18 민주화운동을 강제로 진압하고 정권을 장악한 뒤, 그해 6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국가보위입법회의 상임위원장이 되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8월부터 사회악 일소를 목표로 삼청계획 5호를 시행하여 많은 사람을 강제 연행하였고, 분류에 따라 강제 노역 삼청교육대 입소 등의 처분을 내리는 등 인권탄압을 벌였다. 이어 8월 5일 대장으로 진급하고, 22일 예편하였는데, 16일 퇴임한 최규하(崔圭夏) 대통령의 후임이 되기 위함이었다. 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선으로 제11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제11대 대통령 선거는 장충체육관에서 간접선거로 진행되어 ‘체육관 선거’로도 불린다.

전두환의 제11대 대통령 취임 후, 12월 27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유신헌법을 일부 수정하여 대통령 임기 7년 및 간접선거 선출, 대통령의 국회의원 1/3 추천, 법관 임면권 폐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새 헌법을 공포하였다. 전두환은 1981년 1월 창당된 민주정의당(民主正義黨)의 총재가 되었고, 2월 개정된 새 헌법에 따라 대통령 선거인단의 간접선거로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981년 3월 3일 전두환은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하였고, 제5공화국이 출범되었다.

전두환은 ‘정의사회 구현’과 ‘민주복지국가 건설’을 국정 목표로 설정하였다. 우선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하여 환율과 금리를 인상하고 물가 인상률을 한 자릿수로 만들었다. 정부의 규제를 완화하는 한편 중화학공업에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부실기업을 정리하였다. 1986년부터 저유가, 저환율, 저금리의 3저 호황이 열려 투자와 수출을 장려하였다. 그 결과 수출의 급증으로 3년 동안 286억원의 흑자를 달성하였다.

외교 방면에서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악화된 한미관계를 개선하였다. 미국은 핵무기 개발 포기와 시장 개방을 요구하였는데, 이를 전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또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 대통령의 대소련 강경 정책에 동참하여 한‧미‧일 삼각안보체제를 강화하였다. 이러한 전두환의 대미정책은 대외 지지기반 확보 측면에서 이루어졌다고 이해된다. 반면 5·18 민주화운동 때 시민들을 공격한 군대의 투입을 미국이 묵인하였다는 이유로 광주, 부산, 서울 등의 미문화원에 방화사건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일본에게는 한국이 일본의 안전보장에 기여하였다는 근거로 경제 협력 차관을 도입하고자 하였다. 일본이 차관 요구에 난색을 표하자 미국이 한국와 일본을 중재하였고, 1983년 전두환과 일본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 なかそね やすひろ) 총리의 정상회담으로 약 40억 달러의 차관 도입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일본에서 차관을 도입하고자 시도함으로써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였다.

한편 1983년 10월 전두환이 미얀마를 방문하였을 때, 아웅산 묘소에 참배하기로 하였는데 이를 사전에 인지한 북한 공작원이 폭탄 테러를 가한 아웅산묘소폭파암살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로써 남북관계는 급격하게 냉각되었다. 그러나 다음 해인 1984년 한국에 대홍수가 발생하자 북한이 수해 복구 물자 지원을 제안하여 수용되었고, 1985년 9월에는 이산가족 상봉과 예술공연단 상호 방문이 이루어졌다. 1986년에는 북한의 수공(水攻)을 방비한다는 이유로 금강산댐과 평화의 댐 건설 기금을 모금하였다.

1981년 5월에는 학생과 시민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하여 관제 축제인 국풍’81이 개최되었다. 또한 스크린(Screen), 섹스(Sex), 스포츠(Sports)의 3S 정책을 시행하여 야구와 축구 등에 프로리그가 출범하였다. 1981년에는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확정지었고,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였다.

그러는 한편 대학교에 경찰을 상주시키며 학생들을 감시 및 체포하였고,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 ‘제3자 개입 금지법’ 등을 만들어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탄압하여 부림사건(釜林事件) 등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1983년 학원 자율화를 발표하며 경찰을 대학교에서 철수시키고 해직 교수의 복직 및 제적생 복학을 허용하였으나,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가 그치지 않자 다시 대학에 경찰을 진입시켰다.

1980년 7월 김대중(金大中)이 북한의 사주에 따라 내란을 도모하였다고 조작하여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가 국제 사회의 압력에 따라 미국으로 추방시켰고, 12월 민주정의당, 민주한국당(民主韓國黨),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 등의 야당을 창당하여 야당의 정부 견제 기능을 박탈시켰다. 1983년 5월에는 언론 통제와 학생 및 정치인 탄압에 대해 김영삼(金泳三)이 단식 투쟁을 벌였다.

이후 1985년 1월 김영삼은 신한민주당(新韓民主黨)을 창당하였고, 2월에 열린 제12대 총선거에서 직선제 개헌을 내세운 신민당이 제1야당이 되었다. 그러던 1987년 1월 박종철고문치사사건이 언론에 알려졌고, 많은 국민이 집회에 나서 직선제 개헌과 민주화 요구에 나섰다. 이에 전두환은 1987년 여야 개헌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직선제 개헌 요구를 거부하고 간선제를 명시한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4·13호헌조치를 선언하였다. 전두환의 4·13호헌조치가 알려지자 시민들의 반대가 극에 달하며 6월 민주항쟁의 단초가 되었다. 전두환은 군대를 투입하여 반대 시위를 진압하려 하였으나 미국과 내부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민주정의당의 대통령 후보 노태우(盧泰愚)가 직선제 개헌의 수용을 골자로 하는 시국 수습 방안인 6·29민주화선언을 발표하며 6월 항쟁이 일단락되었다.

1987년 12월 16일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가 당선되었고, 전두환은 1988년 2월 퇴임하였다. 퇴임 후, 국정을 운영하는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는 국가원로자문회의의 의장이 되었다. 1988년 11월 제5공화국의 비리와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 규명을 목적으로 하는 제5공화국 청문회가 열리자 강원도의 백담사(百潭寺)에 들어가 2년여간 칩거하였다. 1995년 12·12 군사반란 가담, 뇌물 수수 등으로 기소되어 1997년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 원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사면되며 징역은 면하였으나 추징금은 완납하지 않았다. 2021년 11월 29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 한국의 역대 대통령
이 름 재임기간

제1~3대 대통령

이승만

1948.07 ~ 1960.04

제4대 대통령

윤보선

1960.08 ~ 1962.03

제5~9대 대통령

박정희

1963.12 ~ 1979.10

제10대 대통령

최규하

1979.12 ~ 1980.08

제11~12대 대통령

전두환

1980.09 ~ 1988.02

제13대 대통령

노태우

1988.02 ~ 1993.02

제14대 대통령

김영삼

1993.02 ~ 1998.02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1998.02 ~ 2003.02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2003.02 ~ 2008.02

제17대 대통령

이명박

2008.02 ~ 2013.02

제18대 대통령

박근혜

2013.02 ~ 2017.03

제19대 대통령

문재인

2017.05 ~ 2022.05

제20대 대통령

윤석열

202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