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파키스탄

다른 표기 언어 Pakistan 동의어 파키스탄 회교 공화국, Islamic Republic of Pakistan
요약 테이블
위치 서남아시아
인구 245,209,815명 (2024년 추계)
수도 이슬라마바드
면적 881,889㎢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파키스탄 회교 공화국 (Islamic Republic of Pakistan)
기후 건조기후, 고산기후 , 온대하우기후
민족 구성 신드인, 펀자브인, 파슈툰족
언어 신디어,우르두어,펀자브어
정부/의회형태 군사정권 / 양원제
종교 이슬람교(97%), 힌두교, 그리스도교
화폐 파키스탄 루피 (PKR) 환율계산기
국화 수선화
대륙 아시아
국가번호 92
GDP USD 303,993,000,000
인구밀도 309명/㎢
전압 240V/50Hz
도메인 .pk

요약 아시아의 국가. 인도대륙 북서부에 있다. 수도는 이슬라마바드이다. 파키스탄의 대표적인 언어는 펀자브어이며, 전국민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언어는 없다. 문맹률이 높아 라디오가 가장 중요한 통신매체 역할을 하며, 관영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20개 이상의 언어로 방송하고 있다. 국민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이다. 1인당 GNP는 아시아에서 가장 낮은 편이다. 주요작물은 밀이며, 사탕수수도 널리 재배된다.

목차

접기
  1. 자연환경
  2. 국민
  3. 경제
  4. 정치와 사회
  5. 문화
  6. 역사
  7. 파키스탄과 한국과의 관계
    1. 외교
    2. 경제·통상·주요 협정
    3. 문화교류·교민 현황

남북길이 1,600km, 동서길이는 880km이다. 서쪽은 이란, 북쪽은 아프가니스탄, 북동쪽은 중국, 동쪽과 남동쪽은 인도, 남쪽은 아라비아 해와 접해 있다.

파키스탄(Pakistan)의 국기
파키스탄(Pakistan)의 국기
지도
파키스탄 위치

자연환경

굴미트에 위치한 파수(passu) 호수
굴미트에 위치한 파수(passu) 호수

파키스탄은 지형학적으로 대고원, 발루치스탄 고원, 인더스 평원, 사막지대의 4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최북단에 자리잡은 대고원은 히말라야 및 트랜스히말라야 산맥(카라코람 산맥파미르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발 8,611m의 K2와 해발 8,126m의 낭가파르바트와 같은 세계 최고봉들을 포함하고 있다.

서부와 남서부를 이루는 발루치스탄 고원은 해발 약 300m의 중단된 고원으로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많은 산맥들이 가로지르고 있다.

동쪽으로 펼쳐진 면적 52만㎢의 인더스 평원은 파키스탄에서 가장 번창하는 농업지역으로 파키스탄 북부 포트와르 고원 가장자리에서 남쪽으로 아라비아 해까지 1,000∼1,100km 뻗어 있다.

남동부에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탈·촐리스탄·타르 등의 사막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 3개 사막은 모두 인도 서부 타르 사막의 북쪽 또는 서쪽 연장지대이다.

주요강은 남서쪽으로 흐르는 인더스 강이며, 그 지류로는 체나브·젤룸·라비·수틀레지 강이 있다. 퀘타 지역과 북부지역에서는 강한 지진이 자주 일어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다.

대륙성기후로 기온의 변화가 심한 것이 특징이다. 1월(겨울)기온은 인더스 평원의 14℃에서 연안지역의 20℃, 높은 산악지역(460m 이상)의 -20℃ 사이를 오르내리며, 7월(여름)은 높은 산악지역의 0℃에서 연안지역의 29℃, 남동부 사막지역의 35℃ 사이를 오르내리는 등 편차가 심하다. 연안지역은 남서계절풍의 영향으로 약 150∼200㎜의 비가 내리며, 강유역은 380㎜, 북부 산악지역은 1,000㎜ 이상의 비가 내린다. 강우량은 해마다 달라지며 홍수와 가뭄이 연이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인더스 강 하류 강변을 따라 어느 정도 숲이 형성되어 있지만, 숲으로 뒤덮인 산비탈을 제외하면 대체로 억센 풀, 마른 덤불, 관목밖에 자라지 않는다. 북부 산악지역에는 야생 동물이 많이 서식하는데, 그 가운데 불곰·히말라야검은곰·표범 및 여러 종류의 야생 양이 있다. 파키스탄에는 석탄·철광석·크로마이트·석고·구리·암염·대리석 및 거의 개발되지 않은 다른 여러 가지 광물자원이 있다. 가장 가치 있는 자원인 천연 가스는 세계 총매장량 가운데 약 0.5%를 차지한다.

파키스탄(Pakistan)
파키스탄(Pakistan)

국민

파키스탄 국민은 여러 토착 주민들이 혼혈된 복잡한 구성을 보인다. 이들의 인종적인 특징은 서북부로부터 끊임없이 흘러들어왔던 아리아인·페르시아인·그리스인·파슈툰족(파탄족)·무갈인의 영향을 받았으며, 아랍인의 흔적도 남아 있다.

공식 언어는 우르두어와 영어이지만, 지역 방언의 특색도 강하다. 대표적인 언어는 인구의 절반이 사용하는 펀자브어이며, 그밖에 파슈토어·신드어·사라이크어·우르두어·발로치어가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란에서 온 난민들도 고유의 언어권을 형성한다. 90% 이상 국민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이며, 소수의 힌두교도와 그리스도교도가 있다.

파키스탄의 인구는 2024년 기준 2억 4,520만 9,815명이고, 인구밀도는 309명/㎢이다. 기름진 인더스 강 유역과 북동부 및 북부의 주요지류들 유역에 인구가 집중되어 있다. 이에 비해 서부와 남서부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다. 총 인구의 약 38%가 도시에서 살지만, 농촌주민들이 인구가 많은 몇몇 도시로 이주해 주택 부족현상이 생기고, 빈민가가 형성되었으며 교통난도 발생했다. 인구의 1/3 가량이 15세 미만이다.

경제

주로 농업·경공업·서비스업에 바탕을 둔 혼합경제로 발전도상에 있다. 1970년대초 중공업 가운데 많은 부분이 국유화되었으나 경영부실로 쇠퇴했다. 1974년에 은행이 국유화되었다. 국민총생산량(GNP)은 인구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나 1인당 GNP는 아시아에서 가장 낮은 편이다.

GNP 가운데 1/5을 차지하는 농업 부문에 노동력의 절반 이상이 종사하고 있다. 생산의욕이 저조한 소작인들이 대부분이라 농업 생산량은 계속 낮은 편이다. 정부에서는 소작인수를 줄이기 위해 토지개혁과 진보적인 조세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경작지가 전국토의 1/4에 이르며, 대부분 관개에 의존하고 있으나 관개시설이 비효율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1960, 1970년대에 개량 품종을 이용하여 밀 생산량이 대폭 증대되었으며, 주요작물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생산량 증가에 힘입어 농산물의 자급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주요작물은 밀이며, 사탕수수도 널리 재배된다. 주요 수출작물은 목화와 쌀이다. 1인당 가축수는 많은데 사료가 부족하고 관리가 소홀하여 식용고기와 우유 생산량은 여전히 낮다. 가장 많은 가축은 염소와 양이며, 소·들소·낙타가 그 다음으로 많다. 삼림은 전국토면적의 4%에 못 미치며, 벌채된 나무의 대부분이 연료로 사용된다. 인도양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어업도 중요하다. 대부분 정부가 운영하는 광업은 GNP의 약 2%를 차지하며, 석유·철·강철은 대량으로 수입한다. 적은 양의 석탄과 철광석, 약간의 석유, 상당량의 천연 가스를 채취하며, 넓은 지역에 걸쳐 석회암·크로마이트·석고를 채광한다.

제조업은 GNP의 1/6을 차지하며, 노동력의 1/8을 고용한다. 주요제품은 직물이며, 특히 면직물은 대표적인 수출품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소규모 산업이 정부에서 운영하는 중공업보다 생산성이 높다. 무역과 상업은 노동력의 1/6을 고용하고 있다. 주요수출품은 원면·무명실·면직물·쌀·피혁·모직융단으로서 일본·미국·독일·영국·이탈리아 등지로 수출하며, 주로 이들 나라에서 비(非)전기 기계류, 광유, 식용유, 곡류, 차량 등을 수입해온다. 전력의 거의 절반이 수력발전소에서 공급되며, 나머지 대부분은 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된다. 원자력발전소에서도 일부 생산되고 있다.

파키스탄에는 실업이 만연되어 있다. 이민으로 숙련 노동력이 줄어들었으며, 전문가·기술자·의사 등이 부족한 실정이다. 해외에 나가 일하는 노동자들의 송금이 주요 외환 수입원이다. 예산 세입은 주로 관세와 소비세로 거두어들이며, 세출은 공채상환·국방비·보조금·교육비·보건비 및 지방 정부에 대한 보조금으로 지출된다.

파키스타의 화폐 루피(Rupee)
파키스타의 화폐 루피(Rupee)

정치와 사회

여러 해 동안 군사정권의 지배가 계속되었으나 1988년 의회선거에 의해 순수한 민간 정부가 다시 들어섰다. 1973년 개정된 헌법에 따라 대통령은 국회에서 다수의 의석을 얻은 정당의 지도자를 총리로 임명하는 권한을 가진다. 사법부의 최고기관은 대법원이며 각 주에 고등법원을 두고 있다.

1980년대에 이슬람 법(샤리아)에 따라 판결하는 연방 샤리아 재판소가 세워졌다.

사회복지사업은 일부에 편중되어 있으며, 보건시설과 의료진이 부족해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각한 전염병이 널리 퍼져 있고, 식량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

전체인구 가운데 1/4 정도만 읽고 쓸 줄 알며, 여성의 경우 더욱 비율이 낮아져 1/6에 그친다. 초등교육은 무상이지만 학교에 입학하는 아동은 전체 학령기 아동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정기적으로 검열을 받고 있는 신문은 거의 정치 관련 뉴스만 싣고 있다. 문맹률이 높아 라디오가 가장 중요한 통신매체 역할을 하며, 관영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20개 이상의 언어로 방송하고 있다.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Islamabad)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Islamabad)

문화

최근에 국내외적으로 이슬람 이념이 강조되면서 이슬람 문화를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고 있다. 일종의 찬송가인 '카우왈리'가 크게 유행하고 있으며, 마치 음악회를 열듯이 '무샤이라'라는 대중적인 시낭송회를 열고 있다. 우르두어·신디어·파슈토어 시인들은 영웅으로 칭송을 받는다. 서구식의 문학은 파키스탄 내의 거의 모든 현대어로 씌어지지만 특히 우르두어·발로치어·파슈토어·펀자브어·신디어·영어로 많이 씌어진다. 우르두어권 문학에서 뛰어난 인물은 19, 20세기의 시인이며 철학자 무하마드 이크발로서 현대 파키스탄의 정신적인 아버지로 칭송을 받고 있다.

폐샤와르(Peshawar) 대학교
폐샤와르(Peshawar) 대학교

역사

발루치스탄 지역에 처음으로 사람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BC 3500년경부터이다.

BC 4000년대말 많은 이주민들이 발루치스탄에서 동쪽 인더스 강 유역으로 이주하여 하라파 같은 여러 도시 문명을 이룩했다. 그러나 인더스 문명은 BC 1500년경 갑자기 끝났고, BC 2000∼1000년경 아리아어를 쓰는 민족이 이 지역으로 이주해왔다.

BC 6∼5세기의 불교 문헌에는 인더스 강 유역에 있었던 간다라 국(國)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BC 327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 아케메니아 제국의 변경지역을 정복하기 위해 간다라에 들어왔다. 뒤이어 BC 3∼2세기에 마우리아 제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그후 1, 2세기에는 쿠샨(쿠샤나)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힌두 문화 형성기(320∼540)에는 굽타 왕조가 인더스 강 유역을 포함한 인도 북부지역을 지배했다.

8세기에 처음으로 이슬람교도 정복자들이 발루치스탄에 들어왔고, 그뒤로 이 지역에서 그들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13세기에 이슬람 세력이 통합되면서 델리를 중심으로 한 술탄국이 생겨나 16세기초까지 인도 대륙 대부분을 계속 지배했다. 1526∼1761년 무굴 왕조가 인도를 지배했다.

1757년 영국동인도회사가 다른 식민지 세력을 몰아낸 후 무굴 제국을 정복하여 1세기 동안 동인도회사가 인도 대부분을 지배했으나 1857년 벵골군 소속의 인도인 신병들이 반란을 일으켜 1858년 영국정부가 관할하게 되었다. 영국 식민지시대에 지금의 파키스탄(이슬람) 지역은 행정적으로 인도(대부분 힌두교 지역)의 일부였다. 인도 민족주의가 처음으로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힌두교도가 지배적이었던 인도 의회(1885)와 전(全)인도 이슬람 연맹(1906)을 통해서였다.

1857년 이후 10년간 이슬람교도들은 영국과의 협력을 추구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스만 제국이 분할되자 영국의 지배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이슬람 민족주의 지도자는 모하메드 알리 진나(1876∼1949)였다.

1940년 진나가 이끄는 이슬람 연맹은 영국령 인도를 힌두 국가(인도)와 이슬람 국가(파키스탄)로 분할하자는 의견에 찬성했다. 1947년 8월 영연방에 속한 자치령으로서 파키스탄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탄생했으며 진나가 총독이 되었다.

파키스탄은 인도 영토를 사이에 두고 지리적으로 서로 떨어진 동파키스탄과 서파키스탄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교적 후진 지역인 신드, 발루치스탄, 북서변경지방이 파키스탄에 속하게 되었으며, 펀자브와 벵골은 파키스탄 지역과 인도 지역으로 갈라졌다. 한편 카슈미르는 계속 분쟁지역으로 남아 있어 이 지역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긴장이 점점 고조되면서 1965년 인도와 전면전을 벌이기도 했다.

동파키스탄에서는 벵골인 자치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으며, 마침내 1971년 동·서 파키스탄 사이에 내전이 일어났다.

인도군의 침입에 힘입어 동파키스탄은 1972년 방글라데시라는 독립국가로 분리되었으며, 서파키스탄은 파키스탄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유지했다. 1971년부터 파키스탄을 통치하던 줄피카르 알리 부토는 1977년 모하마드 지아 울 하크 장군이 주도한 군사 쿠데타로 축출되었다.

1988년 지아가 죽은 뒤 부토의 딸 베나지르가 그해 실시된 의회 선거에서 승리하여 이슬람권 국가에서 최초의 여성 총리로 취임했다. 그러나 베나지르는 친인척의 권력남용, 독직과 내각부패를 이유로 굴람 이샤크 칸 대통령 군부의 압력에 의해 1990년 8월 쫓겨났고, 그녀의 당은 보수파 연합에 패배했다.

선거에서 승리한 이슬람 민주동맹(IDA)의 지도자 나와즈 샤리프가 부토 축출 이후 세워진 과도정부에서 권력을 이양받아 파키스탄 사상 5번째 민선정부 총리로 취임했다. 그러나 1993년 3월 이샤크 칸 대통령과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그는 총리직에서 쫓겨났고 그후 의회해산, 내각총사퇴의 불안정한 정국이 이어지다가 다시 총리 불신임안이 불법처리되는 등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바드샤이 모스크(Badshahi Mosque), 라호르지방에 위치
바드샤이 모스크(Badshahi Mosque), 라호르지방에 위치

파키스탄과 한국과의 관계

대한민국과 파키스탄의 국기
대한민국과 파키스탄의 국기
한.파키스탄 문화교류계획서 서명
한.파키스탄 문화교류계획서 서명
외교

1968년 1월 총영사관 수립에 합의한 뒤 양국 수도에 총영사관을 설치했으며, 정식 외교관계는 1983년 11월 7일 수립됐다. 북한과는 1972년 11월 9일 수교했다. 파키스탄에서는 1985년 지아 울 하크 대통령을 시작으로 2003년 무샤라프 대통령, 2012년 자르다리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 회담을 가졌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파키스탄은 1980년 이래 한국으로부터 20만~25만 달러 규모의 무상원조를 받았으며, 2012년까지도 한국의 다양한 규모의 사업을 통해 무상원조를 받았다. 이와 별개로 파키스탄과 한국의 교역관계는 꾸준히 유지되고 있으며 한국의 주요 수출품은 합성수지, 윤활유, 의약품, 건설중장비, 석유화학제품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나프타, 면사, 주류, 순면직물, 가죽 등이다. 2023년 기준 한국의 대파키스탄 수출액은 8억 5,072만 달러이며, 대파키스탄 수입액은 1억 6,908만 달러이다.

파키스탄은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와 FTA 협정을 맺고 있지만, 한국과는 아직 검토 중에 있다. 그 밖에 무역협정(1983), 해운협정(1984), 과학 및 기술에 관한 협정(1985), 문화협정(1985), 사증면제협정(1985), 이중과세 방지협정(1987), 투자보호 협정(1988), 항공협정(1996) 등이 체결돼 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한국과 파키스탄의 대사관에서는 양국의 문화 교류를 위한 여러 행사를 개최하며 각국의 음식과 문화를 공유하고 즐기는 등 더욱 정교한 관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3년 기준 한국에는 12,410명의 파키스탄 국적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참고문헌

  • ・ 코트라
  • ・ 법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