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

다른 표기 언어 Bangladesh
요약 테이블
위치 인도반도 북동부
인구 173,854,349명 (2024년 추계)
수도 다카
면적 147,570㎢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방글라데시 인민 공화국 (People'S Republic Of Bangladesh)
기후 아열대몬순성기후
민족 구성 벵골족(98%)
언어 벵골어
정부/의회형태 중앙집권공화제 / 다당제&단원제
종교 이슬람교(83%), 힌두교(16%)
화폐 방글라데시 타카 (Tk) 환율계산기
국화 수련
대륙 아시아
국가번호 880
GDP USD 285,817,000,000
인구밀도 1,181명/㎢
전압 110V/ 60Hz,220V / 50Hz
도메인 .bd

요약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국가 중 하나. 국민 대다수는 벵골어를 쓰는 벵골인이고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이다. 1947년에 인도가 분리되면서 나라는 파키스탄의 동벵골 지방이 되었다가 나중에 동파키스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것은 파키스탄의 5개 지방 중 하나로, 파키스탄의 다른 4개 지방으로 구성되는 파키스탄 영토로부터 1,800㎞가량 떨어져 있다. 1971년 독립국 방글라데시가 수립되었다. 독립 이후 대부분의 산업을 국유화했으나 1983년에 거의 모든 분야가 다시 사유화되었다. 전체 노동력의 3/5가량이 농업에 종사한다.

목차

접기
  1. 자연환경
  2. 국민
  3. 경제
  4. 정치와 사회
  5. 문화예술
  6. 역사
  7. 방글라데시와 한국과의 관계
    1. 외교
    2. 경제·통상·주요 협정
    3. 문화교류·교민 현황
방글라데시의 국기
방글라데시의 국기

수도는 다카(Dhākā: 옛날에는 Dacca라고 썼음)이다. 북위 20°34∼26°38′, 최북단과 최남단 사이의 거리가 약 625km이고 동경 88°01∼92°41′, 동서길이는 약 305km이다.

남쪽은 벵골 만에 면하며 남동쪽은 미얀마와 경계를 이룬다. 인도와는 서쪽과 북쪽으로 서벵골 주, 북동쪽으로 아삼·메갈라야 주, 동쪽으로 트리푸라·미조람 주와 접해 있다. 인도 아대륙의 북동쪽에 있는 파드마 강(갠지스 강)과 자무나 강(브라마푸트라 강)의 삼각주 지역에 위치한다.

'벵골의 땅'이라는 의미의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국가 중 하나이며, 국민의 대다수는 이슬람교도이다. 벵골이라는 역사적 지역의 동쪽 부분으로서, 그 지역은 이후 인도의 웨스트벵골 주를 따라 영국령 인도에서 벵골 지방을 형성했다.

1947년에 인도가 분리되면서 나라는 파키스탄의 동벵골 지방이 되었다가 나중에 동파키스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것은 파키스탄의 5개 지방 중 하나로, 파키스탄의 다른 4개 지방으로 구성되는 파키스탄 영토로부터 1,800㎞가량 떨어져 있다. 1971년 국가는 방글라데시라는 독립국가가 되었다.

지도
방글라데시

자연환경

방글라데시의 자연경관은 갠지스 강(또는 갠지스 강과 브라마푸트라 강의 합류로서 파드마 강이라고도 함), 브라마푸트라 강, 메그나 강 등이 합류하면서 형성된 수계와 그 주변지형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리적으로 갠지스-브라마푸트라 삼각주 평원의 동부 2/3에 해당되는 지역을 차지한다. 북쪽으로는 갠지스 강과 브라마푸트라 강의 합류점 위쪽에 쐐기 모양으로 펼쳐진 3각형 지대, 동쪽으로는 수르마 강의 유역평원까지 포함한다. 수르마 강 유역의 충적평야 동쪽 끝은 대체로 남북으로 뻗은 능선으로 연결되며 이 능선이 남동부의 미얀마와 경계선을 이루는 산의 일부를 이룬다. 옛 충적층에 있는 소규모의 고지대를 제외하면 평원은 대체로 해발고도 9m에도 미치지 못하고 경사도 아주 완만한 신(新)충적층 평지이다. 국토의 90% 이상이 평지로 구성되어 있다. 평원과 함께 호수·습지·늪지대 등도 중요한 지형적 특색이다. 기복이 적은 평지에는 강들이 둔덕을 형성하면서 수많은 지류로 갈라져 흐른다. 우기에는 범람으로 인해 수백㎢에 이르는 지역이 피해를 입는다.

방글라데시 중남부는 쇠퇴해가는 강의 옛 삼각주 지역에 해당하는 서부와 퇴적 및 생성작용이 활발한 강에 의해 새로 형성된 삼각주가 자리잡은 동부로 이루어져 있다. 남부 해안지대는 염성소택지로서 홍수림이 울창하게 형성되어 있다. 노아칼리와 치타공 가까이에 있는 좁은 남동 해안지대는 구충적층과 최근의 충적층이 함께 어우러진 곳이다. 남동해안 동쪽에는 점토와 혈암을 비롯한 부드러운 암석으로 이루어진 낮은 산지인 치타공 구릉지대가 자리잡고 있다. 남북으로 뻗은 능선은 대체로 고도가 610m 미만이고 최고봉은 케오크라동(927m)이다.

방글라데시의 기후와 강우량은 계절풍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6∼10월의 5개월 동안 벵골 만으로 방출되어 나가는 수량의 80%에 달하는 비가 내리는데 이는 연간 총강우량의 75%를 차지한다. 치타공 고지대는 카르나풀리 저수지를 이루는 캅타이 댐에 발전소가 있는 곳으로 국내 수력발전용량 대부분을 생산하기 때문에 수리학적인 중요성이 특히 크다. 연강우량은 서부 고지대에서 1,000∼2,000㎜, 북동부의 실헤트 구릉지대에서는 3,810㎜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기온은 겨울 최저 21℃, 여름 최고 35℃ 사이에 분포한다. 4∼5월의 초여름과 우기가 끝나갈 무렵에는 시속 160km가 넘는 바람과 6m를 넘는 파고를 동반하는 사이클론을 비롯해서 강한 폭풍이 불어닥쳐 방대한 해안저지대가 침수되는 경우가 잦다. 태풍에 대한 기록이 보존되기 시작한 18세기초 이래로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폭풍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중 1737, 1876, 1970년 3차례의 폭풍으로 81만 5,000명이 사망했다. 국토의 2/3 이상이 경작가능한 지역으로 주로 저지대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 가운데 1/5은 관개시설이 갖춰져 있다.

국토의 1/6은 삼림으로 덮여 있으며 식물과 동물상이 풍부하고 다양하나 귀한 종인 벵골호랑이, 타이완표범, 아시아코끼리 등은 모두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국민

국민 대다수는 벵골어를 쓰는 벵골인으로 대부분 스스로를 이슬람교도라고 공언한다. 비교적 소수만이 힌두교도이며 남동부의 치타공 구릉지대에는 주로 불교도인 차크마족·마르마족·트리푸라족(티프라)·음로족 같은 부족들이 살고 있다.

출생률과 사망률은 세계 평균수준을 훨씬 웃돌고 연간 인구성장률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인구성장율이 2~3%를 웃돌았지만, 이후로는 점차 감소해 2000년대 이후로는 2% 이하의 인구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평균기대수명은 남자 71세, 여자 74세이다. 아시아에서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에 속하며 남아시아에서 도시화가 가장 안 된 편이다. 전인구의 36.5% 가량만이 도시지역에서 생활한다. 최대도시는 다카이며 그밖에 치타공과 쿨나가 주요도시로 손꼽힌다.

경제

방글라데시는 중앙에서 경제전반을 관리하고 농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개발도상국이다. 국내총생산(GDP)의 2/5가량을 농업이 차지하고 있으며 서비스와 광업 및 제조업이 그뒤를 잇는다. 국민총생산(GNP)의 성장속도는 인구증가속도에 미치지 못하며 1인당 GNP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경작지에서는 생산량이 증가추세에 있는 밀과 쌀을 비롯한 곡물을 주로 재배한다. 그밖에 사탕수수·황마·콩류·과일(바나나·망고·파인애플)·근채류·채소·담배·참깨·차 등도 재배한다. 젖소를 비롯하여 소·염소·물소·양 같은 가축사육도 하고 있다.

벵골 만의 해안수역은 아주 훌륭한 해양어장이다. 전국토에 분포하는 수많은 하천하구·늪지대 등은 민물낚시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총어획량의 대부분이 여기에서 수확된다. 또한 가장 풍부한 광물자원인 천연 가스를 비롯해서 바닷물을 이용한 염전·석회석·고령토 등이 생산되며, 타이타늄 철광, 모나자이트, 지르콘 등을 함유한 비중이 큰 무기질모래, 질이 낮은 석탄, 토탄 등의 광상도 있다. 석유화학·금속공업과 보조공업에 이용되는 다른 광물은 수입에 의존한다.

제조업은 농산물이나 수입된 원자재 가공에 집중되어 있다. 주요공산품은 비료(일부는 천연 가스로 생산), 황마, 얇게 재압연한 강철제품, 가공되지 않은 강철 주괴, 종이 및 신문용지, 정제설탕, 석유제품, 화학제품, 차[茶], 식품, 면사, 섬유 등이다. 전력은 4/5 이상을 화력발전에 의존하며 나머지는 수력발전으로 생산한다. 방글라데시의 콕스바자르에는 세계에서 길이가 가장 긴 120km의 해변이 있다. 치타공과 다카는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드는 도시이다.

1971년에 독립한 후 대부분의 산업을 국유화했으나 1983년에 다시 거의 모든 분야가 사유화되었다. 전체 노동력의 3/5가량이 농업에 종사하며 나머지가 무역·서비스·제조업 부문 등에서 일한다. 1970년대에는 많은 국민들이 쿠웨이트·오만·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 등의 건설 및 석유산업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해외로 나갔다.

이들이 보낸 송금은 1980년대까지 주요수입원으로 국가경제에 큰 몫을 했다. 경제는 해외원조에 의존도가 높으며 주요 원조제공처는 세계은행과 미국이었다. 국가재정 수입의 약 1/3이 관세이며 그밖에는 소비세·판매세·소득세 등으로 충당하고 있다. 경상지출은 교육(총지출의 1/5), 일반행정, 국방, 국채상환, 사법과 치안, 보건과 인구억제 등의 분야에 지출된다.

철도는 정부소유로 운영되며 국영도로(트럭 운송)회사가 하나 있다. 도로는 1/10 정도만이 포장되어 있을 뿐이다. 비교적 내륙수로가 잘 발달되었고 5개의 주요하항과 2개의 해항이 있다.

다카와 치타공에는 국제공항이 있다. 수출액은 수입액의 2/5에 불과하다. 주요수출품목은 기성의류, 황마제품, 가공되지 않은 황마, 생선, 새우, 개구리 다리, 가죽 및 가죽제품, 차(茶) 등이다. 주요 수출대상국은 미국·이탈리아·영국·일본 등이다. 기계류, 수송장비, 밀, 화학제품, 원유, 비식용 기름, 정제유, 식용유, 쌀 등을 주요수입국인 일본·미국·싱가포르·홍콩 등에서 수입한다.

방글라데시아의 수출품 컨셉이미지
방글라데시아의 수출품 컨셉이미지

정치와 사회

방글라데시는 영연방에 소속된 독립 공화국이다. 1972년 제정된 후 곧 개정된 헌법에 따르면 명목상의 정체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5년 임기로 보통선거에서 선출되는 대통령이 행정부의 수반이 되며 대통령은 단원제 국회에서 선출된 의원들로 내각을 구성한다. 사실상 방글라데시는 군부의 계속된 통치로 인해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발휘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선거결과는 여러 다른 정치집단을 통합해 조직된 단일정당인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BNP)에게 언제나 우세하게 나타났다. 사법부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위원으로 이루어진 최고법원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등교육은 5년간 무상으로 실시되지만 의무적인 것은 아니다. 학령기 아동의 1/2가량만이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식자율은 세계의 평균 수준보다도 극히 낮은 편이다. 고등교육기관으로는 4개의 일반 종합대학교, 농업·공학·기술을 가르치는 2개의 전문교육대학교, 이슬람대학교가 있다. 1971년에 독립한 이후로 언론과 방송매체는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국회의사당
방글라데시의 국회의사당

문화예술

방글라데시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는 문학이 손꼽힌다. 1913년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벵골의 아름다운 전원풍경에 관한 수많은 시와 단편소설을 썼으며,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갠지스 강에 관한 것이다. 타고르의 시 〈우리의 황금 벵골 Our Golden Bengal〉은 방글라데시의 국가가 되었다. 또 한 사람의 저명한 20세기 작가인 카지 나즈룰 이슬람은 사회정의와 벵골 민족주의를 주제로 한 시를 썼다. 이 2명의 벵골인은 극작가로서도 중요한 공헌을 했다.

방글라데시의 사전
방글라데시의 사전

역사

인도의 초기 산스크리트 문학(BC 1000경)에서 삼각주 지대에 자리잡은 방(Vanga/Banga : 여기서 벵골과 방글라데시라는 말이 유래함)라는 왕국에 대한 기록이 발견되었다.

BC 4세기 무렵 벵골은 인도 마우리아 제국(BC 325경∼185)에 속했으며 이때 불교가 전래되었다. 4세기에는 인도 북동부 마가다 지역에 자리잡은 굽타 왕조로 넘어갔으며 750∼1200년에는 토착 벵골 왕조인 팔라 왕조와 세나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힌두 왕조인 굽타 왕조를 제외하고는 장기간에 걸쳐 불교국의 통치를 받았으나 10세기까지 단연 힌두교가 우세했다.

이슬람교도들이 10세기가 끝나갈 무렵 인도 북부로 침략해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1206년 델리에서는 슬라브 또는 맘루크라고 알려진 왕조가 수립되었다. 1338년 벵골은 델리 술탄 왕조에서 분리되어 독립했으며 한참 뒤인 1576년 무굴 제국에게 정복되었다. 무굴 제국이 통치하던 기간에 유럽 상인들이 벵골 지방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1651년 영국 동인도회사는 벵골에 공장을 세웠다. 벵골에서 무굴 제국의 지배력이 약화되면서 벵골의 이권에 대한 동인도회사의 관심이 고조되었다.

플라시 전쟁(1757)에서 동인도회사의 로버트 클라이브는 벵골의 태수(nawab)를 굴복시키고 영국의 이권에 더 호의적인 인물을 벵골의 후계자로 세웠다. 1765년 영국 동인도회사는 벵골의 세금징수 권한을 확보했으며 이로써 영국의 실질적인 인도 지배가 이루어졌다. 영국의 정책은 벵골인들에게 많은 경제적 고통을 안겨주었다. 벵골 지방의 수공업, 특히 모슬린 산업은 영국 기계로 만든 제품들이 도입되면서 큰 타격을 받았으며 대부분의 천연자원들이 영국으로 유출되었다.

영국의 정책으로 힌두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 사이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이슬람교도의 압력으로 영국은 1905년 벵골을 분할해 이슬람교도가 지배하는 동(東)벵골을 만들었다. 1년 뒤 다카에서는 인도 이슬람교도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공동조직인 이슬람교도 연맹(Muslim League)이 결성되었다. 힌두교도들이 과격한 반응을 보이자 분할정책은 1912년 철회되었으나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의 갈등은 더욱 악화되어갔다.

1947년 영국이 인도대륙에서 물러나면서 동벵골은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의 일부로서 동파키스탄이 되었으나, 우세한 서파키스탄과 1,600km나 떨어져 있었으며 언어와 문화도 서로 다른 채 분리되어 있었다. 벵골의 민족주의적 감정은 점차 고조되어 갔다. 정당 아와미 연맹(Awami League)은 공개적으로 벵골의 자치권 획득을 위한 운동을 펴 나갔으며 1970년 국회에서 다수의석을 획득했다.

그러나 파키스탄 정부는 국회 소집을 지연시켰고 이어 폭동이 일어나고 게릴라전이 벌어졌다. 수백 만 명이 인도로 피난했으며 인도는 마침내 벵골인들의 편에 서서 전쟁에 가담하게 되었다. 서파키스탄은 패배했으며 1971년 12월 16일 수도를 다카로 한 독립국 방글라데시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입은 피해는 무척 컸으며 독립 이후에도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초대 대통령 세이크 무지부르 라만이 1975년 암살되었고 그의 후계자 지아 울라만 역시 1981년에 암살되었다. 1982년 또다시 일어난 군사 쿠데타를 호사인 모하마드 에르샤드가 진압하고 1984년 대통령이 되었으나 1990년에 물러났다.

사나르가온 박물관
사나르가온 박물관

방글라데시와 한국과의 관계

외교

방글라데시는 한국과 1973년 12월에 수교에 합의했으며 한국은 1975년 3월에 주 방글라데시 대사관, 방글라데시는 1987년 2월에  주한 방글라데시 대사관을 개설했다. 방글라데시는 한국과 북한을 고려한 한반도 문제에 관해서는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1985년 6월에 대통령 에르샤드의 방한 이후 1995년 수상 지아, 1997년 외무부장관 아자드, 1999년 교육부장관 사디크, 대법원장 카말이 방한했으며, 2000년대 들어 2010년 5월에 하시나 총리, 2012년 6월에 법무부장관 아메드가 방한한 이후 장관급 고위 인사의 방한이 이어졌다. 한국은 2010년 3월에 국회 사무총장 박계동, 2011년 2월에 환경부장관 이만의의 방문이 있었다.

한편 방글라데시는 1973년 12월에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했고, 북한은 1974년 9월에 주 방글라데시 대사관을 개설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1973년 6월 고려개발(주)의 방글라데시 진출을 시작으로, 한국기업들은 방글라데시의 건설산업에 깊이 관여해 왔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1978년에 한국 기업의 진출 및 상담을 돕기 위해 방글라데시에 다카무역관을 설치했으며, 2017년 기준 200개가 넘는 한국 기업이 방글라데시에 진출해 있다. 방글라데시의 대한국 수출액은 2023년 기준 3억 9,832만 달러, 수입액은 13억 9,303만 달러이다.

정부 차원에서 한국은 방글라데시의 경제개발을 협력하기 위해 1995년부터 2001년까지 약 3백만 달러를 무상 원조했으며,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Fund)으로 1993년부터 2016년까지 11억 1,600만 달러의 차관을 제공하여 교통·통신·수자원 사업에 협력했다. 또한 1973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은 방글라데시에 6억 9882.5만 달러, 방글라데시는 한국에 3519.2만 달러를 투자했다.

양국이 체결한 협정으로는 경제협력협정(1973), 항공협정과 문화협정(1979), 사증(비자)면제협정(1983), 이중과세방지협정(1983), 이중과세방지협정, 투자보장협정(1986), 경제기술협력협정(1993), 과학기술협력협정(1995), 군수·방산협력MOU(2004), 에너지협력 MOU(2007), 무상원조기본협정(2014) 등이 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한국은 방글라데시 개발협력사업(양자간 무상협력사업)을 전담·수행하기 위해 1995년에 한국국제협력단(KOICA)방글라데시 사무소를 개설하고 1991~2016년 간 약 1억 737만 달러를 지원하여 무상 보건의료, 모자보건체계강화, 직업훈련강화, 대형재난의 신속한 대응 시스템 구축 사업을 벌였다. 방글라데시에는 한글학교 3개가 설립되어 있어 교민의 한글교육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방글라데시한인회가 결성되어 있어 한인사회의 발전과 권익보호를 도모하고 양국의 이해와 친선을 증진하고 있다.

2023년 기준 방글라데시에는 1,904명의 재외동포가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방글라데시 수도인 다카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에는 2023년 기준 19,264명의 방글라데시 국적의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참고자료

  • ・ 외교부
  • ・ 주 방글라데시 대한민국 대사관
  • ・ 한국무역협회 통계
  • ・ 외교부 재외동포 현황(2023년 기준)
  • ・ 법무부 등록외국인 국적별 현황(2023년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