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연극

다른 표기 언어 theatrical art , 演劇

요약 무대에서 연기를 통해 전달하는 종합예술.

목차

접기
  1. 정의
  2. 구성요소
  3. 종류
  4. 연출과 연기
  5. 연극과 사회

그리스어 'theaoma'의 어원을 따져보면 '보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것으로 예로부터 연극에서는 공연성이 중시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연극이 대본의 문학성을 충분히 살리고 또 대본을 능가하기 위해서는 무대미술·조명·춤·음악 등의 여러 예술과 배우의 연기가 연출가의 종합적인 미적 판단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렇듯 연극은 다양한 예술이 복잡한 연습과정을 통해 조화되고 통제되어 나타나는 순간예술이다.

연극
연극

정의

연극은 흔히 '배우가 희곡의 등장인물을 대신해 무대 위에서 관중에게 몸 동작과 말로 창출하는 예술'이라고 정의된다. 그러나 이 정의는 불충분하며 이에 더하여 배우·희곡·무대·관객에 관해 우선 명확한 정의가 내려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테면 아마추어 극이나 학생극·인형극 등도 훌륭한 연극임에는 틀림없지만 배우라는 말에 상식적인 개념을 쓰고 있는 한, 위의 정의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희곡의 경우도 보통은 대사를 위주로 하고 지문의 보조를 받아서 의미를 전달하지만, 팬터마임이나 무언극같이 대사가 전혀 사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무대도 서양식 프로시니엄 무대를 기준으로 하느냐 또는 많은 민속극의 경우처럼 공연이 행해지는 장소로 보느냐에 따라서 연극인지 놀이인지를 구분하기 애매한 경우도 있다. 이렇듯 연극을 한마디로 완전하게 정의하기란 매우 어렵다. 실제로 민족과 시대에 따라서 연극의 형태는 천차만별이다.

연기·의상·장치·무대 등의 양태뿐만 아니라 극본의 양식, 연기자의 실체 및 연극의 사회적 지위나 흥행조직에 따라서도 연극은 달리 구분된다. 더구나 연극은 종합예술일 뿐만 아니라 1회적인 순간예술이므로 역사적인 연구나 실증적인 연구를 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 연극이나 한국의 가면극에서 볼 수 있듯이 가상의 진실이나 핵심적인 사고(극본)를 한 장소(무대)에서 구경꾼(관객)을 대상으로 연기자가 실연해보인다는 기본 틀은 변하지 않는다.

연극은 궁극적으로 모방놀이(make-believe)의 세계이다. 사실성을 배제한다는 아방가르드 연극에서조차 나름대로 창조된 세계에 몰입한다. 또한 아무리 사실적인 연극이라 할지라도 현실과 다른 가상의 공간을 가진다.

구성요소

연극은 배우·작가·연출가를 비롯해 여러 무대기술의 도움을 받아 구성된다.

즉 연극 공연은 극작술·연기술·연출·무대의상·조명·무대미술과 그밖에 제작기획 및 광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협동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여러 가지 도움이 필요하므로 그 안에 우선순위에 따른 상하구조가 생기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희곡의 구성요소를 6가지로 보았는데, 그 상하구조를 플롯·인물·사상·언어·음악·흥미의 순으로 구분했다. 그는 인과율에 따른 플롯의 전개에 중점을 두었으므로 극작술을 우위로 꼽았다. 음악과 볼거리는 부차적인 요소로 보아, 무대미술이나 효과를 경시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극은 궁극적으로 공연성보다는 문학성에 치중한 연극이다. 그러나 많은 동양연극은 우리의 가면극과 같이 플롯의 긴장감보다는 볼거리를 우선으로 하며, 음악은 전체적인 공연의 템포 조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플롯은 대부분 이미 널리 알려진 공동체의 이야기이며, 관중은 연기와 공연의 다양성을 즐긴다. 이러한 연극에서는 배우가 가장 우선시되어 긴 수련기간을 통해 일생 동안 한 역할에 전념하며, 연기술에는 종종 특수한 무대화장술까지 포함된다. 극단은 종종 최연장자인 배우에 의해 운영된다. 이렇듯 대부분의 동양연극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했던 6대 요소의 상하구조를 오히려 거꾸로 강조해 흥미나 음악이 부각되고 있다.

오늘날의 연극은 상업성이 강조되기 때문에 제작자가 크게 부각된다. 상업연극에서 제작자는 연극의 모든 경비를 조달하고 계획한다. 그러므로 제작자의 위치는 공연여부를 결정할 만큼 비중이 크다.

국가의 보조를 받는 국립극장에서는 이상적으로 연출가가 최고의 권위를 갖는다. 그는 공연의 선정에서부터 대본의 해석과 연기지도 및 공연무대의 각종 효과에 대해 최종적인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다양하고 새로운 무대기술이 도입되고 무대의 통일과 조화가 강조되면서 연출가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이와 같이 연극의 구성요소 가운데 어떤 요소를 강조하느냐에 따라 연극의 형태가 달라진다. 상업연극에서는 제작자를, 서양의 고급 희극이나 비극에서는 극적 긴장감과 카타르시스를, 많은 동양연극에서는 의상과 음악이 중요시된다. 그러나 배우·연출가·제작자 및 무대효과를 높이기 위한 무대미술가나 조명가·의상가 등 연극에 실제적으로 종사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도 연극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관객이 있어야 한다.

관객의 반응은 실제로 공연을 완성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관객이 객석에 가득 차지 않으면 재정적인 실패를 떠나서라도 공연은 생기를 잃게 된다. 아무리 잘 연출되고 준비된 공연일지라도 이를 마지막으로 완성시키는 것은 배우와 관객과의 호흡이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의 등장으로 연극 고유의 특징인 이 공동체적 경험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제의적 연극도 소외된 현대사회에서 연극의 공동체 경험으로 이를 극복하려는 한 시도이다.

종류

연극은 동서고금을 통해 그 종류와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우선 시대별로 나누어보면 원시연극·고대극·중세극·근세극·근대극 및 현대실험극으로 구분된다. 원시연극은 원시사회에서 행해졌던 종합적인 주술적 예능의 단계로, 관객과 배우가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서양연극에서는 원시연극을 그리스 극이 형성되기 이전인 BC 6세기 이전의 연극을 가리킨다. 동양의 경우 중국은 6, 7세기 당(唐)나라의 희곡이 출현하기 이전의 연극을, 한국은 삼국시대 이전의 연극을 가리킨다. 일본의 원시연극은 7세기초 기악이 전래되기 이전의 연극을 지칭한다.

고대극으로는 서양의 그리스 로마 극이나 동양의 인도 산스크리트 극 등이 유명하다.

중세극은 서양의 경우 그리스도교 전례극 및 종교극이 지배적이었으며, 동양은 공연성이 강조된 연극이 나라마다 다양하게 발달했다. 근세는 통일국가 성립에 따른 국민극이 태동하고 직업극단이 확립된 시대로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극과 코메디아 델라르테(comedía dell'arte), 독일의 바로크 극, 엘리자베스조(朝) 연극, 황금시대의 스페인 바로크 극, 프랑스 고전극·시민극·낭만주의극 등이 이에 포함된다.

근대극은 시민사회가 성립되면서 발달했는데, 서양의 근대극이 동양에 옮겨와 동양 고유의 연극을 제치고 연극의 주류를 이루어가고 있다. 이러한 서양의 근대극을 바탕으로 하여 여러 새로운 현대연극들이 실험되고 있다.

한편 연극은 표현상의 매체에 따라 인형극·가면극·그림자극·연쇄극·영화극(극영화)·방송극 등으로 분류된다.

배우를 인형으로 대치한 인형극은 조종자가 무대 뒤에 숨어서 인형을 조종함으로써 만들어진다. 가면극으로는 이탈리아의 코메디아 델라르테가 유명하며, 한국에도 민속가면극이 발달했다. 가면극의 인물들은 대체로 유형적이며 과장된다. 그림자극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발달했는데, 와양쿨릿은 그 좋은 예이다.

연쇄극은 연극과 영화가 뒤섞인 극으로 초기 무성영화시대에 성행했으며, 한국에서는 신파극시대에 유행했다. 또한 연극적 예술이라는 확대된 개념으로 본다면 영화극이나 방송극도 연극의 범주에 포함된다.

연극의 장르는 비극·희극·소극(笑劇)·희비극·멜로드라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비극은 초월적 질서에 대한 믿음으로, 도덕적 결단에 따른 희생을 동기로 삼아 슬픈 종말을 맞는 양식이다. 반면 희극은 현세계의 질서를 존중하여 화해를 통해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소극은 희극의 한 변형으로서 내재적 사건진행보다는 기계적이고 육체적인 동작이 웃음을 자아내는 극이다. 희비극은 희극과 비극의 요소가 뒤얽힌 작품으로 현대의 부조리극까지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멜로드라마는 분명한 흑백논리적 도덕성을 바탕으로 하여 악인에게 고난받던 주인공이 권선징악의 결말에 따라 행복해진다는 이야기로 감성을 극대화하여 대중적인 공감을 얻고 있다.

이밖에도 소재별, 목적별, 극장형식별, 극적 동인별(劇的動因別) 등 연극에는 여러 분류 방법이 있다. 신화전설극·역사극·전기극·민화극·우화극·시민극·사회극·가정극 등은 소재별로 분류한 것이며, 정치극·선전극·종교극·제사극·축제극·공공극(公共劇 : pageant 포함) 등은 목적별로 분류한 것이다.

극장 형식별로는 야외극·실내극·이동연극 등으로 분류되며, 극적 동인별 분류로는 운명극·성격극·심리극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연극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각기 다른 구성요소를 강조하여 그 연극의 명칭을 삼기 때문에 종류 역시 다양하다.

연출과 연기

제대로 된 연극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연출이나 연기의 역할이 크게 작용한다.

연출가가 공연에서 큰 힘을 갖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부터였으나, 배우를 지도하는 연출가의 역할은 기원전 그리스 극의 공연에서부터 있어왔다. 사실 가장 숙련된 배우가 다른 동료 배우들을 지도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지만 한 배우가 다른 배우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러므로 극중 역할을 맡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더욱 타당하고 총체적인 조언을 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무대기술의 발달과 사회의 분업화는 공연 전체를 조정하는 자로서의 연출가를 더욱 중요한 위치에 올려놓았다.

현대적 의미의 연출가는 1860년 독일 작센 마이닝겐 공작 게오르크 2세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인물을 창조하는 데 심리적 깊이를 부여하고자 노력했으며, 특히 배경과 군중장면을 처리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다. 연출가의 일관된 관점으로 공연을 조화시키려 했던 작센 마이닝겐의 연출가 개념은 프랑스 자유극장(Théâtre-Libre)을 설립한 앙드레 앙투안(1858~1943)과 러시아의 콘스탄틴 스타니슬라프스키(1863~1938)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연출 기술은 20세기에 들어와 한층 다양하고 복잡해졌다.

연출가는 공연 양식을 정하는 것에서부터 작품을 해석하고, 배우들에게 배역을 맡기며, 관련자들과 협력하여 공연을 독려하고, 공연을 마무리하기까지 요구되는 모든 책임을 맡는다. 그는 배우들의 성격 창조와 연기 지도, 의상, 조명 등 무대의 온갖 효과와 기술을 자문하며, 대사와 공연의 리듬을 주시해 조절한다. 연출가는 궁극적으로 관중을 사로잡는 공연의 초점을 결정하고 실현해야 한다. 20세기에 들어와 유럽과 영국에서 공연되는 전문극단의 공연은 모두 전문 연출가가 맡고 있을 만큼 오늘날 연출가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연출가의 부상으로 공연에서 작품보다도 그 해석이 더 큰 비중을 갖게 된 것도 오늘날의 현상이다.

연출가의 출신 배경이나 개성 등에 따라서 각기 다른 연출 방식이 창출된다. 근대의 유명한 몇몇 연출가를 꼽아보면, 우선 20세기초의 라인하르트(1873~1943)와 스타니슬라프스키를 들 수 있다.

라인하르트는 사실주의 연극에서 출발했으나 각 작품에 맞는 폭넓은 연출 양식을 구사했다. 종합예술로서의 연극을 강조하고 무대표현에 독특한 방법을 구사했던 그는 양식성(stylization)과 극장성(theatricality)이 뛰어난 연출가였다. 그가 연출한 〈오이디푸스 왕 Oedipus〉의 서커스 무대나 〈기적 The Miracle〉의 스펙터클한 무대는 유명하다. 스타니슬라프스키는 극작가 안톤 체호프와 함께 뛰어난 연출가로 꼽힌다. 그는 유럽의 소극장운동이 추구했던 사실주의 연출기법을 완성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연기훈련법은 오늘날에도 귀감이 되고 있다.

앙토냉 아르토는 당대에는 소외되었으나, 현대 아방가르드 연극의 선구자이며 새로운 연출의 실험가였다. 그는 기존의 서양연극이 의식의 세계와 일정한 문화에 국한되어 있다고 비판했고, 연극이야말로 적절한 경험을 통해 의식과 문명에 억눌렸던 인간을 해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연극을 잔혹극(Theatre de la cruauté)이라고 불렀는데, 충격적인 효과를 사용하여 그 충격으로 내부를 직시함으로써 도덕적·정신적 정화를 꾀했다. 공연장도 그당시까지 사용되었던 극장보다 헛간이나 공장을 선택했고 전율적인 조명, 귀에 거슬릴 정도로 날카로운 음향을 사용했다. 아르토의 이론은 현대, 특히 1960년대 아방가르드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한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서사극'을 주창했다(브레히트). 서사극이란 아르토와는 또다른, 종래 서양의 연출과는 정반대되는 개념이다.

연극의 전통적인 감정교류나 동화 혹은 카타르시스를 거부하고, 극에서의 이성과 판단을 앞세웠다. 이를 위하여 그는 관객이 공연에 너무 몰입하면 이성적 판단이 어려워지므로 공연과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소외효과를 주장했다. 이 거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감정이입이나 동화를 막아야 하기 때문에 자막표시나 노래, 또는 조명기의 노출 등 전체적인 흐름을 단절시키는 장치가 고안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서양의 연극이 카타르시스 효과를 추구했던 만큼, 이를 배격한 소외효과는 획기적 사고의 전환이었다.

20세기 프랑스의 연출가 루이 주베는 연출가를 2가지 부류로 나누었다.

한 부류는 희곡을 기본으로 하여 희곡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르는 연출가이고, 다른 부류는 희곡을 떠나서 스스로 작품을 만들어가는 연출가이다. 후자의 경향은 점차 더욱 두드러져서 20세기 후반에는 이들이 창의적 연출가로 떠올랐다. 이는 공연성에 대한 강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피터 브룩을 이러한 유의 대표적인 연출가로 꼽을 수 있는데, 그의 셰익스피어 극의 재창조는 유명하다.

그는 고전에서 전위연극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해석과 폭넓은 실험으로 절찬을 받았다. 또한 예지 그로토프스키는 무대를 되도록 간소화한 '가난한 연극'을 주창하기도 했다.

한편 20세기 후반 또 하나의 연극계 특징은 국제성이다. 편리한 여러 교통수단의 발달로 서양의 관객까지 동양 전통극의 공연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이전에 일방적으로 서양연극이 동양으로 유입되었던 것과는 달리 동양연극이 서양연극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동양전통극의 독특한 기법들은 서양연극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다.

연출가와 배우의 이상적인 관계는, 연출가가 배우 스스로 창의적인 상상력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연출가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배우를 기계적인 대상으로 보기도 하나 이는 특수한 경우이다. 배우들과의 충분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연출가의 객관적인 판단이 요구된다. 또한 연출가는 배우들에게 완전히 자유롭다는 꿈을 주는 동시에 이들 각자를 조화·통제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연기란 연극의 내용을 관객 앞에서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배우의 몸짓이나 음성으로 하는 동작으로서 일상생활의 행동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연기는 흔히 단순한 모방이나 자기를 나타내보이는 행동이라기보다는 상상으로 떠오르는 자극에 반응하는 능력에서 그 본질을 찾아보아야 하며, 이에 따라 '예민한 감수성과 뛰어난 지성'이 요구된다. 연기에서 음성·발음·몸짓 등의 외면적인 기술과, 배우 내면의 감정의 발로 가운데 무엇이 우선하는가 하는 문제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로마 시대를 거쳐 현대까지 계속 제기되어왔다.

연기는 한편으로는 배우의 정확하고 조직적인 표현의 체계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의 발로이다.

효과적인 연기를 위해서는 배우가 단순히 기계적으로 흉내를 내야 하는가, 또는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을 배우 스스로가 진정으로 느껴야 하는가, 자연스럽게 말해야 하는가, 또는 과장해서 말해야 하는가, 자연스럽게 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등등의 연기를 둘러싼 여러 가지 기본적 명제는 연기가 생기면서부터 제기된 문제였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연기란 "음성조절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 했고, "연기 능력이란 타고난 것이며 가르치기 힘들지만 좋은 발성법은 가르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연기가 곧 발성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며 연기를 좀더 복합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는 좋은 연기는 배역에 대한 본능적인 감지와 광적인 열정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전자에 의하여 인간은 모든 역할을 모방할 수 있으며, 후자에 의하여 인간이 상상하는 역할에 진정으로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드니 디드로의 〈연기의 패러독스 Paradox of Acting〉는 연기에 관한 최초의 본격적인 논의였다.

디드로는 배우가 관중을 감동시키는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배우 스스로는 감정적인 움직임이 없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결론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있겠으나, 디드로는 성공적으로 배우가 안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를 제시했다. 그는 배역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으로 느끼는 배우가 어떻게 같은 역할을 매번 성공리에 되풀이할 수 있을지를 의문시했다.

그는 연기가 고르지 못한 배우는 역할인물의 감정을 스스로 느끼는 배우임에 주목하고, 배우가 어떻게 연기중에 역할 인물만을 행하고 자신이기를 포기해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그는 공연의 객관적인 조화 내지 통일성을 강조했으나, 상상력이나 창의력을 발달시키기 위한 연기술은 제시하지 못했다. 연기술의 어려움은 19세기 프랑스 델사르트의 연구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본능이나 감정의 영향을 받아 육체는 기존 연기술에서 말해오던 바와는 상당히 다른 태도와 동작을 취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관찰과 연구로 그는 독자적인 화법과 행동의 원칙을 제시했으나 이것 역시 기존의 연기술처럼 기계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연기술의 이론화는 20세기초 스타니슬라프스키에 의해 큰 진전을 보았다. 그는 디드로나 다른 연구가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영감과 자발적 행위의 순간들을 재현하려는 문제에 도전했다.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연출을 하면서 그는 성격 창조가 무의식적이나마 배우의 기억에 의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기억이나 감정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잊혀지고 차츰 기계적으로 반복된다고 생각했으며, 창의적인 연기를 위해서는 '창조적인 분위기'가 요구된다고 생각했다. 천재적인 배우일수록 이러한 분위기를 스스로 만들어내며 오래도록 지속하나 아무도 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지는 못한다고 보았다.

스타니슬라프스키는 이 '창조적인 분위기'를 조절할 수 있는 객관적인 방법을 연구함으로써 현대 연기술의 서장을 열었다.

그는 연기의 영감을 인위적인 방법으로 얻으려 한 것이 아니라, 영감을 얻기 좋은 분위기를 어떻게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는가를 연구했다. 그리고 다른 예술가는 별개로 치더라도 배우만은 자신의 영감을 조절하고 필요할 때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배우가 무의식적인 창조력을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없다면 배우는 무대 장치나 테크닉에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결 방법으로 그는 '감정적 기억'을 주장했다.

감정적 기억이란 긍정적 반응이든 부정적 반응이든 지난 과거의 경험을 되살리는 것이다. 무엇이든 아픔을 유발했던 것은 이후에 자동적으로 불쾌함을 느끼게 한다. 기억해서라기보다는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이 불쾌감은 지난 경험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감정적 기억은 지난 경험과 유사한 다른 경험에도 나타날 수 있다. 바로 이 기억에 의해 배우는 무대에서 반복되는 가상의 행동에 반응하게 된다고 그는 믿었다. 이 이론은 '스타니슬라프스키 방식'으로 종합된다(스타니슬라프스키 방식). 스타니슬라프스키는 배우의 내면적 정당화나 상상적 가상 등을 통해 감정적 기억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다.

스타니슬라프스키 이론은 리 스트래스버그에 의해 미국에 널리 알려지면서 현대 연기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서양 연기술의 근간을 이룬 사람으로는 아르토·브레히트·그로토프스키 등을 우선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연출이론의 근간을 이루기도 했다. 아르토는 연기를 심리적이라기보다는 육체적인 것으로 보았다.

어떤 감정이나 어떤 행동도 결국은 호흡의 지배 아래 있으며, 호흡조절로 조정된다. 따라서 배우를 심장의 운동가로 간주했다. 이 이론은 스타니슬라프스키의 내면적 진실과 대조적으로 연기에는 외면적 진실이 있음을 환기시켰다. 브레히트도 1950년대 베를리너 앙상블의 뛰어난 공연을 통해 스타니슬라프스키 이론에 반대되는 연기술을 전개했다. 스타니슬라프스키 연기술에 따르면 배우의 개성이 두드러지는 반면, 브레히트의 연기술에서는 배우가 각 배역의 계층을 대표하며 어떤 경우에는 거의 비인간화되기까지 한다.

서사적 리얼리즘을 성취하기 위해 그는 소외효과라는 특수한 연기 개념을 도입했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연극 상황을 냉정히 보고, 판단하게 하기 위한 개념이다. 배우는 맡은 역으로 변신하기를 포기하고, 배우와 언어는 맡은 역과 거리를 유지한다. 따라서 배우는 마치 인용하듯이 대사를 말하고 맡은 역을 그럴 듯하게 해내는 동시에 그 역에 대해 논평할 수 있어야 한다. 브레히트 자신은 스타니슬라프스키의 이론에 반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의 이론에 힘입은 바가 있다고 밝혔으나, 결과적으로 그의 연기술은 현대 연기를 스타니슬라프스키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그로토프스키는 1960, 1970년대에 '폴란드 실험실 극단'을 주도하면서 '가난한 연극'을 주창했다.

그는 스타니슬라프스키나 브레히트의 이론 모두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들을 종합한 새로운 연기술을 시도했다. 그는 연극은 텔레비전이나 영화같이 흥미나 효과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배우와 관객과의 살아 있는 관계에서 연극의 본질을 찾고자 했다. 배우는 연극의 핵심에 놓이며 신체와 음성 훈련으로 몰아의 경지에 이르도록 집중도를 높여야 했다. 꿈과 현실의 경계선상에 있는 소리와 동작으로, 배우들은 각기 자신만의 심리분석적인 소리와 동작의 표현언어를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내부적 충동과 외부적 반응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배우에게 자유를 부여하고자 했다.

동양의 연기술은 연극의 종류마다 특이하며 전문적이다. 대부분의 동양연극에서는 혈연 집단을 중심으로 한 배우가 한 역할만을 평생 수련하여 고도의 연기력을 갖춘다. 연기술은 도제형식으로 비전되었고 거의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인도의 산스크리트 연극의 〈나티아 샤스트라 Nātya-śāstra〉와 일본 노[能]의 〈후시카덴 風姿花傳〉은 연극의 기본인 연기·연출 미학서로 명성이 높다.

연극과 사회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연극은 단순한 오락도 영리를 얻기 위한 흥행도 아니며 사회의 반영인 동시에 자기표현의 한 방식이고 더 나은 삶을 위한 필요불가결한 추구이기도 하다. 연극은 때로는 신이나 부처에 대한 봉납예능으로서, 때로는 지배자나 권력자에 대한 공헌예능으로서, 시민사회의 서민을 위한 오락으로서, 나아가 인생탐구의 장과 사회개혁에 대한 각성의 장으로서 여러 가지 사회적 기능을 맡아왔다.

한마디로 연극과 인간사회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렇다면 연극과 인간을 연결하는 근원적인 욕구는 무엇일까? 많은 학자와 평론가들은 이 문제를 크게 본능설과 사회학적 실용설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본능설로는 모방본능설·유희본능설·성적흡인본능설·자기표현본능설 등을 들 수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전통적인 모방본능설로 대표된다.

이상국에서는 시인이 추방되어야 한다는 플라톤의 선언에 대응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 詩學〉에서 인간에게는 모방본능이 있어서 모방을 통해 기쁨을 느끼며 연극은 '모방의 양식'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연극의 자기표현력을 말하며, 연극과 사회와의 관계를 간접적인 것으로 파악한 것이다.

한편 사회학적 실용설은 19세기말에 활발히 행해진 문화인류학의 이른바 미개인에 대한 연구에 힘입어 크게 부상했다. 이것은 원시종족들의 예능을 연구한 결과, 연극이 주술적인 효험을 바라는 기원과 제의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제의와 연극 구조의 유사성까지 연구되면서 연극의 제의기원설이 등장했다.

이 제의기원설은 연극에서 관객과의 공동체적 경험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연극의 사회적 역할을 주시한 결과를 낳아 20세기 연극의 한 중요한 방향을 제시했다. 사회학적 실용설에서 연극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는 사회해악설이 있다. 이는 연극이 도덕적으로 유해하다고 판단하여 연극을 탄압하는 이유도 되어왔다. 유럽 중세의 연극부재나 한국의 조선시대의 연극경시 현상도 그 단적인 예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직된 사고와 탄압 밑에서도 연극이 계속되어왔음을 볼 때, 오히려 이 사회해악설도 사회에서 연극의 필요를 반증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연극과 사회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