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비극

희비극

다른 표기 언어 tragicomedy , 喜悲劇

요약 비극적·희극적 요소가 혼합된 희곡 작품.

BC 2세기에 로마의 극작가 플라우투스가 이 말을 처음 사용했을 때는 신과 인간, 주인과 종이 전통적으로 그들에게 부여된 역할을 완전히 바꾸어 신과 영웅은 희극적으로 익살스럽게, 종은 비극적으로 위엄 있게 행동하는 극을 뜻했다. 이 놀라운 혁신은 플라우투스의 〈암피트리온 Amphitryon〉에서 찾아볼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희비극이 주로 희극적인 극에 비극적 요소를 가미한 연극 양식이 되었다. 이탈리아 작가 바티스타 구아리니는 대부분의 비극적 요소, 예컨대 어느 정도 위엄 있는 말투, 중요한 공적 사건의 묘사, 연민의 유발 등과 같은 요소를 지니지만 행동을 비극의 종말로 이끌지 않고, 비천한 신분의 인물과 웃음·농담 같은 희극적 요소를 적절하게 포함하는 극을 희비극이라고 정의했다. 위험, 반전, 행복한 종결은 이런 류의 희비극의 핵심을 이루었다.

희비극은 연극 양식의 혼합을 금했던 당시의 엄격한 신고전주의에 맞서 특히 영국에서 번성했는데, 영국의 작가들은 대개 신고전주의의 원칙을 무시했다. 존 플레처는 〈충실한 양치기 소녀 The Faithful Shepherdess〉(1608경)에서 희비극의 훌륭한 전형을 선보였는데, 이 작품은 1590년에 처음 출판된 구아리니의 〈충실한 양치기 Il pastor fido〉를 개작한 것이었다.

19세기의 낭만주의 작가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자연을 충실하게 반영한다고 믿고서 그의 희비극 사용을 지지하고, 그를 자신들의 작품을 위한 하나의 본보기로 삼았다. 게오르크 뷔히너, 빅토르 위고, 크리스티안 디트리히 그라베의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다.

19세기 후반 사실주의의 도래로 희비극에는 또 한 차례의 수정이 가해졌다. 2가지 요소를 여전히 혼합하지만 희극적 요소가 극 속에 내재된 풍자적 요소를 강조함으로써 비극이 훨씬 더 통렬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헨리크 입센의 〈유령 Ghosts〉(1881)·〈들오리 The Wild Duck〉(1884) 같은 작품은 이 기법을 반영하고 있다. 조지 버나드 쇼는 입센의 작품을 가리켜 비극보다 더욱 의미심장하며 진지한 오락물로서 희비극을 정립했다고 평가했다.

오늘날의 희비극은 존재의 비극적인 공허함과 무의미함에 직면할 때 인간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반응은 웃음이라고 암시하는 부조리극과 종종 동의어로 사용된다. 이러한 현대적 희비극의 대표적인 예로는 새뮤얼 베케트의 〈놀음의 끝장 Endgame〉(1958)과 해럴드 핀터의 〈덤 웨이터 The Dumb-Waiter〉(1960)를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