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코디언의 역사

아코디언의 역사

요약 아코디언(Accordion)의 초기 형태는 1820년경 독일에서 형성되었다. 본격적으로 ‘아코디언’이라는 이름의 악기가 제작된 것은 1830년경 빈(Wien)에서였다. 초기 형태는 단순했으나 19~20세기에 유럽을 중심으로 점차 지금과 같은 복잡한 구조의 다채로운 음색을 내는 악기로 발전하였다.

1. 아코디언의 기원

자유리드(free reed : 얇고 탄성이 있는 작은 금속판이나 나무판의 한쪽 끝을 리드판에 고정시키고, 공기로 고정되지 않은 부분을 진동시켜 소리를 내도록 한 것) 공기울림악기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여러 개의 대나무 관과 공명통이 있는 고대 중국 악기 성(笙생, Sheng)을 모델로 하여 유럽에서 건반(Keyboard), 바람통(풀무, Bellows), 리드(Reed)로 구성된 악기를 만든 것이 아코디언의 시초였다.

키르슈니크 하모니카

키르슈니크 하모니카

유럽에 전파된 성의 소리에 매료된 독일의 물리학자 크라첸슈타인(Christian Gottlieb Kratzenstein, 1723~1795)과 오르간 제작자 키르슈니크(Franz Kirsnik, 1741~1802)는 1780년에 건반이 있고 왼손으로 풀무질을 하여 소리를 내는 오르간 스타일의 자유리드 악기를 최초로 제작했다. 이 악기는 제작자의 이름을 붙여 ‘키르슈니크 하모니카’(Kirsnik's harmonica)라고 불렀다.

2. 19세기 초반의 아코디언

아코디언의 기본적인 형태는 1822년 독일 베를린에서 크리스티안 부슈만(Christian Friedrich Ludwig Buschmann, 1805~1864)이 고안했다고 한다. 당시에 그는 이 악기의 이름을 ‘한트에올린’(Handaeoline : 손풍금)이라 불렀다. 1829년 오스트리아의 빈(Wien)에서 데미안(Cyril Demian, 1772~1849)이 부슈만의 악기를 발전시켜 본격적으로 ‘아코디언’이라는 이름의 악기를 생산했다. 그러나 당시의 아코디언은 현대의 아코디언과 달리, 오른손으로 버튼을 누르고 왼손으로 바람통을 움직이는 단순한 형태였다.

버튼을 누를 때 특정한 화음이 울리는데, 하나의 버튼은 바람통을 열 때와 닫을 때 각기 다른 화음을 연주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러한 방식을 하나의 버튼으로 두 가지 소리를 낸다고 하여 바이소닉(bisonic) 방식이라고 부른다. 데미안의 아코디언에는 일반적으로 7~9개의 버튼이 있었다.

데미안식 바이소닉 아코디언(1830년경)

데미안식 바이소닉 아코디언(1830년경)

데미안식 아코디언은 1830년대 이후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의 다른 나라로 빠르게 전파되었다.

아코디언이 알려지면서 연주 관련 서적들도 등장했다. 1832년 프랑스의 피슈노(Pichenot)과 레스네(A. Reisner)는 각각 아코디언 교본을 출간했고, 독일에서도 1833년 아돌프 뮐러(Adolph Müller, 1801~1886)가 아코디언 지침서인 <아코디언 교본>(Schule für Accordion)을 출간하였다.

A. 레스네의 딸인 루이스 레스네(Louise Reisner)는 최초의 아코디언 악보 <아코디언을 위한 주제 변주>(Thême varié très brillant pour accordéon methode Reisner, 1836)를 파리에서 발간하였다. 이 곡은 낭만적인 분위기의 단선율 연주곡이다. 그는 아코디언 연주회와 강연을 통해 아코디언 음악을 알리는데 기여하였다.

아돌프 뮐러의 <아코디언 교본> 첫 두 페이지

아돌프 뮐러의 <아코디언 교본> 첫 두 페이지

3. 19세기 중 · 후반의 아코디언

19세기 중반 이후에 버튼으로 화음뿐만 아니라 특정 음을 연주할 수 있는 아코디언이 개발되었다.

1863년 이탈리아의 파올로 소프라니(Paolo Soprani, 1844~1918)는 이탈리아 안코나(Ancona) 지방의 카스텔피다르도(Castelfidardo)에서 다이아토닉 아코디언을 제작하였다.

최초의 크로매틱 버튼식 아코디언을 고안한 사람은 오스트리아 빈의 음악가 프란츠 발터(Franz Walther)이다. 그가 1850년에 제작한 아코디언은 연주자 쪽에서 봤을 때 오른편에 3도 음정 간격으로 46개의 버튼이 세 줄로 배치되어 있고, 베이스 부분은 여덟 개의 버튼(후에 12개까지 늘어남)으로 기본음과 화음을 연주하도록 설계되었다. 이탈리아 스트라델라 지역의 마리아노 달라페(Mariano Dallapé, 1846~1928)도 이 시기 아코디언의 발전에 기여했다. 달라페 가문은 대를 이어 아코디언 제작자로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G. 갈레아치(Galleazzi) 사의 버튼식 아코디언(1895년경)

미국 G. 갈레아치(Galleazzi) 사의 버튼식 아코디언(1895년경)

러시아에서도 1830년대부터 툴라(Tula)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제작자들이 아코디언을 제작했으며 각 지역에서 개성 있는 악기들을 고안했다. 특히 1870년에 니콜라이 벨로보로도프(Nikolai Beloborodov)가 고안한 3열 버튼식 아코디언은 러시아 아코디언의 표준적 형태인 바얀(Bayan)이 되었다.

크로매틱 아코디언은 18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1854년 바우어(Matthäus Bauer)는 오스트리아 빈의 한 박람회에서 세 옥타브를 연주할 수 있는 아코디언을 클라비어하모니카(Clavierharmonika)라는 명칭으로 선보였다. 아직까지 멜로디부는 버튼식이었는데, 이듬해 프랑스에서 뷔송(Buson)이 아코르데옹오르그(Accordéon-orgue)이라는 명칭의 피아노 아코디언을 고안했다. 피아노 아코디언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독일의 호너(Hohner), 이탈리아의 소프라니(Soprani)와 달라페(Dallape) 등 전문 제작사들은 아코디언을 본격적으로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다.

19세기에 아코디언은 여러 지역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널리 보급되고 즐겨 연주되었다. 아코디언은 특유의 우수 어린 음색과 이동의 간편성, 멜로디와 화음, 다이내믹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잠재력으로 인해 세계 각지의 민속 음악은 물론, 특히 거리의 악사들에게 각광을 받았다. 19세기 아코디언 연주자들의 주 레퍼토리는 잘 알려진 민속음악이나 클래식 음악 선율인 경우가 많았다. 즉, 대부분 귀에 익숙한 멜로디를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식이었다. 물론 좀 더 복잡한 작곡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이 또한 익숙한 멜로디를 좀 더 다채롭게 변주하는 방식이었다.

19세기 전반에 널리 사용된 다이아토닉 아코디언은 멜로디 연주에 다양성을 부여한 크로매틱 아코디언의 등장으로 점차 연주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버튼 혹은 건반으로 된 크로매틱 아코디언이 널리 사용되었다. 20세기 들어설 무렵 아코디언의 베이스 버튼은 더욱 정교하게 발전되어 반주 화음만이 아니라 멜로디 건반처럼 개별 음들을 모두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소프라니 사의 건반식 아코디언(19세기 말~20세기 초)

소프라니 사의 건반식 아코디언(19세기 말~20세기 초)

4. 20세기 이후의 아코디언

독일 레스터 사의 다이아토닉 버튼식 아코디언(20세기 초)

독일 레스터 사의 다이아토닉 버튼식 아코디언(20세기 초)

20세기에도 다이아토닉, 크로매틱 아코디언은 작고 단순한 형태에서 더욱 복잡하며 정교한 형태로 계속 개량되었다. 아코디언 회사와 공장의 아코디언 생산량이 증가하는 한편, 크로매틱 아코디언은 41건반, 19인치로 악기의 표준 규격이 갖추어졌다.

오늘날 아코디언의 주요 생산지는 유럽이다. 특히 아코디언의 제작 수준과 완성도를 높인 독일 호너 사의 악기들은 연주자들에게 각광을 받으며 20세기 아코디언의 발달에 기여했다. 또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이탈리아의 명문 아코디언 제작사들은 계속해서 명실상부 아코디언 제작의 중추 역할을 했다. 이탈리아 중부 동쪽의 도시 카스텔피다르도는 아코디언 제작의 산실로, 보르시니(Borsini), 부가리(Bugari), 엑셀시오르(Excelsior), 멘기니(Menghini), 피기니(Pigini), 스칸달리(Scandalli), 빅토리아(Victoria), 체로 세테(Zero Sette) 등 여러 제작사가 이곳에 있다.

호너 사와 엑셀시오르 사의 피아노 아코디언(1930년대)

호너 사와 엑셀시오르 사의 피아노 아코디언(1930년대)

한편 러시아에서도 아코디언이 독자적으로 발전하였다. 모스크바 연구소(MEL, Moscow Experimental Laboratory)는 음질이 우수하고 완성도가 높은 바얀을 만들어냈다. 이탈리아 제작사 피기니는 MEL과 공동으로 이탈리아의 전통적 기술과 러시아의 미학이 결합된 새로운 바얀 모델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 외의 동유럽 국가들에서도 품질이 우수하고 가격이 합리적인 아코디언들이 제작되는데, 체코공화국의 델리카(Delica) 아코디언이 대표적이다.

바얀(21세기)

바얀(21세기)

20세기 전반기에 세계 대중음악계에 뛰어난 아코디언 작곡가 및 연주자들이 등장하며 아코디언은 황금기를 맞이했다. 마침 이 시기에 꽃피기 시작한 음반산업의 성장과 맞물려, 20세기 중반까지 세계 각지의 전통음악과 대중음악계에서 아코디언 연주와 녹음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당시의 대표적인 연주자로는 이탈리아계 미국 이민자였던 피에트로 프로시니(Pietro Frosini, 1885~1951), 그리고 20세기 최고의 스타 피아노 아코디언 연주자인 구이도 데이로(Count Guido Deiro, 1886~1950)와 피에트로 데이로(Pietro Deiro, 1888~1954) 형제가 있다.

이들은 당시 유행한 버라이어어티 쇼의 일종인 보드빌(vaudville)의 전성시대에 보드빌 무대에 서며 북미와 유럽 등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프로시니는 연주는 물론 작곡, 편곡, 교육 등 다방면에서 아코디언 음악 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200곡이 넘는 아코디언 작품을 남겼는데, 그의 업적을 기려 스웨덴에 기반을 둔 ‘프로시니 협회’도 설립되었다. 프로시니와 구이도 데이로는 친분을 쌓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데이로는 미국의 클래식 아코디언 연주자이자 작가인 헨리 독토르스키와 함께 작업하기도 했는데, 이후 독토르스키는 데이로 형제에 관한 책 『데이로 형제와 아코디언』(The Brothers Deiro and Their Accordions, The Classical Free-Reed, Inc., Oakdale, Pennsylvania, 2005)을 출판했다.

아코디언 연주자 구이도 데이로(왼쪽)와 피에트로 데이로 형제

아코디언 연주자 구이도 데이로(왼쪽)와 피에트로 데이로 형제

아코디언 연주자 구이도 데이로(왼쪽)와 피에트로 데이로 형제

대공황 이후 보드빌 무대는 점차 사라지고 1930~50년대에는 라디오를 통한 공연 문화가 활발해졌다. 이 시기 대표적인 아코디언 연주자로는 수백 회의 라디오 공연을 통해 대중적 지지를 얻은 찰스 매그넌트(Charles Magnante, 1905~1986), 빅밴드와 함께 공연한 자타공인 최고의 아코디언 연주자 딕 콘티노(Dick Contino, 1930~), 재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그리고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 극장 무대 등 다양한 활동 영역을 넘나든 존 세리 경(Sr. John Serry, 1915~2003), 아코디언 연주자이자 빅밴드 리더로 라디오는 물론 1951년부터 1981년까지 본인의 이름을 건 ‘로렌스 웰크 쇼’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진행한 로렌스 웰크(Lawrence Welk, 1903~1992), 이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하여 연주한 아코디언 연주자 플로렌(Myron Floren, 1919~2005) 등이 있다.

로렌스 웰크 쇼에서 지휘하는 웰크(가운데)와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플로렌(왼쪽)

로렌스 웰크 쇼에서 지휘하는 웰크(가운데)와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플로렌(왼쪽)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는 1950~60년대를 지나면서 로큰롤과 팝 음악이 인기를 얻었고, 아코디언의 대중적 지지도는 점차 줄어들었다. 그러나 브라질과 멕시코 등지에서 아코디언은 여전히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1990년대에는 월드뮤직이 부상하면서, 아코디언은 유럽 및 남아메리카 각지의 민속음악과 록, 메탈, 펑크 등의 장르를 결합시킨 퓨전음악을 통해 특유의 색채와 분위기를 전 세계에 새롭게 전달하게 되었다.

한편 러시아와 동유럽권의 사회주의 국가들, 중국, 북한에서는 아코디언이 고난이도 기교를 구사하는 주요 비르투오소 악기로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한국에는 19세기 말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 유입되었고,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이후까지 악극단이나 장터에서 많이 연주되어 특유의 시대적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오늘날 아코디언은 유럽과 아메리카, 남아프리카 등지의 전통음악과 대중음악, 클래식 음악, 그리고 한국의 트로트 음악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의 다양한 음악 속에 녹아들어 계속해서 독특한 매력을 선사하고 있다.

참고문헌

  • 한석현. “북한: 탈북인사대담 76 북한의 음악: 박광재 북한 예술단 배우 출신 - 군수품 공장에서도 아코디언 만든다.” 『통일한국』 241(2004): 6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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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nry, Doktorski. “.” The Classical Free-Reed, Inc. - A Short History of the Free-Reed Instruments in Classical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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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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