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장

악기장

[ 樂器匠 ]

요약 악기를 만드는 장인(匠人). 일명 악기공(樂器工)·풍물장(風物匠).

조선시대 악기를 만드는 장인을 풍물장이라고 불렀으나, 근래에 이르러서는 악기장이라고 한다. 성종(1469~1494) 풍물장 8명 이외 4명의 풍물장과 2명의 황엽장(簧葉匠) 곧 생황(笙簧)의 금엽(金鐷, reed)을 만드는 장인이 장악원(掌樂院)에 소속되어 있었다.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 시절 김한준(金漢俊)이 풍물장으로 활약했고, 그의 제자 강상기(康相騎)가 함께 일했다. 강상기는 국립국악원에 재직하면서 거문고·가야고·대쟁(大箏)·아쟁(牙箏)·금(琴)·슬(瑟)·당비파(唐琵琶)·향비파(鄕琵琶)·월금(月琴)·양금(洋琴) 등의 현악기를 제작하였다. 일제강점기 지방에서 활약한 악기장은 전주(全州)의 김명칠(金明七)과 강대택(姜大澤), 정읍(井邑)의 김학기(金鶴基) 등이 있었다.

 해방 후 김명칠의 아들 김광주(金廣冑)와 김학기의 아우 김붕기(金鵬基)가 악기장으로 활약하였다. 김광주는 조선율기제작소(朝鮮律器製作所)를 세우고 부친의 업을 이어 거문고·가야고·양금·해금·아쟁을 제작해오다가 1946년 고전악기제작소(古典樂器製作所)를 세우고 제자로 최태진(崔泰珍)·김종영(金鍾英)을 길렀다. 김붕기는 1930년 일본 우에노(上野)에 있는 압상금제작소(押上琴製作所)에서 일본 고토(箏) 제조 기술을 배웠다. 1938년 만주에 있는 고산악기제작소에서 일하다가 해방 후 귀국해 1953년 서울에서 금은고전악기제작소(琴隱古典樂器製作所)를 차리고 국립국악원의 악기개량사업에 적극 참여했다. 제자로 염남기·김현칠·이영수·양춘엽·박종태를 길러냈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4.1444쪽

참조어

악기공(樂器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