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안홍기

해동안홍기

분류 문학 > 문화 > 서적

기본정보

신라 진평왕대의 승려 안홍과 관련된 책이다

일반정보

신라 진평왕대의 승려 안홍과 관련된 책으로, 안홍(安弘)의 일대기를 기록한 전기인지 아니면 안홍이 지은 『동도성립기(東都成立記)』를 일컫는지 확실하지 않다.

전문정보

안홍(安弘)의 일대기를 기록한 전기인지 아니면 안홍이 지은 『동도성립기(東都成立記)』를 일컫는지 확실하지 않다. 안홍이 지은 『참서(讖書)』와 『동도성립기(東都成立記)』를 『해동안홍기』와 같은 책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신종원, 1998)

안홍(安弘)은 안함(安含)이라고도 한다는 견해가 있지만 확실치 않다. 고려의 고승 각훈(覺訓, 생몰년 미상)이 1215년에 지은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에는 안함(安含)과 같은 인물로 나온다. 이에 따르면 안홍은 진평왕 22년(601)에 중국으로 가서 십승(十乘)의 비법(秘法) 등을 공부하였다고 한다. 진평왕 27년(605)에 귀국하여 『참서(讖書)』와 『동도성립기(東都成立記)』를 저술하였다.

참고문헌

신종원, 1998, 『신라 최초의 고승들: 원광. 안홍. 자장』, 민족사.

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 권1 기이1 마한)
馬韓
魏志云 魏滿擊朝鮮 朝鮮王準率宮人左右 越海而南至韓地開國 號馬韓 甄萱上太祖書云 昔馬韓先起 赫世勃興 於是 百濟開國於金馬山 崔致遠云 馬韓麗也 辰韓羅也 [據本紀 卽羅先起甲子 麗後起甲申 而此云者 以王準言之耳 以此知東明之起 已幷馬韓而因之矣 故稱麗爲馬韓 今人或認金馬山 以馬韓爲百濟者 蓋誤濫也 麗地自有馬邑山 故名馬韓也] 四夷九夷九韓穢貊 周禮職方氏掌四夷 九貊者 東夷之種 卽九夷也 三國史云 溟州 古穢國 野人耕田,得穢王印獻之 又春州 古牛首州 古貊國 又或人云 今朔州 是貊國 或平壤城爲貊國 淮南子注云 東方之夷九種 論語正義云 九夷者 一玄菟 二樂浪 三高麗 四滿飾 五鳧臾 六素家 七東屠 八倭人 九天鄙 海東安弘記云 九韓者 一日本 二中華 三吳越 四乇羅 五鷹遊 六靺鞨 七丹國 八女眞 九穢貊
마한(馬韓)
위지(魏志)에 이르기를, “위만(魏滿)이 조선을 공격하자 조선왕 준(準)은 궁인과 측근 신하들을 데리고 바다를 건너 남쪽으로 한(韓)의 땅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마한이라 했다.”고 하였다. 견훤(甄萱)이 고려 태조에게 올린 글에 “옛적에 마한이 먼저 일어나고 혁거세(赫世)가 발흥하였으며, 이즈음에 백제가 금마산에서 나라를 세웠다.”고 하였다. 최치원이 말하기를 “마한은 고구려이고, 진한은 신라”라고 하였다.[『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에 의하면 신라가 먼저 갑자(기원전 57)에 일어나고, 고구려는 그 후 갑신(기원전 37)에 일어났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말한 것은 조선왕 준을 두고 말한 것이다. 이로써 동명왕(東明)이 일어난 것은 이미 마한을 아울렀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고구려를 일컬어 마한이라고 한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더러 금마산(金馬山)을 인정하여 마한이 백제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대체로 잘못된 것이다. 고구려 땅에는 본래 마읍산(馬邑山)이 있으므로 마한이라고 이름 한 것이다.] 사이(四夷)는 구이(九夷) 구한(九韓) 예맥(穢貊)이니 주례(周禮)에 직방씨(職方氏)가 사이와 구맥을 관장하였다고 하는 것은 동이(東夷)의 종족으로 곧 구이를 말하는 것이다. 『삼국사』에는 “명주는 옛 예국인데 야인이 밭을 갈다가 예왕(穢王)의 인장을 얻어 바치었다.”고 하였다. 또 “춘주는 옛 (고구려 때의) 우수주로서 옛 맥국이다.”라고 하였다. 또는 “오늘날의 삭주는 맥국이고, 혹은 평양성이 맥국이다.”고 하였다. 『회남자(淮南子)』의 주에는 “동방의 오랑캐는 9종족이다.”고 하였으며, 『논어정의(論語正義)』에는 “구이(九夷)는 1 현도(玄菟), 2 낙랑(樂浪), 3 고려(高麗), 4 만식(滿飾), 5 부유(鳧臾), 6 색가(素家), 7 동도(東屠), 8 왜인(倭人), 9 천비(天鄙)이다.”라고 하였고, 『해동안홍기(海東安弘記)』에는 “구한(九韓)은 1 일본(日本), 2 중화(中華), 3 오월(吳越), 4 탁라(乇羅), 5 응유(鷹遊), 6 말갈(靺鞨), 7 단국(丹國), 8 여진(女眞), 9 예맥(穢貊)이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