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왕

신무왕

분류 문학 > 인물 > 왕
신무왕 본문 이미지 1

기본정보

신라 제45대 왕
생몰년: ?~839
재위년: 839

일반정보

신라 제45대 왕으로 아버지는 김균정(金均貞), 어머니는 박씨 진교부인(眞矯夫人)이다. 836년 제42대 흥덕왕이 사망하자, 아버지 김균정의 왕위계승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균정은 왕위계승을 두고 조카인 제륭(悌隆)과 대립하게 되고, 결국 무력대결에서 패해 죽었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우징은 희강왕 2년(837) 청해진으로 내려가 대사(大使) 장보고(張保皐)에게 군사적 원조를 요청하였다. 민애왕 2년(839) 장보고(張保皐), 김양(金陽)등과 함께 경주로 쳐들어가 민애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病死)하였다.

전문정보

신라 제45대 왕으로 이름은 우징이다. 아버지는 김균정, 어머니는『삼국유사』왕력편에는 정교부인(貞矯夫人),『삼국사기』권10 신라본기10 신무왕 즉위년조에는 진교부인(眞矯夫人)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징의 가계는 원성왕(元聖王)-예영(禮英)-균정-우징으로 이어지는 예영계인데, 원래 이 시기 신라의 왕계가 원성왕-인겸태자(仁謙太子)-소성왕(昭聖王)-애장왕(哀莊王)으로 이어졌던 인겸태자계에 의해 이어졌음을 감안한다면, 우징의 가계는 방계였음을 알 수 있다.

일찍이 헌덕왕 14년(822) 김헌창(金憲昌)의 반란 때 김우징은 국왕군의 군사령관으로서 그 진압에 공을 세웠고 이후 이례적으로 시중(侍中)직을 두차례 역임(828~831, 834~835)하는 등 정치, 군사적 경험이 풍부했다. 김우징이 유례없이 시중을 두 차례 역임하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당시 원성왕계 내부 독립된 두 가계, 즉 인겸태자계와 예영계의 균형을 위해서였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즉 처음 김우징이 시중직을 그만둔 이유는 잘 알수 없지만, 김우징이 시중직에 있었던 기간은 줄곧 인겸태자계인 김충공이 상대등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김충공이 일찍 죽고, 인겸태자계 내에서 왕위를 물려줄만한 사람이 사라지자, 흥덕왕은 예영계인 김균정을 상대등에 임명하는데, 이에 김우징은 아버지가 상대등이 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시중직에서 물러났던 것이다. 그리고 김충공의 아들인 김명이 이 시중직에 임명되었다. 이같은 상황을 볼 때, 상대등과 시중의 직위가 김충공?김명 부자와 김균정?김우징 부자 사이에 서로 안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독립된 두 가계가 서로를 견제하도록 하여 원성왕계 내부의 결속이 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최병현, 1978)

흥덕왕 11년(836) 흥덕왕이 사망한 이후, 아버지 김균정의 왕위계승을 지지하였으나, 사촌지간인 제륭과 왕위계승을 둘러싼 무력분쟁에서 패배하고 아버지가 사망하자, 희강왕 2년(837) 청해진으로 내려가 그곳에 군사적 원조를 요청하였다. 원래 청해진은 흥덕왕 3년(828)에 장보고의 건의에 의해 설치되었는데 이 당시 김우징은 집사부(執事部) 시중직에 있었으므로 청해진 설치의 실무를 통해 장보고와 특수한 인연이 있었다고 짐작된다. 이에 청해진에 김우징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집결하게 되었고, 마침내 우징이 장보고를 설득하는데 성공하였다. 한편 희강왕은 집권 3년만에 838년 김명의 쿠데타에 의해 자살하였는데, 이에 우징은 김명(민애왕)을 임금을 죽인 역적으로 규정하고 군사를 일으켰다.

민애왕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그는 패자측에 대해 관대한 태도로 그들을 포용하는 정책을 취하였다. 즉 달구벌 전투에서 민애왕의 10만군을 지휘했던 이찬 대흔(大昕), 대아찬 억훈(?勛) 등에게 너그러운 처벌을 내렸던 것이다.(이기동, 1991)

그러나 신무왕은 즉위 후 반년만인 11월 13일 그 정치적 역량을 펼쳐보지 못한 채 병사(病死)하고 태자인 경응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46대 문성왕으로 즉위하였다. 한편 신무왕의 사망 시기에 대해서『삼국사기』권10 신라본기10 신문왕 원년조에는 7월 23일로 기록하고 있어『삼국유사』왕력의 기록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참고문헌

최병헌, 1978,『한국사 3』, 국사편찬위원회.
윤병희, 1982,「新羅 下代均貞系의 王位繼承과 金陽」『歷史學報』 96.
이기동, 1991,「新羅 興德王의 政治와 社會」『국사관논총』21.
김창겸, 2003,『新羅 下代 王位繼承 硏究』, 경인문화사.

관련원문 및 해석

第四十五 神<武>王 [金氏 名佑(徵) 父均<貞>角干 追封成德大王 母貞(矯)夫人 追封祖禮英 (爲)惠康大王 妃(貞)從 一作繼太后 明海□之女 己未四月立 至十一月一十三日崩]
제45 신무왕[김씨이고 이름은 우징이다. 아버지는 균정각간으로 성덕대왕에 추봉되었다. 어머니는 정교부인이다. 할아버지인 예영을 혜강대왕으로 추봉하였다. 왕비는 정종 혹은 계태후라고도 하며 명해□의 딸이다. 기미년 4월에 즉위하였고 11월 13일에 이르러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