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니질금

유례니질금

분류 문학 > 인물 > 왕

기본정보

신라 제14대 왕
생몰년 : ?-298
재위기간 : 284-298

일반정보

“세리지왕(世里智王)”이라고도 한다. 석씨이며, 아버지는 제분왕이고, 어머니는 □소부인 박씨이다. 김씨인 제13대 미추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석씨가 다시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은 벌휴왕에서 점해왕까지 4명의 왕이 계승하면서 확대된 세력을 배경으로 하면서, 그의 모계인 박씨족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전문정보

『삼국사기』의 주(註)에는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3대와 14대의 두 임금의 이름이 유리(儒理) 혹은 유례(儒禮)로 똑같다고 하였다. 『삼국유사』 왕력편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세리지왕(世里智王)”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3대?14대 두 왕은 같은 왕명(王名)으로서 ‘늙[老]’의 의미를 가진 역사시대의 눌지(訥祗)가 상대(上代)로 투사되어 만들어졌다고도 보면서, 이들 셋은 ‘누리[世, 享, 繼]’의 뜻을 지녔는데, 박?석?김의 3성에 각각 이러한 이름을 가진 왕이 병립하여 있던 것을 하나의 계보로 만들어 버린 결과로 보기도 한다.(이병도, 1976)

그러나 『삼국사기』 권2 신라본기2 유례이사금 즉위조에 따르면, 유례왕은 “조분왕의 맏아들이고 어머니는 박씨 갈문왕(葛文王) 나음(奈音)의 딸이다. 일찍이 밤길을 가다가 별빛이 입 속으로 들어와 잉태하였는데, 태어나던 날 저녁에 이상한 향기가 방 안에 가득하였다(助賁王長子 母朴氏 葛文王奈音之女 嘗夜行 星光入口 因有娠 載誕之夕 異香滿室)”고 한다. 이는 다시 말해 유례왕의 아버지인 제 11대 조분왕의 왕비가 박씨인 나음갈문왕의 딸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조분왕의 왕비는 나해이사금의 딸 아이혜부인(阿爾兮夫人)이므로, 나음과 나해의 딸 두 사람이 조분왕의 왕비로 나오는 셈이 된다. 그러나 조분왕의 왕비가 구체적으로 2명이었다는 자료가 없으므로, 조분왕은 유례왕의 아버지가 아니라 할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설이 있다.(이종욱, 1980)

김씨왕인 미추왕의 뒤를 이어 석씨족에서 다시 왕위를 계승한 이유는 우선, 벌휴왕에서 점해왕까지 4명의 왕이 계승되는 동안 석씨족이 어느 정도 그 집단의 규모를 확대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유례왕은 이같이 성장한 세력을 배경으로 하면서 그의 모계인 박씨족의 도움을 받아 왕위에 오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선왕인 미추왕은 네명의 석씨왕에 이어 조분왕의 사위 자격으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그후 쉽게 왕위가 김씨족에게 계승되지 않고 다시 석씨인 유례에게 돌아온 것이다. 유례왕의 왕비는 기록에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아들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이종욱, 1980)

참고문헌

이병도, 1976, 『韓國古代史硏究』, 박영사.
이종욱, 1980, 『新羅上代王位繼承硏究』,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관련원문 및 해석

第十四 儒禮尼叱今[一作世里智王 昔氏 父諸賁(王) 母□召夫人朴氏 甲辰立 治十五年 補築月城]
제14대 유례니질금[혹은 세리지왕이라고도 한다. 석씨이다. 아버지는 제분왕이고, 어머니는 □소부인 박씨이다. 갑진에 즉위하여 15년간 다스렸다. 월성을 보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