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와

금와

분류 문학 > 인물 > 왕

기본정보

해부루를 이어 동부여의 왕이 된 인물이다.
생몰년 : 미상

일반정보

금와(金蛙)는 동부여(東扶餘)의 해부루(解夫婁)가 곤연(鯤淵)에서 데려와 기른 금빛 개구리 모양의 인물이다. 금와는 해부루를 이어 동부여의 왕이 되었으며, 버려진 주몽(朱蒙)의 어머니 유화(柳花)를 거두었다. 금와 사후(死後)에 동부여의 왕위는 대소(帶素)에 의해 이어졌다.

전문정보

금와(金蛙)는 해부루(解夫婁)를 이은 동부여(東扶餘)의 왕이다. 『삼국유사』 권1 기이1에 따르면 “해부루가 곤연(鯤淵)에 이르러 큰 돌을 보고 마주 대하여 눈물을 흘렸다. 왕이 이것을 이상히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돌을 굴리게 하니 금빛 개구리 모양의 어린아이가 잇었다. 왕은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는 곧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주심이로다고 하고 이에 거두어 이름을 금와라고 하였다. 그가 자라자 태자로 삼고, 부루가 세상을 떠나자 금와는 자리를 이어 왕이 되었다. 다음 왕위를 태자 대소에게 전하였다.”하여, 동부여왕 해부루가 금빛 개구리 모양의 어린아이를 거두어 금와라 하였으며, 금와를 태자(太子)로 삼고, 해부루가 세상을 떠나자 금와가 자리를 이어 왕이 되었으며, 금와의 아들 대소가 왕위를 잇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의 금와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와 동부여조와 거의 흡사하며, 주몽의 탄생설화와 관련하여 조금 더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금와는 태백산 남쪽의 우발수(優渤水)에서 하백(河伯)에게서 쫓겨난 하백의 딸 유화(柳花)를 발견하고 궁중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유화가 이상하게도 알을 낳자 이를 버리게 하였다. 그러나 곧 알의 신비함을 인정하고 유화에게 돌려주었는데, 이 알에서 주몽이 탄생하였다. 그의 일곱 아들들이 주몽을 시기하여 그를 처치할 것을 건의하였지만 금와는 듣지 않고 주몽으로 하여금 말을 기르게 하여 그 뜻을 시험하고자 하였다. 그 뒤 주몽이 달아나자 그를 추격하는 군대를 파견하였지만 잡지는 못하였다. 주몽이 고구려 건국을 위하여 남쪽으로 떠난 후에 유화가 동명성왕 14년에 죽자 태후(太后)의 예로서 장사를 치러주었었고, 금와 사후 왕위는 아들인 대소(帶素)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설화에서 개구리 모양의 인물이 속세가 아닌 곳의 영웅이나 신성왕으로 형상화 되는 경우가 있다. 금와 또한 이러한 경우로 천신(天神)과 수신(水神)과의 결합으로 생각하여 개구리를 수신의 형상으로 볼 수 있으며, 고대 왕자의 수신적 영능을 신화하는 것과도 관련 있다는 견해가 있다.(三品彰英, 1975)

그리고 금와와 해부루는 혈연관계가 없음에 주목하여 이들은 계통을 달리하는 집단의 부장(部長)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다. 해부루 집단은 북부여지역에 이동 정착한 후 비류수(沸流水)를 중심으로 부족국가를 건설한 집단이고, 금와 집단은 곤연 지역을 중심으로 와(蛙)를 토템으로 하고,」 김씨성을 칭한 집단으로 보는 것이다. 금와 집단은 상대적으로 후진적인 집단으로 이 집단은 훗날 선진된 문화의 자극을 받아 점차 두각을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금와의 대두는 이 집단의 성장의 표시로 북부여지역에서 정치적 주도권을 지니고 있던 해부루 집단에게 주목되었고, 해부루집단은 금와 집단의 현실적인 세력을 인정하고 그들과 일정한 관계를 맺어 해부루가 금와를 길러 태자로 삼게 되었다는 설화상의 구조를 설정한 것으로 추측하였다.(노중국, 1983)

참고문헌

三品彰英, 1975, 『三國遺事考證』上, ?書房.
노중국, 1983, 「東夫餘에 關한 몇가지 問題에 대하여」『韓國學論集』10.

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권1 기이1 동부여)
東扶餘
北扶餘王解夫婁之相阿蘭弗夢 天帝降而謂曰 將使吾子孫 立國於此 汝其避之[謂東明將興之兆也] 東海之濱 有地名迦葉原 土壤膏? 宜立王都 阿蘭弗勸王 移都於彼 國號東扶餘 夫婁老無子 一日祭山川求嗣 所乘馬至鯤淵 見大石相對<淚>流 王怪之 使人轉其石 有小兒 金色蛙形 王喜曰 此乃天賚我令胤乎 乃收而養之 名曰金蛙 及其長爲太子 夫婁薨 金蛙嗣位爲王 次傳位于太子帶素 至地皇三年壬午 高麗王無恤伐之 殺王帶素 國除
동부여
북부여(北扶餘)왕 해부루(解夫婁)의 재상 아란불(阿蘭弗)의 꿈에 천제(天帝)가 내려와서 이르기를, 장차 내 자손을 시켜 이곳에 나라를 세우려 하니, 너는 이 곳을 피해가거라.[동명(東明)이 장차 일어날 조짐을 이른다.]동해의 물가에 가섭원(迦葉原)이란 곳이 있는데, 땅이 기름지니 왕도를 세울 만하다고 하였다. 아란불은 왕에게 권하여 그곳으로 도읍을 옮기니, 국호를 동부여(東扶餘)라고 하였다. 부루(夫婁)가 늙고 아들이 없어서 하루는 산천에 제사지내 후사를 구하였다. 탔던 말이 곤연(鯤淵)에 이르러 큰 돌을 보고 마주 대하여 눈물을 흘렸다. 왕은 이것을 이상히 여겨 사람들을 시켜 그 돌을 굴리게 하니 금빛 개구리 모양의 어린아이가 있었다. 왕은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는 곧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주심이로다고 하고, 이에 거두어 기르고 이름을 금와(金蛙)라고 하였다. 그가 자라자 태자(太子)로 삼고 부루가 세상을 떠나자 금와는 자리를 이어 왕이 되었다. 다음 왕위를 태자 대소(帶素)에게 전하였다. 지황 3년 임오(壬午)에 고구려왕 무휼(無恤)이 이를 쳐서 왕 대소를 죽이니 나라가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