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동 고인돌

내동 고인돌

[ 金海 內洞 支石墓 ]

지역 김해

해방전 일본인 학자들이 수 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한 김해 회현리(會峴里) 조개무지에서 북서쪽으로 약 1.7㎞ 떨어진 경운산 산록 아래의 평탄한 사면에 위치한다.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원래 고인돌(支石墓)이 많이 있었으나 마을이 들어서면서 대부분 없어진 상태로, 현재 확인된 고인돌은 모두 3기 뿐이다. 이 중 1호 고인돌은 1976년 부산대학교박물관에 의해, 2호 고인돌은 1985년 동의대학교 사학과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으며, 3호 고인돌은 지금도 민가 내에 있다.

1호 고인돌은 조사 이전에 덮개돌(上石)이 제거되었으므로 구조와 형식 등은 확실하지 않지만, 지하 매장시설(埋葬施設) 위를 깬돌(割石)로 덮은 돌무지(積石部) 한가운데에 덮개돌을 받친 고임돌(支石)로 추정되는 3개의 큼직한 돌이 놓여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지하 매장시설은 길이, 너비, 깊이가 3.5×1.2×0.9m의 무덤구덩이 내에 깬돌로 구축된 돌덧널형(石槨型) 구조로서, 바닥에도 깬돌을 깔았다. 출토유물로는 고인돌 상부 돌무지에서 세형동검(細形銅劍) 1점과 민무늬토기편(無文土器片), 붉은간토기편(紅陶片)과 함께 완형(完形)의 검은간토기 목긴항아리(黑陶長頸壺) 1점이 출토되었다. 세형동검은 결입부(抉入部) 이하에 등날이 형성되지 않은 Ⅰ식(尹武炳, 韓國靑銅器文化硏究, 藝耕産業社, 1991)이다. 검은간토기는 직립의 목과 둥그스름한 동체를 가진 전형적인 형태로서 괴정동(槐亭洞) 출토 예와 같은 형식이다.

2호 고인돌은 1호 고인돌에서 서남쪽으로 200m 떨어져서 있고, 고임돌(支石)을 가진 전형적인 기반식(南方式)고인돌이다. 고인돌의 구조는 덮개돌, 고임돌, 돌무지, 매장주체부로 구성되었는데, 매장주체부는 뚜껑돌(蓋石)을 가진 지하 돌덧널형으로 규모는 2.3×0.7×0.96m이다. 유물은 유구 내의 상부에서 붉은간토기, 돌화살촉(石鏃)이 각 1점과 야요이토기편(彌生土器片)이 출토되었다.

김해 내동 고인돌은 구조상으로 보아 전형적인 기반식고인돌에 속하며, 고인돌에서 세형동검이 출토된 예로서 중요하다. 이처럼 고인돌에서 세형동검이 출토된 유적으로는 경기도 양주군 상자포리(上紫浦里)(현재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전남 영암 장천리(長川里) 등의 예가 있다. 그 연대는 대체로 청동기(無文土器)시대 후기의 과도기적 단계인 B.C. 4-3세기경으로 이해된다.

참고문헌

  • 金海 內洞 支石墓 調査槪報(金廷鶴, 釜山 堂甘洞 古墳群, 釜山大學校博物館, 1983년)
  • 金海 內洞 第 2號 큰돌무덤(林孝澤·河仁秀, 東義史學 4, 東義大學校史學會, 198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