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반식고인돌

기반식고인돌

[ 碁盤式支石墓 , 南方式支石墓 ]

기반식고인돌 세부명칭

기반식고인돌 세부명칭

기반식고인돌은 ‘남방식고인돌’ 혹은 ‘바둑판식고인돌’이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주로 전라도, 경상도 등 한강 이남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판돌(板石), 깬돌(割石), 냇돌(川石) 등을 사용하여 지하에 무덤칸을 만들고 덮개돌(上石)과 무덤칸 사이에 3, 4매 또는 그 이상의 고임돌(支石)이 있는 형식이다.

지하 무덤칸의 구성은 여러 가지 방법이 사용되어 왔으나, 이들은 반드시 그 윗면을 덮는 자신의 뚜껑돌(蓋石)을 가지고 있다. 뚜껑으로는 판돌을 이용하기도 하였으나 나무로 만든 뚜껑을 덮었을 가능성도 많다. 일부에서는 개석식(無支石式)고인돌을 기반식고인돌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지하 매장시설의 구조는 돌널형(石棺形), 혼축형(混築形) 돌덧널형(石槨形), 돌돌림형(圍石形) 그리고 토광형(土壙形)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영광 대마면 기반식고인돌

영광 대마면 기반식고인돌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돌널형매장구조(石棺形埋葬構造)는 무덤칸의 벽석(壁石)이 10㎝ 내외의 판돌로 조립된 것이며, 각 벽석이 1매인 것과 장벽석을 2매 이상으로 조합한 것이 있다. 혼축형매장구조(混築形埋葬構造)는 일부에 판돌을 세우고, 일부는 깬돌로 쌓아 축조한 것으로, 장벽(長壁)이 판돌인 것과 단벽(短壁)이 판돌인 것이 있다. 다음 돌덧널형매장구조(石槨形埋葬構造)는 무덤칸을 깬돌이나 자연석으로 쌓아 축조한 것으로 깬돌이나 자연석을 세워 축조한 것, 깬돌을 세우고 일부는 쌓은 것, 깬돌이나 자연석을 2-3단 이상으로 쌓아서 축조한 것, 그리고 무덤칸 일부에만 간단한 벽석이 있는 것이 있다.

돌돌림형매장구조(圍石形埋葬構造)는 덮개돌(上石)을 받치고 있는 고임돌(支石) 자체가 무덤칸을 이룬 것으로, 덮개돌 아래의 대형 고임돌 사이를 돌로 메워 그 자체가 무덤칸을 이룬 것, 20-30㎝ 크기의 고임돌들이 공백없이 돌려져 무덤칸을 이룬 것이 있다. 지하 토광형매장구조(土壙形埋葬構造)는 덮개돌 아래에 뚜렷한 돌시설이 없이 토광만 있는 것으로, 토광 주위에 깬돌을 간단히 높인 것과 순수한 토광인 것이 있다.

지하 돌널형의 고인돌은 서북한지역의 개석식고인돌에서 많이 보이는데, 한강 이남 특히, 전남과 경남의 남부지역에서는 돌덧널형 무덤칸이 가장 성행한다. 특히 기반식고인돌이 밀집한 전남지방의 고인돌을 살펴볼 때 2개의 지역군 설정이 가능하다. 즉 영산강 유역에서는 돌널형 무덤칸이, 보성강 유역에서는 돌덧널형 무덤칸이 많다. 또한 보성강 유역에서는 간돌검(磨製石劍) 등의 부장풍습(副葬風習)이 유행하고 있으나, 영산강 유역에서는 부장유물이 거의 발견된 바 없고 단지 무덤칸 주변에서 빈약한 유물이 출토되고 있을 뿐이다. 돌돌림형은 전남, 경남지방 등 한반도 남부지방에서만 보이는 것으로, 제주도에서 보이는 10매 이상의 판돌로 고임돌을 구성한 고인돌도 이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제주도 고인돌은 한반도와 달리 판돌을 세워서 축조한 것이 다르다.

부장유물로는 돌검과 돌화살촉(石鏃)이 가장 많이 공반출토되고 있다. 돌검은 지역에 따라 형식이 다른데, 금강·한강유역에서는 일단병식(一段柄式)과 이단병식(二段柄式)돌검이, 남부지방에서는 유경식(有莖式)과 일단병식 돌검이 출토된다. 돌검과 청동기가 공반된 예는 경남 진동리(鎭東里), 덕치리(德峙里) 등 남부지방에서만 나타난다. 청동기와 옥이 공반된 예는 전남 승주 우산리(牛山里), 여천 봉계동(鳳溪洞), 적량동(積良洞), 그리고 오림동(五林洞) 등 전남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나타난다.

기반식고인돌은 평지나 구릉 위에 분포하고 있으나, 때로는 좁은 평지가 있는 계곡 사이나 산의 경사면 또는 산 정상부에서도 발견되고 있는데, 대개 일정한 형식이 없이 거대한 덮개돌(上石)을 구하기 쉽고 운반하기 용이한 곳을 택하고 있다. 고인돌의 기능은 무덤으로서의 기능, 제단(祭壇)으로서의 기능, 묘표석(墓標石)의 기능 등 세 기능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것은 무덤의 기능이다. 제단으로서의 기능은 계곡이나 산기슭의 약간 높은 대지상(臺地上)에 1기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경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괴석형(槐石形) 덮개돌에 대형 고임돌이 있는 전형적인 기반식, 그리고 판돌형 덮개돌에 기둥모양의 고임돌이 받치고 있는 고인돌이 주로 이에 속한다. 묘표석으로서의 기능을 하는 것은 군집 내에서 무덤칸이 없는 고인돌의 경우이다. 거의 대부분 괴석형 덮개돌에 대형 고임돌을 고이고 있는데, 집단의 묘역을 상징하는 기념물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

기반식고인돌의 축조 연대는 요녕(遼寧)지방 청동기의 초기형식인 전형적인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이 출토되는 예로 보아, 그 상한은 B.C. 8-7세기경이고, 그 전성기는 B.C. 6-4세기경으로 이해된다. 그 하한에 속하는 기반식고인돌은 돌돌림형 고인돌로 추정되는데 기원전후한 시기까지 내려올 가능성이 있다. 제주도의 지상 돌돌림형 판돌식고인돌은 원삼국시기에 속하는 곽지리식(郭支里式) 토기가 출토되므로, 한국에서 가장 늦은 형식의 고인돌이라고 볼 수 있겠다.

참고문헌

  • 嶺南地域 支石墓의 型式과 構造(河仁秀, 伽倻考古學論叢 1, 伽倻文化硏究所, 1992년)
  • 韓國 靑銅器時代 文化의 理解(沈奉謹, 東亞大學校出版部, 1990년)
  • 全南地方 支石墓의 性格 - 分布 및 構造를 中心으로(李榮文, 韓國考古學報 20, 韓國考古學會, 1987년)
  • 全南地方所在 支石墓의 型式과 分類(崔夢龍, 歷史學報 78, 歷史學會, 1978년)
  • 韓國支石墓硏究(金載元·尹武炳, 國立中央博物館 古蹟調査報告 6, 國立中央博物館, 196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