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블랙홀

[ Black hole ]

블랙홀은 검은(black) 구멍(hole), 즉 강한 중력에 의해 빛 조차 빠져 나올 수 없어서 검게 보이는 천체를 뜻한다. 1783년 영국의 성직자이며 자연철학자였던 미첼(John Michell)은 뉴튼(Isaac Newton)의 역학과 중력이론을 기초로 별이 무거우면서도 크기가 작으면 별 표면에서 빛 조차 빠져나올 수 없게 되어 별이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후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1915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고 같은 해 슈바르츠실트(Karl Schwarzschild)가 블랙홀의 수학적 해를 발견함으로써 비로소 블랙홀을 현대물리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질량이 존재하면 시공간이 휘게 되고 휜 시공간의 효과가 바로 중력이라는 것이 일반상대성이론이다. 이 이론에서 블랙홀은 시공간이 심하게 휘어서 어떤 입자나 빛도 바깥으로 빠져 나갈 수 없는 영역을 말한다. 이 영역의 바깥 경계면을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고 한다. 회전하지 않는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은 블랙홀의 질량에 따라 정해지는 슈바르츠실트반지름(슈바르츠실트반경, Schwarzschild radius)에 위치한다. 질량이 태양과 같은 블랙홀의 슈바르츠실트반지름은 3 km이다. 블랙홀에서 사건의 지평선 안쪽이 어떤 상태인지는 관측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탐구하기가 어렵다. 양자적 효과 때문에 블랙홀 내부에서 나오는 미약한 빛, 즉 호킹복사가 나온다는 이론이 있으나 관측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블랙홀의 존재는 사건의 지평선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측함으로써 알아낸다. 외부에서 물질이 유입되면 사건의 지평선 밖에 부착원반이 형성되고 가열되어 빛을 내게 되고, 이 빛을 관측하여 중심부 질량을 추정함으로써 블랙홀을 확인한다. 우주에서 최초로 확인된 블랙홀은 강한 엑스선을 내는 백조자리 X-1이다. 이는 별과 비슷한 질량을 갖는 별질량 블랙홀이다. 우리은하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은하 중심부에는 태양 질량의 수백만 배에서 수십억 배에 이르는 초대질량블랙홀(supermassive black hole)이 있다. 은하 중심부의 초대질량블랙홀에 충분한 물질이 유입되면, 은하 중심부는 활성화되어 매우 강력한 빛을 방출하는 퀘이사나 활동은하핵이 된다. 블랙홀에서는 시간지연 현상이 일어난다. 블랙홀은 중력렌즈, 중력파와 같은 일반상대성 현상들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목차

사건의 지평선과 블랙홀의 크기

블랙홀은 보통 별이나 중성자별 등의 천체들처럼 특정한 공간을 물질들이 채우고 있는 상태가 아니므로 보통 천체와 달리 블랙홀의 크기는 외부와 단절된 영역의 크기를 의미한다. 그림 1은 회전하지 않은 블랙홀 시공간 중 2차원 곡률만을 표현한 그림이다. 중심으로 갈수록 공간이 심하게 휘어 특정한 영역 안쪽에서는 빛 조차도 밖으로 빠져 나올 수 없게 된다. 이 경계면을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 부르는데 이 안에서 일어난 사건은 외부와 단절된다는 뜻이다(그림 1).

그림 1: 블랙홀 시공간의 휜 정도를 시각화한 그림(출처: )

회전하지 않는 블랙홀의 경우 사건의 지평선은 슈바르츠실트반지름에 위치하게 되고 이를 블랙홀의 크기로 생각할 수 있다(그림 1). 질량이 태양의 10배인 블랙홀의 반경은 30 km, 태양의 1억 배인 블랙홀의 반경은 3억 km로 태양-지구 거리의 2배 정도가 된다. 그러나 이 크기는 블랙홀까지의 거리에 비해 너무 작아 현재의 망원경으로는 그 모습을 직접 관측하기 매우 어렵다.

회전하지 않는 천체의 크기가 슈바르츠실트반지름보다 작아지면 블랙홀이 되게 된다. 따라서 태양을 3 km 보다 작게 만들면 블랙홀이 되겠지만 현재 태양의 물리적 상태를 고려하면 태양이 저절로 이렇게 작아질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질량이 아주 큰 별은 진화 과정에서 중력에 의해 수축되어 그 크기가 슈바르츠실트반지름보다 작아지면서 블랙홀이 될 수 있다.

블랙홀의 종류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안정된 블랙홀은 질량, 각운동량 및 전하로만 결정된다. 각운동량과 전하가 없고 질량만 가진 가장 간단한 블랙홀이 슈바르츠실트블랙홀, 각운동량 없이 질량과 전하만 가진 블랙홀은 라이스너-노르드스트롬블랙홀(Reissner-Nordstrom black hole), 전하 없이 질량과 각운동량만 가진 블랙홀은 커블랙홀(Kerr black hole)이다. 질량, 각운동량, 전하를 모두 가진 블랙홀은 커-뉴만블랙홀(Kerr-Newman black hole)이다. 모두 일반상대성이론의 장방정식의 수학적 블랙홀 해를 발견한 학자들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우주에서 거시적인 물제들은 대부분 전하가 없는 중성(neutral)상태여서 라이스너-노르드스트롬 블랙홀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생각되므로 우주에서 발견되는 블랙홀은 질량과 각운동량에 의해서만 그 특성이 구별되는 슈바르츠실트블랙홀 또는 커블랙홀일 것이다.

블랙홀의 상태

블랙홀이 외부와 단절되는 시공간 영역을 말하는 것이라면 블랙홀의 질량을 결정하는 물질은 어디에 어떤 상태로 있는지 궁금해 할 수도 있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이 물질들은 블랙홀 중심부, 반경이 0인 곳에 무한대의 밀도로 존재하는 특이점(singularity)이 되어야 한다. 즉 블랙홀은 가장 중심에 존재하는 특이점에 의해 구멍과 같은 휜 시공간이 만들어진 상태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양자역학적인 효과에 의해 블랙홀 중심은 수학적인 특이점과는 다른 상태로 존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 양자역학이 제대로 고려된 완전한 중력이론이 없어서 물리적으로 어떤 상태일지 또는 어떤 시공간 모양을 가지고 있을 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백조자리 X-1

1970년 최초의 엑스선 관측 위성 우후루(Uhuru, 스와이힐리어로 자유)가 백조자리에서 엑스선을 내는 천체 백조자리(Cygnus) X-1을 발견하면서 일반상대성이론의 수학적 해로만 존재하던 블랙홀은 실제 우주에 존재하는 천체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백조자리 X-1은 HDE226868라는 이름의 청색 초거성을 5.6일의 아주 짧은 주기, 즉 아주 가까이서 돌고 있지만 가시광선에서는 보이지 않고 그 질량은 적어도 태양의 7배 이상임이 확인되면서 최초로 발견된 블랙홀이 되었다. 그림 2는 블랙홀 백조자리 X-1이 이웃 별 HDE226868로부터 기체를 끌어들이는 모습의 상상도인데 엑스선은 회전하는 뜨거운 기체 원반에서 방출되고 가시광선은 이웃 별에서 대부분 방출된다.

그림 2: 백조자리 X-1의 상상도. 오른쪽 아래 회전하는 밝은 원반 중심의 검은 부분에 블랙홀이 있다. (출처: )

중성자별과 블랙홀

어떤 천체가 블랙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질량이 아주 좁은 공간에 있어야 함이 입증되어야 한다. 호킹(Stephen Hawking)과 펜로즈(Roger Penrose) 등의 일반상대성이론 연구에 의하면 질량이 아주 좁은 공간에 몰려있으면 블랙홀 외의 다른 상태로 존재할 수 없음이 이론적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중성자별도 태양 정도의 질량이 반경 10 ~ 15 km 크기로 존재하는 밀집천체(compact object)이다. 그러나 중성자별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한계 질량은 태양 질량의 3배 이하인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엑스선을 방출하는 여러 엑스선 천체들이 보통 별과 중성자별로 이루어진 엑스선 쌍성계로 설명될 수 있지만 백조자리 X-1 같이 엑스선을 방출하는 특이 천체의 질량이 중성자별의 한계질량보다 더 무거울 경우 블랙홀로 판정하게 된다.

별질량블랙홀과 초대질량블랙홀

어떤 천체의 질량은 대부분의 경우 주변에 있는 기체나 별 등의 운동을 관측하여 역학적인 방법으로 결정한다. 이런 방법으로 질량이 확인된 블랙홀들은 질량에 따라 두 가지로 구별된다. 백조자리 X-1처럼 다른 별과 쌍성계를 이루며 질량이 태양의 10배 정도인 별질량블랙홀(stellar mass black hole)과 우리은하를 포함한 거의 모든 은하의 중심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태양 질량의 수백만 배에서 수십억 배에 이르는 초대질량블랙홀(supermassive black hole)이다.

우리은하 중심부에는 궁수자리A*(Sagittarius A*)라 불리는 특이한 전파원이 있는데 이 전파원 주위 별들의 운동을 적외선으로 10여 년 관측한 결과 이 별들이 아주 빨리 움직이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별들이 이렇게 빨리 움직이기 위해서는 강한 중력이 존재해야 하므로 우리은하 중심부에는 작지만 아주 무거운 천체가 존재해야 한다. 이렇게 확인된 우리은하 중심부 블랙홀의 질량은 태양 질량의 약 440만배이고 슈바르츠실트 반경은 1,300만 km로 태양-지구 거리의 약 12분의 1이다. 우리은하 중심부 블랙홀을 발견한 이 공로로 겐젤(Reinhard Genzel)과 게즈(Andrea Ghez)는 202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림 3: 우리은하 중심부 궁수자리A*의 모습. 푸른 색은 엑스선, 붉은 색은 적외선 사진을 나타낸다. 확대된 두 사각형은 엑스선 우주망원경 찬드라(Chandra)로 궁수자리A*가 밝아지기 전과 밝아진 이후를 각각 촬영한 것이다. (출처: )

최근 관측으로 우리은하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은하의 중심부에는 초대질량 블랙홀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은하와 그 은하 중심부 초대질량 블랙홀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이 확인되어 은하와 블랙홀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진화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별질량 블랙홀은 별의 진화 마지막 과정에서 초신성 폭발으로 생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초대질량 블랙홀은 은하들이 병합(merging)되면서 커지는 과정에서 질량이 늘어났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최근에는 태양 질량의 100배 이상의 질량을 가진 중간질량블랙홀(intermediate mass black hole)들의 존재 가능성도 제기되었고, 호킹은 초기 우주에서 원시블랙홀(primordial black hole)들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주장하였다.

블랙홀의 에너지 방출

블랙홀은 중력이 아주 강해서 주변 기체들을 부착(accretion)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기체들은 압축되고 가열되어 에너지가 높은 엑스선이나 감마선을 많이 방출하게 된다. 빛의 속도에 가깝게 뿜어져 나오는 제트를 방출하는 전파은하, 중심에서 많은 에너지를 방출하는 활동은하핵, 우주에서 가장 밝은 천체인 퀘이사 등도 모두 블랙홀이 기체를 부착하면서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그림 4: 은하 중심부에 먼지(붉은 색 원환면)에 둘러싸인 있는 초대질량 블랙홀이 기체를 부착( 푸른색 원반)하면서 제트(녹색)를 방출하는 모습의 상상도. (출처: )

블랙홀에 의한 시간지연과 적색이동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중력이 강한 곳, 즉 심하게 휜 시공간에서 시간은 느리게 간다. 지구 상에서의 실험에서도 입증된 이 시간지연 효과는 블랙홀 주위에서 가장 심하게 나타난다.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에서 처럼 블랙홀 근처에서 보낸 1년이 블랙홀에서 먼 곳에 위치한 관찰자에게는 수십, 수백 년에 해당하게 된다. 사건의 지평선에 가까이 갈수록 이 시간지연 효과는 커지게 된다. 따라서 블랙홀 사건지평선에 아주 가까이 갔다가 지구로 돌아오게 되면 아주 먼 미래의 지구로 돌아오게 된다. 따라서 블랙홀은 미래로 가는 타임머신이라 할 수 있다. 같은 이유로 블랙홀 근처에서 방출된 빛을 지구에서 관측하면 주기가 늘어나게 된다. 즉 파장이 길어지는 적색이동 현상이 나타난다. 천문학자들은 블랙홀 근처에서 방출되는 빛을 관측하여 분석함으로써 블랙홀 주위 시공간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기도 한다.

블랙홀과 호킹복사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주변에 아무런 물질이 없는 경우 블랙홀은 전혀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고 검게 보여야 한다. 하지만 호킹은 블랙홀 시공간에서의 양자역학적 효과를 고려하면 블랙홀 혼자서도 미약하나마 빛이나 입자를 방출한다고 이론적으로 예측하였고 이를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라 부르지만 아직 관측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블랙홀 중력렌즈

블랙홀에 대한 많은 천문학적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 블랙홀의 모습이 직접 촬영되지는 않았다. 블랙홀 주위의 시공간은 많이 휘어져 있으므로 지나가는 빛도 많이 꺾이게 되어 강한 중력렌즈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홀로 있는 블랙홀은 보이지 않겠지만 밝은 천체 앞에 있는 블랙홀은 중력렌즈 작용으로 배경의 천체들을 특이한 모양으로 변형시킨다. 그림 5는 M101 은하 앞에 가상의 무거운 블랙홀이 지나갈 경우를 일반상대성이론으로 계산한 결과이다.

그림 5: M101 은하 앞을 가상의 블랙홀이 지나가는 경우를 일반상대성이론으로 계산하여 그린 상상도(출처: M101 사진-전영범, 계산-이혜란,한원진,석우진,한두환,박명구/천문학회)

블랙홀과 중력파

한편 2015년 9월 14일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예측되었던 중력파가 중력파 검출기 라이고(LIGO)와 비르고(VIRGO)에 의해 마침내 검출되었다. 중력파는 무거운 천체들의 운동에 의해 시공간에 생기는 파동을 말하는데 중력파는 빛의 속도로 전파해간다. 라이고 같은 중력파 검출기는 멀리 떨어진 두 거울 사이의 거리가 아주 미세하게 변하는 것을 검출하는데 2015년 9월 14일 검출된 거리 변화는 태양 질량의 36배인 블랙홀과 29배인 블랙홀이 합쳐져서 태양 질량의 62배인 블랙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공간 변화의 모습과 일치하였다. 이로써 태양 질량의 수십 배에 달하는 무거운 블랙홀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서로 합쳐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하게 되었다.

블랙홀 사건의 지평선 관측

블랙홀 가까이 시공간은 매우 휘어 있어서 빛(광자)도 원운동하는 궤도가 존재한다. 슈바르츠실트블랙홀의 경우 이 광자고리(photon ring)의 반지름은 슈바르츠실트반지름의 1.5배이다.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 빛을 방출하는 기체들이 있을 경우 빛들은 이 궤도를 돌다가 휘어지면서 밖으로 빠져 나오게 되어 멀리서 보면 지름이 슈바르츠실트반지름의 @@NAMATH_INLINE@@ 3\sqrt{3} = @@NAMATH_INLINE@@5.2배인 광자구(photon sphere)로 보이게 된다. 하지만 슈바르츠실트반지름에 비해 블랙홀까지의 거리는 매우 멀어서 이 광자구들은 관측이 불가능하였다.

하지만 2017년 4월 지구 상 8곳에 위치한 전파망원경들을 묶어서 지구 크기의 전파망원경과 같은 효과를 내는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으로 극초단파 영역에서 처녀자리 은하 M87 중심부를 관측하는데 성공하였고, 전파관측 자료들은 구경합성 방법으로 분석되어 사상 처음으로 블랙홀의 광자구의 영상을 얻는데 성공하였다(그림 6). 가운데 검은 부분은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안쪽으로 들어가는 궤도 방향이므로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을 보는 셈이다. 광자구의 모습과 크기, 한쪽 부분이 상대론적 빛집중(relativistic beaming)에 의해 좀 더 밝게 보이는 점 등은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예측되는 결과와 아주 잘 일치한다.

그림 6: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으로 촬영한 M87 은하 중심부 초대질량블랙홀의 광자구와 사건의 지평선 모습. (사진: Event Horizon Telescope/NSF/ESO)

동의어

별질량블랙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