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풍류

[ 風流 ]

속된 일을 떠나 풍치(風致) 또는 운치(韻致)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을 풍류라고 한다. 음악과 관련해 풍류를 잘 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을 풍류가(風流家) 또는 풍류객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전통음악 중에는 오랜 역사 속에서 잔치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형성된 음악문화가 있다. 그것이 바로 풍류이다.

조선시대 위로는 왕을 중심으로 한 궁중잔치에서 풍류가 필수적으로 수반됐고, 아래로는 궁중 밖 일반 백성의 잔치에서도 풍류는 필수적이었다. 궁중잔치의 풍류는 장악원(掌樂院)의 악공(樂工)들이 제공했다. 민간잔치의 풍류는 창우·광대·재인 등 직업적인 연예인들에 의해서 제공됐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지식과 재부(財富)를 겸한 중인층이 시회(詩會)나 가단(歌壇)을 형성하여 새로운 풍류를 발전시켰다. 그런 풍류의 음악문화 즉 성악쪽에는 가곡·가사·시조 등 및 기악 분야에는 "영산회상"(靈山會相) 등 새로운 갈래의 민간음악이 조선후기 음악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도 했다. 줄풍류대풍류처럼 풍류라는 말은 특히 "영산회상" 같은 기악곡의 별칭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사관풍류라는 말은 가곡과 관련된 음악용어로 정착되었다.

신윤복의 두 풍류도(간송미술관 소장)

신윤복의 두 풍류도(간송미술관 소장)

조선후기 풍류라는 음악문화의 모습은 1884년(헌종 10) 한양거사(漢陽居士)의 "한양가"(漢陽歌)에 다음과 같이 묘사되었다.

"화려한 거문고는 안족을 옮겨 놓고, 문무현(文武絃) 다스리니 농현소리 더욱 좋다. 한만한 저 다스림 길고길고 구슬프다. 피리는 춤을 받고 해금은 송진 긁고, 장고는 굴레 죄어 더덕을 크게 치니, 관현의 좋은 소리 심신(心身)이 황홀(恍惚)하다. 거상조(擧床調) 내린 후에 소리하는 어린 기생, 한 손으로 머리 받고 아미를 반쯤 숙여, 우조라 계면이며, "춘면곡"(春眠曲) "처사가"(處士歌)며, "어부사"(漁父辭) "상사별곡"(相思別曲) "황계타령"(黃鷄打令) "매화타령"(梅花打令) 잡가 시조 듣기 좋다. 춤추는 기생들은 머리에 수건 매고, 웃영산 늦은 춤에 "중영산"(中靈山) 춤을 몰아, 잔영산 입춤추니 무산선녀(茂山仙女) 내려온다. ···(중략)···

금객(琴客) 가객(歌客) 모였고나. 거문고에 임종철(林宗哲)이, 노래에 양사길(梁四吉)이, 계면(界面)에 공득이(孔得伊)며, 오동복판(梧桐腹板) 거문고는 줄 골라 세워놓고, 치장 차린 새 양금(洋琴)은 떠난 나비 앉혔구나. 생황(笙簧) 퉁소 죽장고(竹杖鼓)며, 피리 저 해금(奚琴)이며, 새로 가린 큰 장구를 청서피 새 굴레에 홍융사(紅絨紗) 용두(龍頭)머리 단단히 죄어매고, 태극 그린 큰북가에 쌍룡(雙龍)을 그렸구나. ··· 운운."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6.2297쪽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송방송, 383~89쪽

참조어

대풍류(竹風流) , 줄풍류(絲風流) , 뒷풍류 , 민간풍류(民間風流) , 전라도풍류(全羅道風流), 풍류가(風流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