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가

한양가

[ 漢陽歌 ]

요약 ① 1844년(헌종 10) 한양거사(漢陽居士)가 지은 가사.
② 최남선(崔南善) 작의 창가(唱歌).

① 1844년(헌종 10) 한양거사(漢陽居士)가 지은 가사. 조선왕조의 수도 한양을 칭찬한 이 노래는 모두 1,622구(句)의 장편 가사로 됐다. 서곡으로 한양 지세(地勢)의 놀라움을 말하고, 다음으로 웅대한 대궐(大闕), 찬란한 관아와 관직, 번화한 거리의 풍경, 화려한 누정(樓亭), 엄숙한 임금의 거동, 빛나는 과거의 광경 등을 서술한 후 끝에서는 역대 도읍(都邑) 중에서 한양이 제일이라고 찬양했다. 다음은 "한양가"에 나오는 음악 관련의 사설이다.

"장악원 협율랑(協律郞)은/습악(習樂)하기 일삼으니/이원제자(梨園弟子) 천여 명은/무동(舞童) 악공(樂工) 되었어라/제악(祭樂)의 긴 곡조는/신명(神明)이 오시는듯/"여민락"(與民樂) "보허자"(步虛子)는/여민동락(與民同樂) 한이 없다/포구락(抛毬樂) 북춤이며/학춤이며 몽금척(夢金尺)과/쟁강춤 배따라기/화려도 거룩하다/그 중에 처용무(處容舞)는/경주(慶州)로서 왔다 하네/금객(琴客) 가객(歌客) 모였구나/거문고 임종철(林宗哲)이/노래에 양사길(梁四吉)이/계면에 공득이(孔得伊)며/오동복판(梧桐腹板) 거문고는/줄 골라 세워놓고/치장(治粧) 차린 새 양금(洋琴)은/떠난 나비 앉혔구나/생황(笙簧) 퉁소 죽장고(竹杖鼓)며/피리 저 해금(奚琴)이며/새로 가린 큰 장구를/청서피(靑鼠皮) 새 굴레에/홍융사(紅絨紗) 용두머리/단단히 죄어 매고/태극 그린 큰북 가에/쌍룡(雙龍)을 그렸구나/화려한 거문고는/안족(雁足)을 옮겨 놓고/문무현(文武絃) 다스리니/농현(弄絃) 소리 더욱 좋다/한만(閑慢)한 저 다스림/길고 길고 구슬프다/피리는 춤을 받고/해금은 송진 긁고/장고는 굴레 죄어/더덕을 크게 치니/관현(管絃)의 좋은 소리/심신(心身)이 황홀(恍惚)하다/거상조(擧床調) 내린 후에/소리하는 어린 기생(妓生)/한 손으로 머리 받고/아미(蛾眉)를 반쯤 숙여/우조(羽調)라 계면(界面)이며/소용이(搔聳伊) 편락(編樂)이며/"춘면곡"(春眠曲) "처사가"(處士歌)며/"어부사"(漁父辭) "상사별곡"(相思別曲)/"황계타령"(黃鷄打令) "매화타령"(梅花打令)/잡가 시조 듣기 좋다/춤추는 기생들은/머리에 수건(手巾) 매고/"상영산" 늦은 춤에/"중영산" 춤을 몰아/잔영산 입춤 추니/무산선녀(茂山仙女) 내려온다/배따라기 북춤이며/대무(對舞) 남무(男舞) 다 춘 후에/안 올린 벙가지며/ ··· 운운."

② 최남선(崔南善) 작의 창가(唱歌). 이 "한양가"의 가사는 "너 보아라 하난 듯 우뚝하게 서/큰 광채를 발하던 독립문은/오늘 와서 잠시간 빛 없을망정/태양 같이 환한 날 머지 않헛네. ··· 운운"이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6.2390~92쪽
  • 『韓國洋樂百年史』 李宥善, 서울: 음악춘추사, 1985년, 62쪽

참조어

한양거사(漢陽居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