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에렉투스

호모 에렉투스

[ 古人 , Homo erectus ]

호모 에렉투스 골격

호모 에렉투스 골격

인류 진화 상에서 호모 하빌리스호모 사피엔스의 중간 단계에 위치한 고인류 화석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구대륙에서 19세기 경부터 발견된다.

호모 에렉투스의 공식명칭은 쟈바원인의 발견 이후에 만들어졌다. 이들의 활동영역은 최근의 화석발견으로 인하여 계속 확대되고 있는데, 약 150만년 전에는 아프리카, 유럽일대와 중국까지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올두바이와 동부 투르카나 지역에서는 화석과 초기의 올도완 전통에서 직접 발전한 찍개중심의 석기군이 같이 발견되고 있으며, 약 150만년 전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쟈바에서 발견된 일부 화석도 그 시기의 것으로 보이나 몇몇 화석은 약 70만년을 넘지 않는 중기 홍적세의 것이다. 단선진화론자인 브레이스는 이를 바탕으로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로부터 확산되어 동쪽으로는 빠르게, 북쪽과 서북쪽(유럽) 그리고 동북쪽(중국)으로는 서서히 확산되었을 것으로 본다.

1950~1960년대에 아프리카에서는 알제리의 터니파인, 올두바이 협곡의 Bed 2에서 호모에렉투스 화석이 발견되었다. 1970년대에 모로코의 살레, 동아프리카의 쿠비포라에서 완전한 두개골이 발견되었다. 이 지역에서 160만년 전의 것으로 알려진 KNM ER-3733 머리뼈 화석은 커다란 머리통과 가냘픈 머리선 및 옆니를 가지고 있지만, 전체모습은 중국 주구점(周口店)에서 출토된 화석과 유사하다.

영국과 프랑스의 연구자들은 화석의 연대 측정을 위해 전자스핀공명법과 열발광연대측정법이라 불리는 새로운 측정법을 적용하였다. 이 새로운 2가지 방법은 많은 암석에서 공통적인 특정 방사성동위원소의 붕괴에 토대를 두고 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유럽에서 발견된 호미니드 화석 중에 초기 플라이스토세인 160만년 전부터 중기 플라이스토세에 해당하는 화석의 분류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호미니드는 시간의 선후에 따라 호모 에렉투스와 옛 호모 사피엔스로 구분하였으며, 유럽에서 발견된 중기 플라이스토세의 호미니드는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 또는 옛 호모 사피엔스로 분류하였다. 아시아의 경우, 전기·중기 플라이스토세에 해당하는 호미니드의 진화상 위치 선정과 분류는, 중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된 화석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중국에서 발견된 호미니드는 모두 호모 에렉투스로 분류되고 있지만, 인도네시아 경우 〈종의 단위〉에서 볼 때 생물학상 차이를 찾을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일부 인도네시아 학자들은 100만년 전부터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나기 전까지 자바에서는 시기에 따라 호모 에렉투스를 포함해서 여러 종류의 호미니드가 살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의 아프리카의 하다와 라에톨리에서 발견된 호미니드 화석의 연구에 따르면, 이른 시기의 호미니드 화석은 그 크기가 다양하며 성별에 의한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인도네시아 호미니드 화석은 모두가 단일종인 호모에렉투스로 분류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지금까지 발견된 대표적인 화석으로는 자바인, 하이델베르그인, 북경원인,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협곡의 Bed Ⅱ의 중간에서 발견된 두개골 OH9·OH33, 올두바이 협곡 Bed Ⅳ, 케냐의 바링고(Baringo)호수, 모로코의 토마스 채석장(Thoman Quarry), 알제리의 테르니피네(Ternifine), 쾨니히스발트의 모죠케르토(Mojokerto) 어린이 등이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화석인 독일 마우어(Mauer)와 헝가리 베르테스죌뢰스의 화석은 플라이스토세 중기 중엽 경으로 보고 있다.

호모 에렉투스의 두뇌용량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두뇌용량보다 큰 평균 775~1,300㏄에 해당한다. 초기 호모 에렉투스의 두뇌용량은 남성은 대개 700~800㏄ 내외, 여성은 500~600㏄ 내외로서, 평균적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비하여 약간 증가하였을 뿐이다. 하지만 플라이스토세 전기와 중기의 호모 에렉투스 화석을 비교할 때, 두뇌용량의 평균치는 843㏄에서 1,067㏄로 증가한다. 이는 현대 인간의 다양한 뇌용량의 하한선에 속한다. 한편 북경원인의 두뇌용량은 915~1,225㏄이고, 베르테스죌뢰스의 두뇌용량은 1,300㏄정도이다.

이 두뇌용량의 증가는 인간에게서만 볼 수 있는 형태학적 능력의 발달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두뇌용량의 증가가 과연 두뇌실질부의 증가, 즉 두뇌능력의 증가를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즉 신체규모가 커지면 두부도 커지게 되는 것이지 이것을 지능의 향상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가 있다. 반면에 후두부의 하단과 전두엽 부위가 현저히 증가하는 것은, 신체상 어떤 변화보다도 두뇌용량의 증가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고, 이 부위의 발달은 감각과 균형기관의 관장 및 관찰·명령·분류작업의 관장능력의 발달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의 문화행위를 위한 복잡하고 복합적인 정신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호모 에렉투스는 해부학상으로는 현대 인간과 꼭 같지는 않지만 인류속 안에서는 현대 인간과 가장 가까운 종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이들은 존재하지 않으나 이들의 후손인 호모 사피엔스는 그들의 유전인자 안에 호모 에렉투스의 유전자를 포함하고 있다. 호모 에렉투스의 해부학상 특징은 호모 사피엔스와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이들의 해부학상 특징 중 두개골 용량은 평균적으로 1,000㎖보다 적고 뇌를 에워싸며 낮은 외형이다. 초기 호모 에렉투스의 뇌는 그 선조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뇌보다는 컸지만, 현생인류에 비하면 훨씬 작았다. 호모 에렉투스의 두개골은 더 두꺼워졌고 이마부분은 작다. 턱은 조금 튀어나오고, 눈 위쪽에 두드러진 두덩이 있다. 앞이마는 낮고 평평하며 뒷머리에는 옹이점이 두텁게 발달해 있다. 위에서 볼 때 호모 에렉투스의 머리뼈는 넓적하며, 머리뼈 최대너비는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경우 머리 위쪽에 최대너비가 있는데 비해, 호모에렉투스는 귓구멍 높이에 최대너비가 위치한다.

정수리뼈 또는 두개골의 벽은 다른 것에 비하여 얇다. 그 표면에 있는 주름무늬는 머리 근육 위쪽의 경계에 뒤를 향하여 아래쪽으로 굽은 모양이다. 두개골은 비교적 폭이 넓으며, 후두골의 뼈나 두개골 뒤의 구조는 날카롭게 구부러져 있다. 목 근육은 결부되어 있다. 이 근육결부 부분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호모 에렉투스가 광범위하다. 호모 에렉투스를 구별하는 다른 특징은 두개골의 아래쪽에서 명백히 관찰된다. 특히 아래턱 관절의 범위 안에서 그러하다. 낮은턱 그 자체는 깊고, 매우 튼튼하다. 그리고 턱언덕에 두드러진 발달이 부족하다.

이빨은 호모 하빌리스의 이빨만큼 크지는 않으나 호모 사피엔스의 것보다는 매우 크다. 투르카나 호수가에서 발견된 소년의 골격은 약 160만년 전의 초기 인류이며 해부학적인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초기의 호모 에렉투스의 개체가 키가 크고 강건하며 억센 근육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호모 에렉투스의 사지뼈는 호모 사피엔스와 비슷하며, 루시같은 A.아파렌시스나 호모 하빌리스처럼 팔이 길지 않다. 전체 몸 크기로 볼 때, 호모 에렉투스는 호모 하빌리스보다 크며 거의 현대인류와 비슷한 크기이다.

골반과 대퇴골의 상단부분은 현대인간의 형태와는 다소 다르지만,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단계부터는 거의 완성된 직립보행의 특징이 나타난다.

성별차(性別差)로 인한 동종이형(同種異型)은 피테칸트로푸스군 단계에도 어느 정도 남아 있지만 이전에 비해 크게 축소된다. 그것은 여성의 크기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화석에서 뇌껍질과 사지의 긴뼈가 전보다 두꺼워지고, 관절부분은 보다 확장·강화되었으며, 근육이 붙어 있던 흔적이 자주 관찰된다. 따라서 보다 많은 힘을 사용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호모 에렉투스의 안면 치아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것보다 다소 크지만, 피테칸트로푸스의 대구치는 오히려 현대인의 다양한 변이의 하한선에 해당될 정도로 줄어들며 턱도 작아진다. 이러한 변화는 바로 음식물 섭취의 과정에서 구강부가 받게 되는 스트레스 양의 감소, 즉 턱 및 치아 운동량의 현격한 감소를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은 식물성보다는 씹기 쉬운 동물성 단백질을 더 섭취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로빈슨은 텔란트로푸스(Telanthropus)라 명명했던 스와트크란스 화석도 악골과 치아로 보아 이 범주에 넣고 있다. 이 화석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과 호모 에렉투스의 과도기적인 형태를 보이는 최초의 증거였다.

이들은 주로 수렵생활을 하였으며 체계적으로 사냥을 하였다. 이러한 체계적인 사냥이 가능했던 것은 뇌용량의 증가 때문일 것이다. 또한 신체적인 변화, 뼈와 근육의 발달에서, 이들이 이전보다 더 몸집이 크고 힘이 센 동물을 사냥하였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화석과 함께 발견되는 도구, 즉 잘 다듬어진 주먹도끼, 찍개, 찌르개 등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석기문화는 주먹도끼 전통의 아슐리안문화, 올도완문화 및 주구점(周口店) 유적을 중심한 자갈돌찍개 전통의 석기문화 등이다.

결국 호모 에렉투스의 단계에서는 도구제작의 본격화, 즉 석기의 다양화, 정제화, 그리고 석기 제작기술의 발달 양상이 보인다. 더불어 자연계에서 보다 능동적 주체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집단적·반복적 사냥이라는 새로운 생계기술로 가능하였다. 본격적인 야생동물의 사냥이라는 새로운 생계수단이 중요하게 되었음은 고고학 유적에서 발견되는 집단적 수렵행위와 관계되는 증거가 많아진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고고학적 유적에서 발견된 석기 연구를 통해, 호모 에렉투스가 직접떼기와 간접떼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이 밝혀졌다.

집단사냥의 확산은 언어의 발달을 가져왔을 가능성이 있다. 효과적인 사냥을 위해서 사냥에 나선 성원들 사이의 협동작업이 필요했으며 이를 위하여 원활한 의사소통이 요구되었다. 그것이 현대적 의미에서 진정한 언어였는지는 논란이 되고 있으나 어떠한 형태이건 최소한 집단적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으로서의 기호언어(sign language)나 극히 간략한 소수의 어휘로 구성된 원시언어를 가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화석인류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주구점(周口店) 유적을 비롯하여 이스라엘, 헝가리, 남부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 밝혀진 ‘불의 사용’이라는 것이다. 불을 직접 피울 줄 아는지 어떤지에 대해서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불의 사용은 음식조리, 도구제작, 활동시간 및 영역의 확대, 방어능력의 향상 등 그들의 생활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을 것이고, 그들의 체질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그들의 체질적인 특징이나 경제활동으로 보아 인류진화단계에서 중요한 한 단계를 이루고 있었으며, 많은 학자들은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호모 속(屬)에 해당하는 인류형태의 조상으로 본다. 호모 에렉투스는 인골화석만으로도 전 세계적인 분포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이들의 생활흔적, 즉 그들이 살면서 남겨놓은 고고학적 유물은 구대륙의 거의 전 지역에 확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구의 증가와 점유지역의 확대에 따라 종내 집단의 수도 많아졌는데, 집단들이 시·공간적으로 서로 떨어져 호모 에렉투스 종내 집단 사이에는 유전자 표이와 선택으로 인하여 형질적 특징에서 어느 정도 차이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유럽발견 호모 에렉투스와 중국발견 호모 에렉투스 사이에는 두개골과 안면부의 형태에서 일정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외관적 형태의 다양화에도 불구하고 각지의 에렉투스 집단의 기술수준과 적응양식은 기본적으로 동질적이었다고 추측된다. 집단사냥과 인구증가는 또한 이웃집단 사이에 상호 경쟁관계를 유발하였을 가능성도 있는데, 이에 따라 각 집단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적 범위(territoriality)에 대한 생각도 어느 정도 형성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참고문헌

  • 체질인류학(박선주, 1994년)
  • 고고학개론(이선복, 이론과 실천, 1988년)
  • Encyclopedia of Human Evolution and Prehistory(Ian Tatterwall·Eric Delson·John Van Couvering,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8년)
  • 오리진(리차드 리키·로저 르윈 共著, 김광억 譯, 1985년)
  • 형질인류학 및 선사고고학(존스톤·셀비 共著, 권이구 譯, 19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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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에렉투스 두개골 | 출처: 시사상식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