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랄로피테쿠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 猿人 , Australopithecus ]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남방의 원숭이’라는 뜻으로서 원인(ape-men), 혹은 인원(men-ape), 또는 근인(near-men) 심지어 ‘원시인’과 같은 여러 가지로 불리는 집단의 총칭으로, 이들 집단은 인류 진화상 최초의 완전한 단계를 이루고 있는 집단으로 보고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앞선 이른 시기의 유인원으로는 아프리카 대륙의 초기 올기고세에 엘 화윰 유적에서 발견된 이집토피테쿠스와 이집토피테쿠스로부터 갈라져 나온 빅토리아피테쿠스가 있다. 마이오세 중기가 되면 드리오피테쿠스, 시바피테쿠스, 라마피테쿠스, 기간토피테쿠스 등이 번성하게 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나 라마피테쿠스로부터 300만년 전 보다 이전에 진화되었다고 보고 있다.

a.프로컨슬 아프리카누스, b.라마피테쿠스의 아래턱 뼈, c.드리오피테쿠스의 이빨 화석, d.시바피테쿠스의 아래턱 뼈

a.프로컨슬 아프리카누스, b.라마피테쿠스의 아래턱 뼈, c.드리오피테쿠스의 이빨 화석, d.시바피테쿠스의 아래턱 뼈

기간토피테쿠스 아래턱뼈

기간토피테쿠스 아래턱뼈

1925년 다트(R.A.Dart)에 의해 남아프리카 케이프주에 있는 타웅 마을에서 발견된 작은 원시인류 표본을 설명할 때 만들어졌다. 그의 타웅 어린아이 두개골 분석에 의하면 대후두공의 복부 부분과 서로 관계를 이루고 있는 작은 송곳니는 인간의 특성을 지녔고, 작은 뇌와 상대적으로 큰 코는 원숭이와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등 몇 개의 구별되는 특징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호모류의 한 구성원으로서 볼 수는 없으나 대형 유인원과 다른 속의 특징이 보인다는 점 때문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원시인류의 조상으로 인정하고 인간과 유인원 사이의 중간쯤 위치에 놓고자 하였다.

1936년 브룸(R.Broom)은 스테르크폰테인(Sterkfontein)지역에서 선신세(鮮新世) 화석을 발견하고, 형태학상으로 타웅의 두개골과 유사하다고 인정하였다. 브롬과 그의 동료들은 인과(人科) 내에서 이러한 화석들을 다시 아과(亞科)로 분류하고 ‘오스트랄로피테시네(Australopithecinae)’라 명명하였다. 그리고 이 오스트랄로피테시네 내에는 그 아분류 단위로서 각기 별개의 속들이 있다. 크롬드라이(Kromdraai)와 스와르트크란스 지역에서도 브룸에 의해 초기 원시인류 표본이 계속 발견되었다.

1959년 리키(L.S.B Leakey)는 커다란 이빨과 육중한 새깃 장식을 한, 잘 알려지지 않은 유인원 진잔트로푸스 보이세이(Zinjanthropus boisei)라는 원시인류 두개골을 올두바이 고지(Olduvai Gorge)의 Bed I에서 발견하였다. 로빈슨(J.T.Robinson)은 크롬드라이와 스테르크폰테인 지역으로부터 남아프리카 형태와 아주 유사점이 있음을 지적하고 진잔트로프스가 파란트로프스의 하위 동의 개념임을 주장하였다. 브룸이 그러했듯이 로빈슨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파란트로프스는 진화선상의 상이한 계통발생을 나타내고, 그들의 유전학적인 분류는 아주 명확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타웅, 스테르크폰테인, 마가판스가트 지역의 원시인류의 표본은 진화의 분류된 가지로 비교되었고, 로빈슨은 이 화석을 파란트로프스라고 주장하였다. 조직진화 단계로 비유하는 초기 원시인류 형태인 이런 견해들도 토비아스(P.V Tobias), 브레이스(C.L. Brace) 그리고 월포프(M. Wolpoff)에 의해 계속적으로 연구되고 있으며, 그 연구들은 비교적 작은 뇌의 크기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현재 대부분의 학자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afarensis),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A.africanus),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보스투스(A.robustus),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A.boisei)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에티오피쿠스(A.ethiopicus) 등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5가지로 인정하고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란 용어는 사실상 분류학의 australopithecine에 올라있는 아과(亞科)의 직접적인 대표이고, 그것은 호모의 아과에서 분리해 주는 함축적인 표시로 사용되었다.

현대여생인골(左)과 루시(右) 비교

현대여생인골(左)과 루시(右) 비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 afarensis) : 1974년 미국, 프랑스 합동 조사단이 하다(Hadar) 유적지 일대를 조사하였는데, 당시 미국측 발굴 단장은 도날드 요한슨으로 첫해 조사에서 매우 중요한 호미니드의 입천장 뼈 조각을 발견하였다. 이를 조사한 결과, 많은 뼈 화석이 발견되었다. 발견된 뼈 화석은 한 개체에 속하는 것으로 한 어른 개체의 거의 46%에 달하는 양이었다.

그는 이 뼈화석을 ‘루시(Lucy)’라 명하였는데, 루시는 약 90㎝의 작은 키와 침팬지보다 더 가벼운 몸무게를 가지고 있는 여자 어른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다음해 아파 지역 333으로 분류된 지역에서 13개체의 호미니드 화석을 발견하였는데, 요한슨과 그의 동료들은 이 13개체의 호미니드가 홍수와 같은 천재지변에 의해 일시적으로 파묻힌 한 사회집단일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하다 유적지에서 발견된 호미니드는 연대측정 방법에 따라 약 300-350만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1978년 라에톨리 유적지에서 일부가 잘라져 나간 발자국이 단단하게 굳어진 화산재 바닥에 남겨진 것을 발견하였는데, 이 발자국을 조사해 본 결과 두 발로 걷는 세 개체의 생물체가 남긴 것으로 판명되었다. 메리 리키는 이 발자국을 남긴 호미니드는 인류의 직접조상으로 보여지는 선상에 있다고 확신하였다. 이 발자국은 360만년 전에 살던 가장 이른 시기 호미니드의 발자국으로 이들이 두발로 이미 걷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요한슨과 그의 발굴팀은 루시와 다른 화석들을 단일종으로 보고 이를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라 명명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메리 리키와 리처드 리키의 견해와는 상반된 것이다. 아파렌시스는 목 위로부터는 아주 원시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목 아래로부터는 현생 인류와 상당히 닮은 그러한 모습을 지녔다. 머리는 작고 송곳니는 크며 나머지 이빨들은 여러 면에서 원시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턱과 머리뼈 그리고 앞으로 튀어나온 얼굴들이 사람보다는 유인원에 가까운 특징을 지녔다.

가장 이른 시기의 인류조상으로 알려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머리뼈는 현생인류인 슬기사람의 머리뼈모양 보다는 침팬지의 것에 가까우며 사지뼈는 인류를 닮았다.

이와 같이 우리 인류의 진화 과정상의 기원은 플라이오-플라이스토세(신생대-홍적세 4기)로부터 설명될 수 있다. 우선 가장 이른 시기의 인류 조상으로 인정된 호미니드는 요한슨에 의해 동아프리카 하다 유적지에서 발견된 A. 아파렌시스로서 지금으로부터 약 300만년 전에 위치한다. 루시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이 호미니드 뼈 화석은 두 발로 서서 걸은 인류의 가장 먼 조상의 선상에 위치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右)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보스누스(左)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右)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보스누스(左)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A. africanus)·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보스투스(A. robustus) : 다트 박사가 남아프리카 트란스발의 서남 지역에 위치한 타웅의 석회암 채석장에서 석회암으로 덮인 어린 개체의 머리뼈를 발견하였다. 그는 이것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로 명명하였다. 다트박사는 이 타웅아이가 인류 계통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발견된 화석은 인골에서 해부학상 가장 중요한 사실로 대후두공이 인류 계통과 매우 흡사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후두공은 두뇌에 연결된 척수가 척추로 이어져 들어가는 구멍을 말하는데, 인간의 경우 유인원처럼 두개골 후반부의 하단에 있지 않고 두개골 중앙부의 하단에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증거로 미루어 타웅아이는 분명히 인류계통이며 직립보행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치아 구조와 두개골 구조도 인간과 유사하다. 유인원의 앞니는 인간보다는 크고 두드러져 있으며, 송곳니는 단검처럼 길고 예리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어금니의 표면은 뾰족한 돌기가 발달되어 있어 면이 고르지 못하다. 반면 인간의 치아는 앞니와 송곳이가 작고 어금니가 비교적 평평하여 음식물을 갈아먹기 편리하다. 따라서 나뭇잎이나 과일을 씹어 먹는데 적합하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다트 박사가 발견한 화석은 인간의 치아 특징과 일치하고 있다.

그 당시 학계에서는 다트박사의 주장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지만, 그는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브롬과 공동으로 초기 인류의 화석을 계속 탐사해 나갔다. 1936년부터 1950년에 걸쳐 남아프리카의 동굴 유적지 4곳 스테르크폰테인, 크롬드라이, 스와르트크란스, 아카팔스카트에서 수많은 인간의 화석을 발굴하였다. 크롬드라이 석회암 광산에서 어금니 1개가 박혀있는 호미니드 위턱 일부를 발견하였다. 이를 더 조사해 본 결과, 이 조각들은 머리뼈 하나로부터 부서져 나온 것이었다. 이 머리뼈는 잘 발달된 머리 가운능선(sagittal crest)을 가지고 있었으며,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의 머리뼈보다 더 큰 얼굴과 큰 어금니를 갖고 있었다. 브롬은 이 머리뼈를 파란트로푸스 로보스투스라 이름지었다.

1948년 다트는 스와르트크란스를 발굴하여 커다란 턱 하나와 많은 화석을 발견하였는데, 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는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속으로 분류하기는 불충분하여 이 화석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보스투스라 명명하였다. 1950년대에 중반까지 5곳의 유적에서 많은 수의 호미니드 화석을 발견하였다. 브롬과 로빈슨은 이들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보스투스로 크게 분류하였다.

다트 일행에 따르면 이들은 같은 유적지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 출토되기도 하였는데, 이들은 해부학적으로 아프리카누스는 상대적으로 작고 여성적인데 로보스투스는 투박하고 크다는 차이점이 있다. 투박한 타입의 로보스투스와 날씬한 타입의 아프리카누스의 가장 큰 차이는 신체의 전반적인 면보다는 치아와 두개골의 구조에서 관찰된다. 로보스투스는 시상봉합등이 있으며 광골이 보다 돌출되었고 앞이마와 앞면은 평평하여 두개골의 전후가 좌우보다 덜 돌출되었다. 한편 아프리카누스는 시상봉합등이 없으며 덜 돌출된 광골을 지녔고 앞이마가 경사졌다. 또한 두개골의 전후가 좌우보다 더 돌출되었다.

동굴 속에서 퇴적된 혼합물 속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양자간의 전후를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일부 연구에 따르면 아프리카누스가 로보스투스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아프리카누스가 로보스투스의 조상일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누스가 현생인류와 연결되는 호모 계통의 조상이라는 설이 지배적인데, 다시 설명하자면 아프리카누스부터 호모, 그리고 흙에 소멸된 로보스투스 두 계열이 파생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A. boisei) : 1954년에 인류화석에 대한 연구의 초점이 동아프리카로 옮겨졌다. 1911년에 빌헬름 카트빙글과 1913년 한스 렉이 이끄는 독일 탐험대는 호미니드 뼈 조각을 발견하였다. 이 바닥의 연대만큼이나 이 뼈도 오래 되었다고 믿는 한스 렉 등에 의해 설득된 리키는 그의 생각을 확인시켜 줄 증거를 찾고자 하였다.

이 지역에서 조사를 시작한지 28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1959년 7월17일 부인인 메리 리키가 골짜기 맨 밑층 Bed 1에서 호미니드 머리뼈를 찾아냈다. 이 머리뼈가 바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이다. 머리뼈는 사랑니가 마모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보아 청년기 때 죽은 것으로 여겨지며, 비록 로보스투스 이빨보다는 강건한 이빨을 가지고 있지만 어금니의 형태와 넓적한 얼굴 모습 및 머리능선은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젊고 강건한 형의 호미니드와 매우 닮았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의 넓적한 얼굴은 씹는 운동과 관련이 있는데, 이는 턱 모서리 힘살의 당김점이 머리 위와 앞쪽으로 이동하면 어금니를 가지고 음식을 씹는데 편리하기 때문이다.

발견된 호미니드 화석은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 강건한 형태의 화석과 관계가 있었지만, 리키는 이 화석을 〈진잔트로푸스 보이세이〉라는 명명하였다. 진잔트로푸스 보이세이는 〈호도까는 사람, Nut-Cracker〉이라고도 불린다. 진잔트로푸스라는 이름은 〈동아프리카사람〉이란 뜻으로, 리키는 이 호미니드가 동아프리카에서 기원한 인류의 직접조상으로 믿었다. 이후에 발견된 증거를 근거로, 고인류학계는 진잔트로푸스를 현생인류의 직접조상이 아닌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분류하고 이를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에티오피쿠스(A. ethiopicus) : 미국 볼티모어에 있는 존 홉킨스 대학교의 고동물학자인 패트 쉬프만은 남편 알렌 워커(Alan Walker)와 리차드 리키와 함께 아프리카 북부 케냐의 서쪽 해안에 있는 로메퀴 일대에서 발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나무도 없는 황량한 퇴적 구릉이 호수 가까이 이어진 곳이다. 1985년 어느 여름날, 발굴단원인 카모야(Kamoya)가 한 구릉에서 검은색을 띤 거의 완전하게 남겨진 호미니드 머리뼈를 찾아냈다. 이 머리뼈는 케냐 국립박물관 화석대장에 ‘KNM-WT 17000’으로 등록되었으며, 일반적으로 〈검은 머리뼈(Black-Skull)〉로 알려져 있다. 이 새로운 호미니드 화석은 해부학상으로 볼 때 이른 시기의 아파렌시스와 보이세이의 진화상의 중간형이라 할 수 있으며, 미국 버클리 대학교의 팀 화이트 등에 의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에티오피쿠스(A.aethiopicus)로 분류되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바렐그하자리(Australopithecus bahrelghazali) : 동아프리카의 큰 골짝과 남아프리카의 동굴 유적을 제외한 아프리카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화석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한때 사하라 사막의 사하비(Sahabi)에서 발견된 화석이 이른 시기의 호미니드 화석으로 알려져 이 지역까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살았을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후에 사하비 출토 화석은 돌고래의 갈비뼈로 밝혀졌다.

최근에 동아프리카 큰 골짝에서 2,500㎞ 떨어진 중앙아프리카의 챠드에서 아래턱의 앞부분을 포이티에르 대학교의 프랑스 고인류학자인 미셸 브르넷(Michel Brunet)이 발견하였다. 화석에는 이빨 7개가 박혀 있었다. 함께 발견된 동물화석은 동아프리카의 300-350만년 전의 유적에서 발견된 화석과의 친연성을 보여 주고 있다.

이 화석은 챠드 중앙을 흐르는 바 엘 가잘(Bahr el Ghazal) 강가에서 발견되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바렐그하자리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보고되었다. 이빨의 형태는 A. 아파렌시스의 이빨과 비슷하나, 아래턱 이음새의 옆모습은 현생인류 쪽에 더 가깝다고 보고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이에 관한 연구가 계속 진행 중이며 더 많은 화석이 발견되어야만 정확한 성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바렐그하자리는 아래턱 일부와 여기에 박힌 7개의 이빨이 발견된 화석의 전부이다. 이빨의 모양은 A. 아파렌시스의 이빨과 차이가 없으나, 아래턱 이음새는 A. 아파렌시스보다는 현생인류 쪽에 더 가깝다. 현재 화석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아직 자세한 해부학상 특징은 아직 보고 되지 않은 상태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나멘시스(A. anamensis) : 지금까지 A.아나멘시스의 화석은 모두 9개의 아래턱과 머리뼈 파편 및 사지편이 케냐의 카나포이와 알리아만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이빨과 턱의 해부학상 구조는 A.아파렌시스와 닮은 점이 있으나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기준 화석인 아래턱은 턱가지는 없으나 이빨이 완전하게 남아있다. 턱은 작고 폭은 좁으며, 마이오세 유인원과 닮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또 이빨틀은 아파렌시스보다 더 평행을 이루고 있다. 옆에서 볼 때 아나멘시스의 턱은 뚜렷하게 뒤쪽으로 뉘어져 있으며 몸체가 두텁고 뒤쪽으로 길게 발달해 있다. 이런 턱과 이빨은 이 화석이 아파렌시스보다 더 오래된 원시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강이뼈의 위·아래 부위의 특징을 보아 아나멘시스는 두 발로 걸었음을 알 수 있다. 즉 허벅지뼈와 맞닿는 정강이뼈의 위쪽 도르래(Proximal Condyle)가 인류처럼 파여 있으며 발목뼈와 맞닿는 정강이뼈의 밑부분에는 두발로 걸을 때 땅을 밟는데서 오는 충격을 흡수해 주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새로운 종인 A.아나멘시스에서 해결되어야할 중요한 문제는, 이 화석이 다른 종에서 나타나지 않는 호모를 닮은 특징과 유인원이 닮은 특징이 함께 있다는 점이다. 이 화석보다 늦은 연대의 A.아파렌시스는 머리뼈와 사지뼈가 유인원과 비슷한 점이 있는데 반해, 아나멘시스의 머리뼈는 마이오세에 살던 유인원과 닮았으나 사지뼈는 발전한 호모와 닮았다. 이런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화석이 발견되어야 하겠다. 그러나 현재로서 아나멘시스는 아파렌시스를 가장 많이 닮았으면서도 더 오래된 특징을 지닌 종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활동 : 이들은 주로 수렵과 채집이 그들의 주요 경제활동이었고, 이를 위해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였다. 초기에는 물론 나무나 뿔, 뼈 등을 사용하였을 것이며 나중에는 찍개긁개 등 단순한 석기를 사용하였다. 또한 도구는 생존을 위한 방어무기로도 사용되었다. 수렵을 위해 도구를 사용했다는 증거는 올두바이 골짜기나 투르카나 지역 호수 동쪽 지역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동부 투르카나 지역의 쿠비포라이다.

과거 강의 삼각주였던 침전된 지층에서 하마의 뼈가 흩어져 있는 범위나 놓여진 위치로 볼 때, 이곳은 하마가 잡아먹힌 곳으로 추정되며, 석기들은 하마를 도살하는데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올두바이의 Bed I과 Bed Ⅱ의 층위에서 발견된 석기의 기술형태학적 특징은 다르다. Bed I의 하층보다는 Bed Ⅱ의 중간층에서 발견된 석기가 보다 세련되었고, 또한 함께 출토된 뼈는 체구가 큰 동물의 뼈였다. 사냥도구로서는 나무나 뿔, 뼈로 만든 것을 가지고 많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석기는 직접떼기나 대석떼기에 의해 만든 원시적인 대형석기를 주로 사용하였다.

참고문헌

  • 체질인류학(박선주, 1994년)
  • Encylopedia of Human Evolution and Prehistory(Ian Tatterwall·Eric Delson·John Van Couvering, 1988년)
  • 오리진(리차드 리키·로저 르윈 共著, 김광억 譯, 1985년)
  • 형질인류학 및 선사고고학(존스톤·셀비 共著, 권이구 譯, 198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