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피엔스

호모 사피엔스

[ 新人 , Homo sapiens ]

호모 사피엔스 두개골

호모 사피엔스 두개골

플라이스토세 중기 말엽에 등장한, 호모 에렉투스와 유사한 특징을 많이 지니고 있지만 몇몇 형질적 특징에서 현대인에 보다 가까이 접근한 고인류 화석이다. 이 새로운 종은 인도네시아, 중국, 아프리카, 유럽 등 구대륙 각지에서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였다. 이들이 등장한 최초의 시기는 40~25만년 전경이다. 즉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는 후기의 호모 에렉투스와 상당한 시간 동안 공존하였다.

이들 양 집단 사이에는 실상 화석의 형태나 문화내용에 있어서 그리 뚜렷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플라이스토세 중기의 호모 속을 위의 두 종으로 구분하는 것은 매우 자의적이며 결과론적인 분류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호모 에렉투스의 진화경향을 계승하며 일정한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종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다고 보고 있다.

플라이스토세 중기 말의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에렉투스와 비교하여 두개골의 용량과 형태에서 현저한 차이가 나타나는데, 안면부의 형태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치아의 구조는 호모 에렉투스와 유사하다. 아울러 사피엔스의 화석은 두개골 상단의 융기부(sagital keel)의 크기와 두개골의 두께가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그러나 미궁골의 융기정도는 호모 에렉투스에 비해 그리 줄어들지 않은 편이다.

초기 호모 사피엔스의 두개골과 치아의 특징은, 두뇌 각부 크기의 차별적 증가, 앞니 부위의 집중적 사용 및 어금니와 작은 어금니 부위의 중요성 감소라는 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사냥도구의 발달과 이 도구를 만들기 위한 기술적 발달 및 그 기술을 활용하여 도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인체 특정부위의 집중적·반복적 사용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미궁골과 비강부의 발달은 석기제작에 요구되는 근육운동을 지지하기 위한 필연적 결과로 해석된다.

초기 호모 사피엔스의 석기문화는 매우 세련되게 발전하며 다양해진다. 하지만 한가지 공통된 특징으로 묶자면 아슐리안 문화의 최후 단계의 양상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도구는 점차 고정화된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여 종류가 다양해지고 형태가 정제화 되어지며 기술형태학적으로 밝힐 수 있는 지표석기들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들은 발달된 사냥도구를 활용하여 그들이 처한 적절한 생태적 적소를 선택하여 발달된 사냥기술을 활용하였다. 예를 들어 영국 클락톤 유적에서 발견된 것처럼 과거의 사냥도구에 비하여 효율성이 높은 새로운 무기인 창을 만들었다.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대표적인 석기제작방법은 아슐리안 석기문화에 기원을 둔 르발루아 기법(Levallois technique)이다. 중요한 것은 이 인류가 석재를 선택하여 복잡한 박리과정을 체계적으로 밟아가며 르발루아 격지를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성은 곧 이들 집단 간의 기술적 전통을 밝혀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를 제시해 주는 것이다. 동일한 전통을 전승한다고 하는 것은 이들의 사고능력의 발달, 즉 인식체계의 조직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이며, 문화진화를 가능하게 한 기초를 제공한다. 이것은 형질적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된다. 또한 주먹도끼로 대표되는 아슐리안 석기문화는 초기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석기문화 중에 하나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적은 아프리카와 유럽에 널리 확산되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프랑스 니스의 테라 아마타(Tera Amata) 유적이다. 이 유적은 11개의 생활층이 정연하게 퇴적되어 있다. 각 문화층에 걸쳐 다수의 타원형 평면의 집자리가 발견되었다. 이 유적에는 집의 골조를 세웠던 기둥구멍과 화덕자리가 있었으며 유물의 분포양상으로 볼 때, 도구를 제작하던 작업공간도 존재하였다. 도구는 주로 아슐리안석기문화의 것이며 창으로 쓰였을 첨두기 등도 발견되었다. 그밖에 페트랄로나(Petralona), 빌징스레벤(Bilzingsleben), 슈타인하임(Steinheim) 및 스완스콤(Swanscomb)의 호모 사피엔스 유적이 있다.

또 중요한 초기 사피엔스의 유적들 가운데 케냐의 올로게세일리에(Ologesailie)와 탄자니아의 이시밀라(Isimila) 유적은 인간행위가 전문화되고 분화되는 양상을 잘 보여준다. 우선 서식처의 환경조건에 따라 뚜렷이 다른 석기군이 발견되는 점과 동일 생활면에서도 구석기시대인의 작업양식에 따라 상이한 종류의 도구가 각각 무리져 발견된다는 점이 그러하다. 이같이 작업목적에 따라 도구를 선택적으로 사용하거나 그에 적당한 석기를 제작 사용하는 능력은 이미 이 시기에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다.

초기의 호모 사피엔스는 이전 화석 단계보다 훨씬 발전한 모습의 생계양식을 유지하였다. 이들은 자신의 서식처에서 얻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자원을 체계적으로 이용하는 적응양식을 지닌 집단이었다. 약 30만년 전 플라이스토세 중기 말에 형성된 유적인 스페인의 토랄바 유적에서는, 인간집단이 불을 사용하여 매머드와 같은 큰 동물을 늪지에 몰아 사냥을 하고, 그곳에서 사체를 해체해서 생활 근거지로 되돌아오는 일련의 조직적인 행위방식을 추정할 수 있다.

초기 호모 사피엔스는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예술행위나 상징행위도 했음을 알 수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테라 아마타에서 발견된 안료덩어리는 아마도 신체를 장식하는데 사용되었을 것이며, 페슈데라쥬(Pech de L’aze) 유적에서 발견된 석판조각을 통해 이들의 예술행위를 엿볼 수 있으며, 프랑스 라제레(Lazeret) 동굴 유적에서 그 얼굴 쪽이 동굴입구를 향하도록 늑대의 머리뼈를 1점씩 주거지의 출입구 부분에 배치한 행위는 상징행위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본격적인 언어의 구사와 예술행위가 시작되었을 높은 가능성, 구조물의 건축 및 고고학 자료에서 유추되는 고도로 조직화된 적응양식의 존재에서, 초기 사피엔스는 집단 내적으로 또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고도로 구조화·조직화된 양식의 사회적 행위를 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들의 물질문화가 지닌 많은 특징은 그들의 사회조직이 아마도 많은 점에서 현대의 원시집단에 가까운 형태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들 사회에는 적어도 연령 혹은 개인적 능력에 따른 사회적 상하질서가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참고문헌

  • 고고학개론(이선복, 198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