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부리형석기

매부리형석기

진주 옥방2.7지구 출토 매부리형석기

진주 옥방2.7지구 출토 매부리형석기

1990년대 말 남한에서 처음으로, 진주 남강댐수몰지구 발굴조사 중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확인되었다. 보고자들은 이것을 함경북도 오동 유적에서 출토된 매부리형 석제품과 유사하다고 하여 ‘매부리형석기’로 명명하였다.

현재까지 매부리형석기가 출토된 유적은 러시아 연해주를 비롯하여 북한에서는 회령 오동, 무산 호곡동, 청진 농포리 등 두만강유역 일대, 남한에서는 진주 대평리 어은 1·2지구, 옥방 1·2·9지구, 상촌리, 울산 다운동, 대구 동천동, 대구 서변동 유적 등이 있다. 주로 집자리〔住居址〕나 구덩〔竪穴〕, 경작유구(耕作遺構)에서 출토되었다.

남한과 북한 출토의 매부리형 석·토제품은 형태가 약간 다르다. 남한 출토의 매부리형석기는 대체로 상변(上邊)은 자연면을 이용하거나 편평하게 다듬어 직선적이고, 하변(下邊)은 한쪽이나 양쪽을 모두 타격하여 떼어낸 반원형이다. 측면(側面)에 타격을 가하여 홈을 만드는 것이 특징인데, 대부분 홈은 하나이고 양 측면에 있는 것도 있다. 석제가 다수를 차지하지만, 토기편을 재가공한 것도 출토된다. 북한의 회령 오동에서 출토된 예를 보면 원돌〔原石〕을 그대로 이용하여 한쪽 측면을 타격하여 매부리 모양으로 다듬은 것으로, 매부리 모양으로 다듬은 부분이 남한의 것보다 두드러진다.

이 석기의 정확한 용도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주로 농경도구로서 우선 대평리 어은 1지구 밭에서 출토된 예에서 보듯이 부리 부분이 강조되지 않고 하반부에 날이 세워 있는 점에 주목하여 지금의 호미와 비슷한 용도로 보는 굴지구설이 있다. 수확구설은 주로 농경이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충적지 출토유적에서 확인되고, 신석기시대 프랑스에서 출토되는 수확용 석기와 형태상 유사하다는 점에 근거한다. 농경의례와 관련되었다는 설도 있다.

농경 이외에 여러 가지 공구설도 있다. 회령 오동에서는 흑요석(黑曜石)과 함께 출토되어 흑요석을 가공하는데 사용되었다는 흑요석 수정공구설(修正工具說), 돌검〔石劍〕·돌화살촉〔石鏃〕과 같은 부분적 날 세우는데 사용되었다는 이기(利器) 수정공구설, 삼의 껍질을 벗기거나 대를 다듬는데 사용했다는 직구설(織具說)등이 있다. 이 밖에 무산 호곡동 출토품은 토제품으로서 오동 출토의 석기와 함께 돼지모양을 본딴 소조품으로 보는 설도 있다.

매부리형석기와 유사한 토제품이 중국에서는 싸안도옹(山東)지방 신석기시대 말기에 해당하는 타이안(泰安) 따먼코우(大汶口) 유적의 재구덩이〔灰坑〕에서 출토된 바 있다. 남한에서는 진주 상촌리 유적 2호 장방형 집자리〔住居址〕의 새김덧띠무늬토기〔刻目突帶文土器〕단계부터 서변동 유적 송국리형집자리 단계에 걸쳐 출토된다. 분포상황으로 보아 동북한 지역과 남한과의 관계를 연결해 줄 수 있는 유물이다. (김재윤)

참고문헌

  • 회령 오동원시 유적발굴보고(도유호, 과학원출판사, 1959년)
  • 무문토기시대의 생활의례(이상길, 영남·큐슈고고학회 제3회 합동고고학대회, 1998년)
  • 대구지역의 초기농경(유병록, 한일합동심포지움 및 현지검토회, 2002년)

참조어

부리형석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