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리 유적

동서리 유적

[ 禮山 東西里 遺蹟 ]

지역 예산
동서리 유적 출토 청동유물

동서리 유적 출토 청동유물

충청남도 예산읍에서 남쪽으로 5㎞ 정도 떨어진 동서리의 예당저수지 바로 서쪽에 연결된 해발 484m의 봉수산 능선상에 위치한 돌덧널무덤(土壙石槨墓) 유적으로, 다른 유적에 비해 표고가 높은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방공사에 필요한 석재를 얻기 위해 출토지점에서 수북히 쌓인 돌무더기를 들어내던 중 주민들이 발견하였다.

정식조사는 당시 국립부여박물관에 의해서 이루어졌는데, 유구의 대부분은 이미 파괴되어 있었으므로, 남아 있는 무덤구덩이(墓壙)의 부분적인 구조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유적 주변은 주위의 경사면과 달리 낮은 분구(墳丘)의 형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크기 20-30㎝의 깬돌(割石)들이 대개 밑지름 2.0m의 범위에 0.6m 가량 높이로 수북히 쌓여 있었다고 한다. 발견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 적석(積石)을 제거하자 그 밑에서 고운 흙이 나오고 이 흙을 30㎝가량 파내려 갔을 때 다시 그 밑에서는 넓적한 판돌(板石)들이 세워진 상태로 박혀 장방향의 돌널(石棺) 모양을 이룬 것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무덤구덩이는 풍화된 화강암반(花崗巖盤)을 깎아 들어갔는데, 바닥에서부터 남아 있는 구덩이 벽의 상단까지는 20㎝ 밖에 되지 않았으나, 원래는 이보다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노출된 무덤구덩이는 장축이 정확히 동-서를 향하고 있었으며, 길이 1.8m, 폭 0.9m의 장방형이었음이 확인되었다.

발견 당시 여기에서 들어냈다는 벽석재(壁石材)는 길이 30-40㎝의 방형에 두께 5-8㎝ 되는 표면이 고른 판돌들이었는데, 이와 같은 판돌이 구덩이 벽을 따라 장방형으로 돌려지고 위에는 나무판이 덮히고 적석된 것으로 보인다. 무덤구덩이의 생토 바닥 위에는 끈적끈적한 상태의 회백색 니토(泥土)가 깔리고 목질흔(木質痕)이 있어, 바닥에 니토를 덮고 그 위에 판재로 된 주검받침시설이 있었던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출토유물 대부분이 주민들에 의해 수거되어 정확한 출토상태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수습조사에서 장신구라고 생각되는 대롱옥(管玉)과 소옥류(小玉類)가 무덤구덩이의 서쪽에서 수습되었으므로, 피장자(被葬者)의 머리방향은 서침(西枕)일 가능성을 시사하여 준다.

돌널무덤에서 출토된 청동유물은 동검(銅劍) 9개체분, 검파형동기(劍把形銅器) 3점, 나팔형동기(喇叭形銅器) 2점, 동경(銅鏡) 5개체분, 원개형동기(圓蓋形銅器) 1점 등이다.

동검 9점은 길이 25.1-36.8㎝로, 전부 등대에 뚜렷한 날이 결입부(抉入部) 이하에는 미치지 않고 있다. 동검 중 1점은 검신(劍身)에 결입부가 뚜렷하지 않고, 비파형동검을 세장화(細長化)한 모양을 나타내고 있다.

검파형동기 3점은 길이 24.5㎝로, 대전 괴정동(槐亭洞) 출토의 것보다는 네 끝이 더욱 날카롭게 펼쳐진 것으로 아산 남성리(南城里)의 예와 똑같은 형태를 보여준다. 대나무를 세로로 쪼갠 형태로서 중간에 마디가 있어 상하 2구로 구분되는데, 각 구마다 주위 윤곽을 따라 네모난 세선문대(細線文帶)를 2중으로 돌려서 구획하였다. 한 가운데는 새끼줄을 꼬아 만든 형태의 둥근 고리를 하나씩 매달아 두었다. 뒷면에는 꼭지가 붙어 있는데, 괴정동의 것은 상하 1개의 꼭지가 달려 있지만, 동서리 것은 남성리 것과 함께 2개, 1개가 붙어 있다. 3점 중 1점의 겉면에 5개의 손가락을 펼친 손바닥 모양이 장식되어 있는데, 남성리 출토품에 사슴모양이 새겨진 것과 비교가 된다.

나팔형동기 2점은 전체길이 26㎝로서, 원뿔대 혹은 깔대기 모양에 가운데가 빈 긴 원통모양의 기둥이 부착되어 전체모양이 촛대형인 이형동기이다. 이러한 이형동기는 괴정동과 남성리는 물론 한반도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中國 沈陽 鄭家窪子 6512호묘에서 비파형동검과 함께 출토한 예가 유일하다. 말머리 위에 놓인 장식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요녕지방의 비파형동검문화와 충청도지방의 세형동검문화와의 관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청동기라 할 수 있다.

동경은 조문경(粗文鏡) 2면과 함께 소문경(素文鏡), 세문경(細文鏡), 동심원문경(同心圓文鏡)이 각 1면씩 출토되었는데, 조문경 1점과 소문경 1점은 거의 완전하지만 나머지 3점은 작은 파편이다. 완전한 조문경 1점은 직경 8.1㎝에 거친 삼각거치문(三角鋸齒文)을 별 모양으로 배치한 성형문경(星形文鏡)으로 부여 연화리(蓮花里), 대전 괴정동 예와 비슷하다. 소문경 1점도 무늬만 없을 뿐, 꼭지와 주연(周緣)의 형태 등이 조문경 범주에 속하며 직경은 9.4㎝이다.

원개형동기는 배가 부른 뚜껑과 같은 것으로 부푼 곡면에는 중심과 주연 중간 부위에, 직경과 동일방향으로 ‘ㄷ’자형의 꼭지가 부착되어 있다. 직경 20.5㎝ 크기로 괴정동의 예와 흡사하다.

이밖에 벽옥제(碧玉製)의 대롱옥 100여 점과 천하석제(天河石製)의 둥근 소옥(小玉) 20여 점, 삼각형의 간돌화살촉(磨製石鏃) 7점, 검은간토기 목긴항아리(黑陶長頸壺)와 점토대토기(粘土帶土器) 각 1점이 출토되었다. 검은간토기는 높이 25.5㎝ 정도의 것으로 경부(頸部)의 높이가 동체의 그것보다 큰 것으로 전체적인 모양이 세형동검(細形銅劍)을 공반한 청원 비하리(飛下里)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동서리 유적의 연대는 Ⅱ식 동검과 초기세문경이 공반되면서 동꺾창이 공반되지 않은 점과 이형동기와 검은간토기 목긴항아리 등이 괴정동, 남성리 것보다 형태가 다소 발전한 것으로 보아 세형동검, 조문경시기인 B.C. 3세기의 후반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特別展 韓國의 靑銅器文化(國立中央博物館·國立光州博物館, 汎友社, 1992년)
  • 韓國靑銅器文化硏究(尹武炳, 藝耕産業社, 1991년)
  • 禮山 東西里 石棺墓出土 靑銅一括遺物(池健吉, 百濟硏究 9, 197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