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유학과 한문학

고려의 유학과 한문학

안동 병산서원

안동 병산서원

고려의 4대 광종유학을 중심으로 한 과거제도 실로 새로운 지식계급이 성립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였고, 6대 성종국자감·비서원·수서원을 설치하여 유교정치의 실천력을 담당할 수 있는 지식계급을 형성하였다. 특히 성종 때 최승로(崔承老)·김심언(金審言)의 활약으로 유교의 정치사상체계를 성립시켰는데, 이것은 역사적 경험을 통하여 전시대의 사회적 모순을 극복한 것이다.

문종 때 최충의 9재학당을 비롯한 12도의 사학(私學)이 출현하여 경서(經書)·사적(史籍)·한문학이 크게 발달하였고, 정배걸(鄭倍傑)·노단(盧旦)·곽여(郭輿) 등의 유학자가 배출되었다. 이후 15대 숙종과 예종·인종 등의 관학진흥책으로 최약(崔瀹)·홍관(洪灌)·박승중(朴承中)·김인존(金仁存)·김부식(金富軾)·정지상(鄭知常)·최윤의(崔允儀) 등이 활약하여 유학이 크게 발전하였다.

성리학(性理學)은 고려 말 문화변동의 원동력이 되었는데 1289년(충렬왕 15) 안향(安珦)이 연경(燕京)에 갔다가 주자전서(朱子全書)를 보고 이것을 유교의 정통이라고 생각하여 책을 베끼고 주자의 초상화를 그려 가지고 왔다.

충선왕(忠宣王)은 연경에 만권당(萬卷堂)을 설치하여 양국의 문인(중국측:趙孟頫·虞集·閻復, 고려측:李齊賢·白頤正)들을 교류하게 함으로써 유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였다. 이때 원나라에서 충선왕을 10년간 받들었던 백이정(白頤正)이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고 온 뒤 이제현(李齊賢)·박충좌(朴忠佐)에게 전하여 고려 말기에는 이색(李穡)·정몽주(鄭夢周)·이숭인(李崇仁)·정도전(鄭道傳)·권근(權近)·길재(吉再) 등 뛰어난 성리학자가 배출되었는데, 특히 정몽주의 노력으로 철학적 이해가 깊어지게 되었다.

성리학은 고려 말 신흥 사대부 계급에 수용되었다. 고려 초기 한문학(漢文學)의 학풍은 중국을 모방하던 단계에서 벗어나 독자적 성격을 지니고 관념적이며 사대적 경향에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9대 덕종(德宗) 말년에 왕가도(王可道)를 중심으로 한 북진파가 몰려나고, 인주(仁州)이씨가 집권하자 보수적 성격을 띤 유교 경전(經典)보다 안일함만을 찬미하는 한문학이 발달하였다. 이때 시(詩)나 문장에 뛰어난 사람은 김인존 ·김부식 ·정지상 ·홍관 등을 꼽을 수 있다.

무신의 난 이후 한문학 경향은 고려 초기 향가문학이 차츰 사라지면서 패관문학(稗官文學)이 대두되어 최씨 무신집권 하에서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패관문학은 주로 전설·신화·일화·풍속을 주제로 서술되었는데, 필자마다 색다른 성격을 띤다.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은 무신의 난 이전 시대에 대한 회고, 이규보(李奎報)의 《동명왕편(東明王篇)》은 종래의 한문학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로운 문장체를 이룩하여 한국 전통과 연결된 새로운 문학체계를 발전시켰다.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은 무신의 난이 일어나기 전 천태종의 정치 참여를 비난하였고, 무신의 난이 일어난 원인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였다. 그리고 성리학자들의 많은 문집이 나왔는데 전기의 시(詩)·문(文)과는 달리 정치·사회 등에 관한 논설이 중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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