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

이규보

[ 李奎報 ]

요약 고려시대의 문신·문인. 명문장가로 그가 지은 시풍(詩風)은 당대를 풍미했다. 몽골군의 침입을 진정표(陳情表)로써 격퇴하기도 하였다. 저서에 《동국이상국집》 《국선생전》 등이 있으며, 작품으로 〈동명왕편(東明王篇)〉등이 있다.
이규보 묘

이규보 묘

출생-사망 1168 ~ 1241
본관 여주
춘경
백운거사·지헌·삼혹호선생, 문순
별칭 초명 인저
활동분야 문학
주요저서 《동국이상국집》 《백운소설》

본관 여주. 자 춘경(春卿). 호 백운거사(白雲居士)·지헌(止軒)·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 초명 인저(仁氐). 시호 문순(文順). 1189년(명종 19) 사마시(司馬試), 이듬해 문과에 급제, 1199년(신종 2) 전주사록(全州司錄)이 되고 1202년(신종 5) 병마녹사 겸 수제(兵馬錄事兼修製)가 되었다.

1207년(희종 3) 최충헌(崔忠獻)에 의해 권보직한림(權補直翰林)으로 발탁, 참군사(參軍事)·사재승(司宰丞)·우정언(右正言)을 거쳐 1219년(고종 6) 좌사간(左司諫)으로서 지방관의 죄를 묵인하여 계양도호부부사(桂陽都護府副使)로 좌천되었다.

1220년(고종 7) 예부낭중(禮部郞中)·한림시강학사(翰林侍講學士)를 거쳐 30년 위위시판사(衛尉寺判事)가 되었으나, 팔관회(八關會) 행사에 잘못을 저질러 한때 위도(蝟島)에 유배되었으며 1232년(고종 19) 비서성판사(祕書省判事)에 승진하고, 이듬해 집현전대학사(集賢殿大學士)·정당문학(政堂文學)·참지정사(參知政事)·태자소부(太子少傅) 등을 거쳐 1237년(고종 24)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감수국사(監修國事)·태자대보(太子大保)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호탕 활달한 시풍(詩風)은 당대를 풍미했으며, 특히 벼슬에 임명될 때마다 그 감상을 읊은 즉흥시는 유명하다. 몽골군의 침입을 진정표(陳情表)로써 격퇴한 명문장가였다. 시·술·거문고를 즐겨 삼혹호선생이라 자칭했으며, 만년에 불교에 귀의했다.

저서에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백운소설(白雲小說)》 《국선생전(麴先生傳)》 등이 있으며, 작품으로 시(詩)에 〈천마산시(天摩山詩)〉 〈모중서회(慕中書懷)〉 〈고시십팔운(古詩十八韻)〉 〈초입한림시(初入翰林詩)〉 〈공작(孔雀)〉 〈재입옥당시(再入玉堂詩)〉 〈초배정언시(初拜正言詩)〉 〈동명왕편(東明王篇)〉, 문(文)에 〈모정기(茅亭記)〉 〈대장경각판군신기고문(大藏經刻板君臣祈告文)〉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