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우

송진우

[ 宋鎭禹 ]

요약 한국의 정치가, 독립운동가, 언론인. 중앙중학교의 교장으로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었다. 동아일보사가 주식회사로 개편되자 사장에 취임, 이후 30여 년 간 사장·고문·주필 등을 역임하면서 《동아일보》를 민족의 대변지로 이끌었다.
고하송진우선생동상

고하송진우선생동상

출생-사망 1887.5.8 ~ 1945.12.30
고하(古下)
활동분야 정치, 언론
출생지 전남 담양(潭陽)
주요수상 건국훈장 독립장(1963)

호 고하(古下). 전라남도 담양(潭陽)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기삼연(奇參衍)·김직부(金直夫)에게서 한학을 배우고, 1907년 창평(昌平)의 영학숙(英學塾)에 들어가 고광준(高光駿)·김성수(金性洙) 등과 영어 등 신학문을 배우다가 김성수와 함께 가족들 몰래 일본으로 갔다. 세이소쿠[正則]영어학교와 긴조[錦城]중학을 거쳐 1910년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입학하였으나, 그해 일제에 의해 국권이 침탈되자 충격을 받고 귀국하였다. 이듬해 다시 도일, 메이지[明治]대학 법과에 입학한 후 유학생친목회 총무, 호남유학생 회장 등으로 항일운동을 벌인 한편, 김병로(金炳魯) 등과 유학생회의 기관지 《학지광(學之光)》을 펴내기도 하였다.

최남선·장덕수·현상윤·조만식·신익희·김준연·조소앙 등과 사귀면서, 1915년 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이듬해 김성수가 중앙중학교를 인수하자 교장에 취임,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는 데 주력하였다. 3·1운동 때는 민족대표 48인의 한 사람으로 피체되어 1년 반의 옥고를 치르고 출감하여 같은 해 동아일보사가 주식회사로 개편되자 사장에 취임, 이후 30여 년 간 사장·고문·주필 등을 역임하면서 《동아일보》를 민족의 대변지로 이끌었다.

1936년 일장기말살사건으로 신문은 무기정간, 자신은 사임하였다. 그 사이 하와이에서의 범태평양회의에 신흥우(申興雨)와 함께 한국대표로 참석하였고, 1940년 《동아일보》가 폐간되자 일제에 대한 협력을 거부, 회피하여 오던 중 1945년 8월 10일 총독부로부터 정권인수의 교섭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였다.

8·15광복 후 여운형(呂運亨) 등이 주동이 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와 맞서 우익세력을 규합, 한국민주당을 결성하고 수석총무가 되었다. 미군정에 적극 협력하면서 뒤이어 환국한 이승만 및 임시정부 지도자들과 함께 정부수립에 힘쓰는 한편 속간된 《동아일보》사장에 취임하였다. 그해 12월 28일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한국의 신탁통치안(信託統治案)이 전해지자, 반탁(反託)을 강력히 주장하는 임시정부 요인들과 견해를 달리하다가, 한현우(韓賢宇)에게 암살당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