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회

연정회

[ 硏政會 ]

요약 1920년대 중반 민족개량주의자가 결성을 꾀한 자치운동단체.
구분 자치운동단체
설립일 1924년
설립목적 자치운동 추진
주요활동/업무 실력양성
소재지 서울

3·1운동 후 이광수는 천도교에서 발행하는 《개벽》에 〈민족개조론〉을 게재하는 등 일제 당국자의 문화정치 이념에 충순하기 시작하여 민족주의 세력의 타협화를 유도하는 문화운동, 자치운동에 앞장섰다. 그리고 총독 사이토 마코토[齊藤實]의 통치정책에 호응하여 집요하게 자치운동을 벌였다. 

연정회는 자치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이광수가 1924년 초 《동아일보》의 송진우(宋鎭禹), 김성수(金性洙), 최린(崔麟) 등과 함께 결성을 시도하였던 단체인데, 이광수의 《동아일보》 사설 〈민족적 경륜〉에 비난이 쏟아지자 일단 이를 유보하였다. 그러다가 1926년에 사이토 총독의 정치 브레인이었던 아베 요시이에[阿部充家]의 간여 아래 송진우, 김성수, 최남선(崔南善) 등 각계의 명사·유지 16, 17명이 모여 다시 연정회의 부활계획을 주도하였으며, 해외 민족주의 세력의 후원을 얻기 위해 외유의 길에 올라 이승만(李承晩), 안창호(安昌浩), 장덕수(張德秀) 등을 만나 교섭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그해 4월 발족한 조선노농총동맹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구체화되지 못한 채 유야무야되었다. 이후 이들은 1925년 후반기와 1926년 9, 10월 또다시 자치운동단체를 결성하려고 시도하였지만, 민족주의자의 강한 반발로 실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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