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

개벽

[ 開闢 ]

요약 3 ·1운동 이후 천도교(天道敎)를 배경으로 발행된 월간 종합지.
국적 한국
분야 종합지
발행년도 1920~1949년
발행주기 월간

사장 최종정(崔宗禎). 편집인 이돈화(李敦化). 발행인 이두성(李斗星). 인쇄인 민영순(閔泳純). 인쇄소는 신문관(新文館)이며, 매호 국판 160면 내외에 국한문혼용체였다.

천도교를 배경으로 한 잡지였으므로, 필연적으로 일제에 대한 항쟁을 그 기본노선으로 삼았고, 그러한 투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평등주의에 입각한 사회개조와 민족문화의 창달을 표방하였다.

이 때문에 창간호에서부터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1920년 6월 25일에 발행된 창간호가 일제 총독의 비위에 거슬린다 하여 압수되었고, 이틀 후인 27일에 발행된 호외(號外)도 역시 일제 당국의 기휘(忌諱)로 압수되어, 부득이 사흘 후인 30일에 다시 임시호를 발행하였다. 이와 같이 《개벽》지는 창간호에서부터 모진 시련을 겪었으나, 독자들의 호응으로 1920년 8월 17일에는 임시호의 재판을 발행하는 성황을 이루었다.

《개벽》지는 발행기간 중 발매금지(압수) 34회, 정간 1회, 벌금 1회의 수난을 당하고, 1926년 8월 1일에 발행된 72호를 끝으로 강제 폐간되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매일신보(每日申報)》 등이 폐간조치에 대한 항의기사를 연일 싣고, 천도교 청년당과 관서기자단(關西記者團)을 비롯한 각종 단체가 일제의 언론탄압에 강경히 항의하였으나 끝내 소생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통권 72호를 온갖 시련과 고난 속에서 간행하는 동안 민중의 자주의식·자유사상·독립정신을 고취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 당시에 팽배하던 민족자결주의(民族自決主義)를 소개하였고, 민족대동단결·국산장려운동 등을 제창하였다. 또한 민족문화창달을 위해 전 지면의 3분의 1 정도를 할애, 한국 문학사상 중요한 작품들이 이 잡지를 통하여 발표되었다. 신경향파(新傾向派) 초기의 김기진(金基鎭)·박영희(朴英熙)의 평론을 비롯하여, 조포석(趙抱石)·현진건(玄鎭健)·김동인(金東仁)·이상화(李相和)·염상섭(廉想涉)·최서해(崔曙海)·김동환(金東煥)·나도향(羅稻香)·박종화(朴鍾和) 등이 이 잡지를 통해 초기의 작품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오늘의 한국문학의 전통을 확립하였다.

《개벽》지가 폐간된 후 1934년 11월 차상찬(車相讚)이 다시 같은 제호로 속간을 꾀하였으나 1935년 2월에 4호로 끝나고, 1946년 1월 1일 편집 겸 발행인 김기전(金起田)의 이름으로 복간(腹刊)이 시도되었으나, 당시의 어려운 시대적 여건 때문에 1949년 3월 25일 통권 9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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