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지

도요지

[ 陶窯址 ]

요약 토기나 도자기를 구워내던 가마의 유적.
계룡산도요지

계룡산도요지

가마터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가마터는 그 목적과 소성효과(燒成效果)에 따라 많은 종류의 요식(窯式)이 연구되어 왔다.

가마의 경사도(傾斜度)에 따라 평요(平窯)와 경사요(傾斜窯)가 있고, 다시 경사요는 아궁이 이외의 전체가 터널 모양으로 된 지하식(地下式)과 반지하식(半地下式), 지상요(地上窯) 등으로 구분된다. 또 가마굿의 숫자로 분류하면 굿이 하나로 된 단실요(單室窯)와 둘 이상이 이어지는 연방요(連房窯)가 있다.

또한 옛날에는 토기를 가마 속에 넣지 않고 그대로 맨땅 위에 쌓고, 그 위에 많은 장작이나 섶을 덮고 불을 질러 구워내는 방법도 사용하였다. 한국 선사시대의 가지무늬토기민무늬토기도 이 방법으로 구워낸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타이완[臺灣]이나 아프리카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이 방법이 쓰여지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이러한 방법의 도요지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 된 도요지로는 BC 30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란의 시알크 제3문화기의 가마와 중국 산둥성[山東省] 성자애(城子崖)의 회도요(灰陶窯) 등이 있다.

중국은 예로부터 요업(窯業)이 발달된 나라로 가장 오래 된 토기인 채도(彩陶)를 비롯하여 흑도(黑陶)·회도(灰陶)·백도(白陶) 등의 선사시대 토기도 모두 가마에 넣어서 구워낸 것으로 보이나, 그 유적은 전술한 성자애와 허난성[河南省]의 만취안현[萬泉縣] 요지 외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 후 중국 역대왕조의 도요지는 수백 개가 발견되었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① 전국시대부터 남북조시대의 것으로는 구웨저우요[古越州窯], 장시성[江西省]의 창남요(昌南窯), 경락요(景洛窯), 산시성[陝西省]의 요주요(耀州窯) 등이 있다. 창남요는 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징더전요[景德鎭窯]가 되었으며, 징더전요는 지금도 중국 요업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② 당(唐)나라 때에는 길주요(吉州窯)·광저우요[廣州窯]·악주요(岳州窯) 등 20여 개의 요지가 있다.

③ 송(宋)나라 때에는 중국 도자기의 황금시대로 청자·흑유(黑釉)·청백자 등의 최고 걸작품이 생산되었다. 요지로는 북송관요(北宋官窯)·남송관요·여요(汝窯)·정요(定窯)·건요(建窯) 등이 있다.

④ 원(元)나라 때에는 중국 도자기의 일대 전환기라 할 수 있다. 이때부터 분청(粉靑)·진사(辰砂) 등 다채로운 무늬의 도자기가 만들어졌고, 룽취안요[龍泉窯]·징더전요·츠저우요[磁州窯] 등이 그 대표적인 요지이다.

⑤ 명(明)나라 이후에는 징더전요가 중심이 되어 몇 백 개의 도요지가 축조되었고, 세계 시장에 수출도 하였으며, 의흥요(宜興窯)·덕화요(德化窯)·석만요(石灣窯) 등 전국에 걸쳐 수많은 도요가 있었다.

⑥ 청(淸)나라 때에도 당산요(唐山窯)·태안요(泰安窯) 등 수십 개의 도요가 새로 생겼다.

중국에 이어 한국에서도 일찍부터 도자기가 발달하여 신석기시대의 가지무늬토기가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에서 발견되었고, 함경도에서는 번개무늬[雷文]토기·붉은간토기가 출토되었다. 또 그보다 뒤의 것으로, 경상남도 일대에서 김해식토기가 발견되고, 평안북도 일대에서는 민무늬토기가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원시적 개방요 대신에 화력을 낼 수 있는 터널식(式) 등요(登窯:傾斜窯)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시대의 도자기로는 달걀 모양의 항아리에 아가리가 넓고 목이 달린 문살무늬[格子文]의 토기가 출토되었고, 백제시대에는 붉은갈색토기와 경질회청색토기(硬質灰靑色土器)가 있으며, 간혹 낙랑토기나 중국 육조시대 토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연질갈태(軟質褐胎) 위에 황록색유(黃綠色釉)를 씌운 것도 있다.

신라토기는 정량토(精良土)를 사용하고 소성도(燒成度)가 매우 높아 토기 분류상으로는 도기와 자기의 중간인 경질토기가 출토되었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한국의 도자기는 전성시대를 이루어, 이른바 고려청자가 각처에서 만들어졌다. 그 도요지로 가장 유명한 것은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大口面)의 요지군(窯址群)으로, 모두 90여 개소의 가마터가 있고, 같은 군 칠량면(七良面)에서도 5기(基)의 도요지가 발견되었다. 또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보안면(保安面)·산내면(山內面) 등에도 60여 개소의 요지군이 모여 있다. 이 밖에 대전, 황해도 송화군, 경기도 고양시, 평안남도 강서군 등지에도 고려청자의 요지가 있었다.

조선시대의 도자기는 귀족적인 고려청자에 비해 보다 더 친근미가 있는 백자로 변화하여 인화분청(印花粉靑)·감화분청(嵌花粉靑)·백토분청(白土粉靑)·철화분청(鐵火粉靑) 등 다양한 무늬의 도자기가 만들어졌으며, 그 도요지로는 경기도 광주(廣州)의 관요(官窯)를 비롯하여 대전의 고요지군(古窯地群), 전라남도의 무안(務安)·장흥(長興) 등의 요지, 경상남도의 진주·언양(彦陽)·양산·김해, 경상북도의 경주·상주·고령·경산 등의 요지가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200여 개소의 요지를 열거하고 있어 요업이 매우 번창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한국의 도자기는 일찍이 고구려·백제시대부터 일본에 전수되어 일본 도자기의 주종을 이루었으며, 특히 임진왜란 때 조선에 왔던 왜군 장수들은 조선자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후퇴할 때 많은 도공(陶工)을 납치하여 갔다. 조선 도공들의 도일(渡日)은 그때까지 도기(陶器)밖에 만들지 못하던 일본 요업에 새로이 자기를 만들게 함으로써 오늘날 일본 요업계의 융성에 기초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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