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

청자

[ 靑瓷 ]

요약 청유(靑釉)를 시유(施釉)한 자기.
청자 인물형 주전자

청자 인물형 주전자

중국에서 처음 만들었으며, 한국에도 전해져 고려시대에 꽃피웠다. 유약 가운데 미량의 철분이 있어, 환원염(還元焰)에 의해 구워지는 과정에서 청록색의 유조(釉調)를 띠게 된다. 대체로 환원이 불충분하거나, 또는 불순물이 함유되어 있으면 유색이 녹황색이나 회녹색, 때로는 산화되어 황갈색을 띤 것도 청자라 부른다. 다만 구리성분의 산화에 의한 녹유(綠釉)는 청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청자는 산지와 시대에 따라 갖가지 구별이 있다.

기원은 은(殷)·주(周)·전국(戰國) 시대 무렵에 중국 각지에서 만들어진 회채도(灰彩陶)에 있는 것으로 추측한다. 이것이 특히 중국 남부지방에서 발달하여 삼국·서진(西晉) 무렵에는 회녹색의 고월주요(古越州窯:古越窯)라 불린 원시적인 청자가 저장성[浙江省]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만들어졌다.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말기에 이러한 청자는 중국 북부에서도 제작되어 화려한 대작도 나타났다. 당대(唐代)에는 각지에 명요가 생겼고, 특히 웨저우요[越州窯]의 청자는 유명하였다. 당말오대(唐末五代)에는 질과 양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그 제품은 비색청자(翡色靑瓷)라 하여 시문(詩文)에도 구가(謳歌)되었다.

송대(宋代)에는 웨저우요의 흐름을 이어받은 룽취안요[龍泉窯]나, 화북(華北)의 야저우요[耀州窯]에 아름다운 청자가 구워지고, 또 그 영향을 받아 각지에 청자요가 생겼다. 북송(北宋) 말기에는 수도인 변경(폣京:開封)에 관요(官窯)가 설치되었다 하나 제품은 불명이다. 오늘날 여관요(汝官窯)라 불리는 것이 그것에 해당한다는 설도 있다.

남송(南宋)에서는 수도인 항저우[杭州] 근교에 관요가 설치되어 절묘한 청자를 구워냈다. 그 무렵 룽취안요에서도 침청자(砧靑瓷)라 불리는 분청색의 아름다운 청자가 양산되어 해외에 다량 수출되었다. 송대에서 원대(元代)에 걸쳐서 침청자의 색조는 녹색조가 강해지고, 천룡사청자(天龍寺靑瓷)로 바뀌었다. 명대(明代) 초기는 천룡사청자의 전성기이며, 명대 중기 이후 작조(作調)는 저하되고, 투명성이 강한 칠관청자(七官靑瓷)로 이행되었다. 이 밖에 청조(淸朝)가 되면서 징더전[景德鎭]의 어기창(御器敞)인 연요(年窯)라 불리는 담청색 청자에서 수작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고려 초기(10∼11세기), 강진요(康津窯)와 부안요(扶安窯)에서 독특한 청자를 만들어내었고, 급속도로 성장하여 12세기 무렵에는 비색청자(翡色靑瓷)라 불리는 중국의 청자를 능가하는 뛰어난 청자를 구워냈다. 또 백토(白土)·자토(裏土)를 밑바탕에 상감하여 청자유를 씌워서 굽는 상감청자(象嵌靑瓷)를 내놓았다. 그리고 유하(釉下)에 철회문양(鐵繪文樣)을 그린 회청자(繪靑瓷)도 있다.

고려는 상감청자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크게 발전하였다. 13세기에는 금채(金彩)를 가한 화금청자(畵金靑瓷), 진사(辰砂)를 시유한 청자진사채(靑瓷辰砂彩) 등 기교적인 청자가 나타난다. 13세기 후반부터 유조(釉調)·작풍(作風)이 점차 저하되어 고려 말기에는 쇠미해졌다. 이 밖에 일본·베트남·태국에서도 13세기 무렵부터 청자를 구웠으며, 특히 태국의 스왕카로크[宋胡錄窯]에는 유색이 아름다운 가작(佳作)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