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악정재

향악정재

다른 표기 언어 鄕樂呈才

요약 당악정재(唐樂呈才)와 상대되는 의미의 궁중정재.

〈고려사〉 악지(樂志) 속악조(俗樂條)에 무고(舞鼓)·동동(動動)·무애(無이미지)의 3가지가 전하고 있으나, 이밖에 삼국시대 이래로 전하는 춤도 향악정재에 포함되고 조선시대에 새로 창작된 궁중정재도 모두 향악정재에 속한다.

삼국시대의 춤에 대한 고대 중국 문헌들에 의하면, 고구려에는 지서무(芝栖舞)·호선무(胡旋舞)·고려무(高嚴舞:高句麗舞)가 당나라 궁정에서 연희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백제에는 6세기에 미마지(味摩之)가 중국 오(吳)나라에서 배워왔다는 기악무(伎樂舞)가 있었다고 하나 그밖에 별다른 기록이 없다.

신라의 무용으로는 15세의 소년 능안(能晏)이 가야의 춤을 추었다고 하며, 가야금과 노래 반주에 의한 춤으로 가무·하신열무(下辛熱舞)·사내무(思內舞)·상신열무(上辛熱舞)·소경무(小京舞) 등이 있고, 가야금 반주에 의한 춤으로는 사내금무(思內琴舞)·한기무(韓伎舞)·미지무(美知舞)·대금무 등이 있다.

이밖에 검무(劒舞)·처용무(處容舞)·무애무(無이미지舞)·상염무(想髥舞) 등과 최치원(崔致遠)의 〈향약잡영 鄕樂雜詠〉 5수에 보이는 서역에서 전래했다는 금환(金丸)·월전(月顚)·대면(大面)·속독(束毒)·산예까지도 향악정재에 포함된다(신라5기).

고려시대의 향악정재로는 무고·동동·무애가 있으며, 조선 초기에 창작된 것으로는 〈악학궤범〉 시용향악정재도의(時用鄕樂呈才圖儀)에 보이는 보태평(保太平)·정대업(定大業)·봉래의(鳳來儀)·향발(響鈸)·학무(鶴舞)·학연화대처용무합설(鶴蓮花臺處容舞合設)·교방가요(敎坊歌謠)·문덕곡(文德曲) 등 8가지가 전한다.

또한 조선 말기에 창작된 향악정재에는 가인전목단(佳人剪牧丹)·경풍도(慶豊圖)·고구려무(高句麗舞)·만수무(萬壽舞)·첩승무(疊勝舞)·관동무(關東舞)·망선문(望仙門)·무산향(舞山香)·박접무(撲蝶舞)·보상무(寶相舞)·사선무(四仙舞)·침향춘(沈香春)·영지무(影池舞)·춘광호(春光好)·춘대옥촉(春臺玉燭)·춘앵전(春鶯囀)·향령무(響鈴舞)·헌천화(獻天花)와 영조 이전부터 전하는 검기무(劒器舞)·첨수무(尖袖舞)·공막무(公莫舞)·광수무(廣袖舞)·선유락(船遊樂)·초무(初舞) 등이 있다.

또한 지방에서 연행되던 사자무(獅子舞)·항장무(項莊舞)가 궁중에서도 연희되었다. 무의(舞儀)에서는 향악정재의 배면복흥(拜俛伏興 : 큰 절로 엎드렸다가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하여 춤추다가 부복했다가 일어나서 물러가는 면복흥퇴의 양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봉래의는 죽간자의 선구호와 후구호가 있는 점에서 다른 향악정재의 양식과 다르며, 보통 당악정재의 양식과도 다르다.

당악정재는 대개 순한문으로 된 구호·치어·창사를 부르는데, 향악정재는 우리말로 된 노래를 부른다. 무고에서는 정읍사(井邑詞)를, 동동에서는 동동사(動動詞), 무애는 무애사(無이미지詞)를 각각 불렀다. 그러나 조선 말기에는 무고에서 정읍사 대신 오언절구(五言節句)를 부르고, 아박에서는 동동사를 쓰지 않고 칠언절구(七言節句)로 대신했으며, 무애무는 순조 때 이후에 재연하면서 국한문 가사를 새로 만들어 가곡 편(編)에 맞추어 노래했다. 또한 향령무에서는 무두사(務頭詞)·중박사(中拍詞)·미후사(尾後詞)의 한문 시를 가곡 계락(界樂)에 맞추어 노래하는가 하면 반주음악으로 향당교주(鄕唐交奏)와 보허자령(步虛子令) 등이 사용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조선 말기로 갈수록 향악정재의 특징인 배면복흥 형식이 없어지고, 한글 창사 대신 새로 지은 한시를 노래부르는 등 향악정재와 당악정재의 구분이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