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연화대처용무합설

학연화대처용무합설

다른 표기 언어 鶴蓮花臺處容舞合設

요약 조선 초기 섣달 그믐날, 즉 제야(除夜)의 나례 때 추던 장엄한 의식 절차로, 학무·연화대무·처용무의 3가지를 종합 연출한 춤(→ 향악정재).

조선 초기에는 대개 고려시대의 의식을 따랐으며 구나(驅儺) 뒤에는 반드시 예술적인 호화로운 무용극 처용무를 추는 것이 약간 달랐다.

〈악학궤범〉에 전하는 '학연화대처용무합설'이 그것인데, 무대인 내정(內廷)에는 미리 지당판(池塘板)을 설치하고 연통(蓮筒)·등·꽃 등 의물(儀物)을 갖추어 놓는다.

무의는 전도(前渡)와 후도(後度)로 나뉘어 전도에는 학무·연화대는 없고 오방처용무만 봉황음(鳳凰吟)의 만기(慢機)·중기(中機)·삭기(數機)의 3기에 맞추어 추고, 학무·연화대는 그 후도에 등장한다. 후도는 먼저 여기와 악공이 영산회상 만기에 맞추어 영산회상불보살(靈山會相佛菩薩)을 제창하면 3번 회무하고, 다음에 음악이 빨라지면 오방처용이 환무(歡舞)하고 좌우로 나누어 물러서면 비로소 학무의 차례이다.

음악이 보허자령(步虛子令)을 연주하고 박을 치면 청학·백학이 정재홀기에 있는 대로 나아가고 물러가며 춤추다가 연꽃을 쪼고 그 속에서 2명의 동녀가 나오면 2마리 학이 놀라 뛰어서 물러가 도로 처음 자리에 서고 이어서 2명의 동녀가 지당에 내려가 연화대를 춤추고 끝나면 다시 처용무를 춘다.→ 연화대, 처용무, 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