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래의

봉래의

다른 표기 언어 鳳來儀

요약 조선 초기부터 전하는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

봉래의
봉래의

1445년(세종 27) 4월 권제·정인지·안지 등이 지어 올린 〈용비어천가〉의 가사에 맞춰 무악(舞樂)으로 구성된 것이다.

따라서 내용은 조선 개국의 사적(史籍)과 태조·태종의 무공(武功)과 문덕(文德)을 노래한 것이다. 전인자(前引子)·진구호(進口號)·여민락(與民樂)·치화평(致和平)·취풍형(醉豊亨)·후인자(後引子)·퇴구호(退口號)로 구성되어 있다. 〈악학궤범〉에 전하는 시용향악정재의 무보(舞譜)에는 죽간자(竹竿子) 2명, 여기(女技) 8명, 봉위의(奉威儀) 18명과 그 안쪽 좌우로 월금(月琴)·당비파(唐琵琶)·향비파(鄕琵琶)·향피리(鄕觱篥)·대금(大笒)·장구[杖鼓] 각 1명씩 벌려 앉아 연주한다.

전인자를 연주하면 죽간자가 나아가 진구호를 부르고 좌우로 벌려 서면 무기(舞妓) 8명이 절화무(折花舞)로 나갔다가 팔수무(八手舞)로 물러나 여민락 영(與民樂令)의 반주로 해동장(海東章)을 노래한다(여민락). 북쪽을 향하여 사수무(四手舞)를 추고, 근심장(根深章)·원원장(源遠章)에서는 등을 보이며 팔수무를 춘다.

석주장(昔周章)에서는 등을 보이며 오양선무(五羊仙舞)를 추고, 금아장(今我章)에서는 거듭 마주보며 팔수무를 춘다. 다음에는 북쪽을 향하여 춤추고, 적인장(狄人章)에 이르러 사수무로 오른쪽으로 회무(回舞)하고, 야인장(野人章)에서 천세장(千世章)·자자장(子子章)·오호장(嗚呼章)까지를 부르고 나면 사방작대(四方作隊:사각형으로 서로 마주보고 춤추는 모양)인데 북쪽을 향하여 춤춘다.

치화평삼기(致和平三機)를 연주하면 해동장을 노래한다.

북쪽대열 2명이 불휘장으로부터 북쪽을 향하여 금척무(金尺舞)를 추고, 주국장(周國章)에 이르러 마주보고 춤춘다. 적인장에서는 등을 보이며 춤추고, 칠저장(漆沮章)에서는 4대열이 오른쪽으로 사수무를 추며 회무하다가 대열을 바꾸어 정한 자리에 서서 염수족도(斂手足蹈)한다. 상덕장(商德章)에서는 북쪽 대열 2명은 북쪽을 향하여 춤추고 블근새장에 이르러 마주보며 춤추며 태자장(太子章)에서 등을 보이며 춤춘다. 봉천장(奉天章)에서 4대열은 모두 회무하다가 대열을 바꾸어 정한 자리에 선다. 다시 북쪽 대열 2명은 일부장(一夫章)에 이어서 우예장(虞芮章)·오년장(五年章)·말삼장을 부르며 앞의 무의(舞儀)와 같이 춤춘다.

북쪽 대열 2명이 성손장(聖孫章)·양자강장(揚子江章)·도망장(逃亡章)·천세장을 부르며 앞의 무의와 같이 춤추다가 오엽(五葉)에 이르러 좌우로 갈라서면 음악이 그친다. 취풍형을 연주하면, 해동장·불휘장·주국장·적인장·칠저장·상덕장·블근새장·태자장·천세장을 부르며 춤추고 회무하다가 오엽에 이르러 처음의 대열을 지으면 음악이 그치고 후인자를 연주한다.

죽간자퇴구호가 있은 다음 끝나면 죽간자의 뒤를 이어 8명이 협수무(挾手舞)를 추며 뒤따라 물러남으로써 춤은 모두 끝난다. 다른 향악정재는 엎드려 머리를 숙이는 면복으로 시작하고 끝나지만 봉래의는 죽간자가 정위치에 서면 춤을 추기 시작하고 죽간자가 처음 위치에 오면 춤이 끝나는 것이 다른 향악정재와 다르다.

아름다운 무작(舞作)보다도 〈용비어천가〉의 악장을 많이 부르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정재무도홀기 呈才舞圖笏記〉에 따르면 봉래의의 반주음악으로 정상지곡(呈祥之曲)의 여민락 영(與民樂令), 오운개서조(五雲開瑞朝)의 보허자 영(步虛子令), 향당교주(鄕唐交奏), 하승평지곡(賀昇平之曲) 향당교주 등이 쓰였으며, 1920년대에는 장춘불로지곡(長春不老之曲)·함령지곡(咸寧之曲)·옥련환(玉連環)·타령(打令) 등이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