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악

기악

다른 표기 언어 伎樂

요약 기악무라고 불리는 탈춤의 한 종류.

불교 경전에 나오는 말로 부처를 공양하기 위한 가무를 뜻한다. 중국 문헌이나 〈고려사〉에 보이는 기악도 이러한 일반명칭으로 여겨지나 〈니혼쇼키 日本書紀〉에는 612년(무왕 13)에 백제인 미마지가 남중국 오(吳)나라에서 배워 일본에 전했다고 한다. 기가쿠[技樂]·부가쿠[舞樂]·노가쿠[能樂]와 같이 일본 고전악무의 하나로 불리는 기악 등은 현재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기록도 찾아볼 수 없고, 1233년 고마[拍近眞]가 쓴 〈교쿤쇼 敎訓抄〉에 간단한 설명이 있을 뿐이다.

도다이 사[東大寺] 등에 가면이 보관되어 있으나 그 놀이는 일본에도 현존하지 않는다.

기악의 내용은 〈교쿤쇼〉 속의 연무(演舞)에 전하나 〈교쿤쇼〉의 기악은 전래 뒤 600여 년이 지난 것이므로 이미 많은 변화가 있었고, 반면 기악면(伎樂面)은 7~8세기 가면이 그대로 230여 가지나 일본에 남아 있어 전래 당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기악은 관악기의 일종인 적, 작은 장구같이 생긴 북, 심벌즈처럼 생긴 동박자(銅拍子) 같은 악기의 반주에 맞추어졌다고 한다. 〈교쿤쇼〉에 따르면 기악은 행도(行道)와 연무의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가면묵희(假面默戱)로서 여러 인물들이 연결없이 등장하는데, 출현하는 인물들이 몇 명씩 어울려 하나의 정경을 구성하며 몇 개의 장면을 연출하는 가면희였을 것이라는 이견도 있다.

또한 불교 포교의 무악으로 일종의 불교 선전극이라 보지만, 처음부터 조곡(組曲 : 모음곡)으로 대륙으로부터 전래되었는지 또는 백제에서 통합되었는지 아니면 일본에서 통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기악무에 대해 이혜구(李惠求)는 미마지가 일본에 전한 기악이 우리나라 가면극 산대도감놀이로 전승되었다고 하며, 기악과 산대도감극·봉산탈춤의 각 과장(科場)과 비교하여 기악과 산대가면극(山臺假面劇)의 동일기원설을 주장하고 있다. 오늘날 기악의 실체를 명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백제의 기악이 사찰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극적 구성을 가진 가면무용극으로서 현존하는 산대극의 모체라고 볼 때 중앙아시아에서 오나라를 거쳐 백제에 들어와 일본에까지 전파되었다는 것은 우리나라와 일본 가면예능 발달에 획기적인 일이다.

이두현(李杜鉉) 역시 백제의 기악이 우리나라 가면극의 모체를 이루고, 지역단위의 향촌형 서낭굿의 전통 속에서 고구려 무악이나 신라오기(新羅五伎), 대륙의 산악백희(散樂百戱)의 영향을 받아들이면서 이러한 선행예능의 전승 속에서 조선 후기의 산대도감계통극이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향악정재). 중국 오나라의 기악과 미마지가 전했다는 기악의 동일성 여부를 새삼 문제삼는 의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