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구

이혜구

다른 표기 언어 李惠求 동의어 만당, 晩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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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09. 1. 10, 서울
사망 2010. 1. 30, 서울
국적 한국

요약 한국의 국악학자. 경성제국대학 시절 아악 공부를 권유받은 후 국악에 대한 학문적 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43년 논문 <양금신보 4조>를 발표함으로써 근대적 의미의 한국음악학의 기초를 쌓았다. 이후 서울대학교에서 교수와 학장을 지낸 뒤 정년 퇴임 후에도 후배양성을 위한 강의를 지속적으로 펼쳤다. 한국음악학의 제1세대로서 국악발전과 한국 전통음악의 세계화에 앞장섰다.

한국의 국악학자. 호는 만당(晩堂). 1927년 4월 경성고등보통학교 부속보통학교를 거쳐 1926년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고, 1928년 경성제국대학 예과 문과를 수료했다. 이듬해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국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경성제국대학 시절 비올라 연주자로 중앙악우회에서 활동을 하던 중 "한국의 아악(雅樂)은 매우 귀중한 것이니 배워보라"는 일본인 교수의 권유에 따라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에 드나들면서부터이다. 그후 1932년 중앙방송국에 프로듀서로 있으면서 아악의 방송을 위해 아악 관계자들과 접촉을 갖게 되었다.

이후 국악에 대한 학문적 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1943년에는 한국음악사의 기념비적인 논문인 <양금신보 4조>를 펴냈고 1945년에는 <아악소고(雅樂小考)>를 <매일신문>에 발표했다. 8·15해방 이후에도 고악보의 발굴과 연구를 계속했는데, 이러한 그의 음악에 대한 연구와 성과는 근대적 의미의 한국음악학의 기초를 이루었다고 평가된다.

1946년 경성음악학교 강사와 공보부 방송과장·방송국장을 지냈다. 1947년에는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음악부 교수와 연희전문대학 등에서 영어강사를 하기도 했다. 1954년에는 한국국악학회를 창설하고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었고, 1957년 <한국음악연구>를 펴냈다. 1959년에는 서울대학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고, 국악과를 신설한 후 교수와 학장으로 재직했다. 서울특별시 문화위원회 음악분과위원을 지냈고, 1961년 3·1문화상 학술상과 1965년 문화훈장 국민장을 받았다.

1974년 정년 퇴임 후에도 서울대 명예교수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양대학교 등에 활발히 강의를 펼쳤다. 2001년에는 방송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음악학의 제1세대로 장사훈과 함께 활동을 벌여왔는데, 권오성·송방송·이재숙·한만영·황준연 등의 국악학자들은 모두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중국과 일본음악을 연구하여 한국의 전통음악과 비교연구하는 등 종족음악학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음악연구>·<세종장헌대왕실록 권22 악보해제>·<한국음악논고>·<국역악학궤범>·<만당문채록>·<한국음악서설>·<한국악기도해>·<한국음악이론>·<만당 음악편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