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염무

상염무

다른 표기 언어 霜髥舞

요약 신라 헌강왕(875~886 재위)이 추었다고 전하는 춤(→ 향악정재).

기록으로 전할 뿐 실제 모습은 알 수 없다. 〈삼국유사〉 권2의 처용랑 망해사조(處容郞望海寺條)에 따르면 헌강왕이 포석정에 행차했을 때 남산신(南山神)이 왕 앞에 나와 춤추었는데 신하들은 이를 보지 못했으나 왕은 알아보고 따라 추어 그 모습이 보이게 했다. 신의 이름은 상심(祥審)이고 왕이 따라 춘 춤은 어무상심(御舞祥審)·어무산신(御舞山神)·상염무로 불렸다 한다.

〈증보문헌비고 增補文獻備考〉의 신라악조(新羅樂條) 보주(補註)에는 처용무를 일명 상염무라 했다. 이 점에서 흰 수염의 신이 춘 춤이라는 뜻의 상염무는 늙은 처용의 옹면(翁面)춤으로 해석되기도 하며, 처용무도 수신무(水神舞)와 산신문(山神舞)를 겸한 복합적인 춤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남산신과 헌강왕이 모두 상염무를 추었고, 또 처용이 급간(級干)이라는 벼슬을 받은 반면에 상염무의 산신은 벼슬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점에서 상염무는 국왕과 동등한 토착 신격이 춘 춤으로 해석되므로 처용무와 동일시되기에는 문제가 있다.

상염무는 왕이 남산신의 탈을 쓰고 벽사진경의 의미로 춘 산신굿의 일종으로 짐작되며, 여기에는 당시의 정세가 반영되었다. 처용무와 동일시되는 측면에서 상염무는 한국의 탈이 귀면에서 옹면으로 이행하는 계기를 뒷받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