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부여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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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는 고조선에 이어 우리 역사상 두 번째로 등장한 나라입니다. 오늘은 부여의 생활 모습을 전해 드리려고 하는데요.

부여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서 김역사 기자가 부여의 한 마을에 찾아갔습니다.

1. 흰색 옷을 좋아한 부여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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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옛 기록에 보면 부여 사람들이 흰 옷을 매우 좋아했다고 적혀 있어요.

예로부터 흰색을 숭상한 우리 민족을 가리켜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고 부르곤 했는데요.

부여 때부터 이미 흰 옷을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2. 강제로 산 사람을 묻는 장례 풍습, 순장

부여의 생활 모습 중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장례 풍습입니다. 장례는 죽은 사람을 땅에 묻거나 불에 태우는 일을 말해요.

부여에는 ‘순장(殉葬)’이라는 풍습이 있었어요. 순장은 지배자가 죽으면 그가 거느리고 있던 노비나 신하를 죽은 사람과 함께 무덤에 묻는 것을 말해요.

아마도 부여 사람들은 죽은 후에도 또 다른 삶이 이어진다고 믿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배자가 죽은 뒤의 세상에서도 편하게 살 수 있도록 거느리던 사람들을 함께 묻은 것이죠.

3. 매우 엄격했던 부여의 법

부여의 법률은 고조선과 마찬가지로 매우 엄격했어요. 전해져 오는 법의 내용 중 몇 가지를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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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이고 그 가족은 노비로 삼는다.
• 도둑질한 자는 12배를 물어주도록 한다.

4. 신분 제도와 사유 재산이 있었던 부여

죄를 지으면 죄를 지은 사람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도 벌을 준다니 무시무시하지요?

또 죄를 지은 가족을 노비로 삼는다는 것을 통해 부여에도 신분 제도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도둑질한 자에게 12배나 배상하도록 하는 것을 1책 12법이라고 하는데요. 이렇게 엄하게 벌을 주는 것으로 보아 개인의 재산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도 알 수 있어요.

5. 매년 12월에 제천 행사인 '영고'를 열다

부여에서는 추수를 마친 12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 행사를 열었어요. 부여의 이러한 제천 행사를 ‘영고’라고 합니다.

이때에는 온 나라의 백성이 동네마다 한데 모여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며칠 동안 노래하고 춤추며 즐겼지요. 또한 죄가 가벼운 죄수를 풀어 주기도 했어요.

그럼 왜 제천 행사를 지냈는지 지나가는 부여 백성 막잡아 씨를 모시고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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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가 잘되려면 적절한 비와 햇빛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하늘을 신으로 섬기며 풍년을 기원하고, 한 해 농사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에요.

6. 부여의 독특한 결혼 풍습, 형사취수제

부여에는 ‘형사취수제’라는 독특한 결혼 풍습이 있었어요.

형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을 대신해 형의 아내와 부부 생활을 계속하는 혼인 풍습이에요.

당시에는 이웃 나라 사이에 전쟁이 자주 일어나면서 전쟁에서 죽는 남자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죽은 남자의 재산과 자식이 집안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막기 위해 나타난 풍습인 것으로 보여요.

7.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던 부여인

부여 사람들은 노래 부르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낙천적인 성격이었다고 해요.

어쩐지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