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수열의 조합, 바둑

무한수열의 조합, 바둑

주제 수학(통계)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1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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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속담 중에 ‘신선 노름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바둑이나 장기에 정신이 팔려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뜻인데, 요즘은 한가하게 여가를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게 자주 쓰고 있다. 이 속담의 유래는 이렇다.

옛날 한 나무꾼이 아침에 도끼를 들고 나무를 하러 산 속 깊이 들어갔다가 우연히 동굴을 발견했다. 나무꾼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니 동굴이 점점 넓어지고 훤해지면서 눈앞에 두 백발노인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나무꾼은 손에 들었던 도끼를 옆에 세워두고 두 백발노인이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옆에 세워 둔 도끼를 집으려니 도끼자루가 바싹 썩어 집을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동굴을 나온 나무꾼이 마을로 내려와 보니 마을의 모습은 아침에 나올 때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너무도 이상하여 나무꾼은 마침 지나가는 한 노인에게 자기 이름을 말하며 그런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그분은 저의 증조부이십니다.”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어쨌든, 이 속담의 유래로부터 바둑의 역사가 꽤 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무한수열의 조합, 바둑 본문 이미지 1

■ 무한수열의 조합, 바둑
바둑은 간단히 말하면 바둑판 위에서 벌이는 생존경쟁 게임이다. 정사각형 모양의 바둑판은 가로와 세로가 각각 19줄로 되어 있으며 이들이 겹치는 점이 361점이다. 흑돌과 백돌로 편을 나누어 361점 위의 적당한 지점에 서로 번갈아 한 번씩 돌을 놓아 진을 치며 싸운 후, 차지한 점(집)이 많고 적음으로 승부를 가린다.

바둑은 그 수가 깊고 오묘하며 어디에 먼저 놓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싸움이 전개된다. 또한 선택할 수 있는 가짓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일설에 의하면 바둑이 생긴 이후에 똑같은 판은 지금까지 없었다고 한다. 실제로 바둑판에 바둑돌을 놓을 수 있는 가짓수는 모두 361!이다.

그렇다면 361!은 어떻게 계산하는 것일까?

어떤 자연수 n에 대하여, 1부터 n까지의 자연수를 차례로 곱한 것을 n의 계승이라고 하며 기호로 n!과 같이 나타내고, ‘n 팩토리얼(factorial)’이라고 읽는다. 즉, n!=n(n-1)(n-2) · · · 3 X 2 X 1이다.

이를테면

5!=5×4×3×2×1=120, 10!=10×9×8×7×6×5×4×3×2×1=3,628,800

이다.

그래서 361!을 손으로 계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데, 실제 값은 2.6×10845보다 크다. 현재 우리가 나타낼 수 있는 가장 큰 수의 단위는 1068인 무량대수이므로 천 무량대수인 1071자리까지 수를 읽을 수 있다. 따라서 바둑에서 나오는 가짓수 361!은 우리의 단위로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수이다.

수학에서 361!과 같이 계승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순열이다.

순열은 서로 다른 n개에서 r(r≤n) 개를 택하여 일렬로 배열하는 것이다. n개에서 r개를 택하여 일렬로 배열하는 순열을 기호로 nPr과 같이 나타낸다. 여기서 P는 ‘Permutation’의 첫 글자이고, 이 단어의 뜻은 위치를 바꾼다는 뜻으로 치환(置換)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nPr은 어떻게 계산할까?

서로 다른 n개에서 r개를 택하여 일렬로 배열할 때, 첫 번째 자리에 올 수 있는 것은 n가지이고, 두 번째 자리에 올 수 있는 것은 첫 번째 자리에 놓인 것을 제외한 (n-1)가지, 세 번째 자리에 올 수 있는 것은 앞의 두 자리에 놓인 것을 제외한 (n-2)가지이다. 이런 방법을 계속해 나가면 r번째 자리에 올 수 있는 것은 (n-r-1)가지이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 r 번째

n가지

(n-1)가지

(n-2)가지

···

{n-(r-1)}가지

따라서 서로 다른 n개에서 r개를 택하는 순열의 수는 nPr=n(n-1)(n-2) · · · (n-r+1)이다. 이를테면 7P3= 7 X 6 X 5 = 210이다.

■ 컴퓨터 바둑의 최강자, 북한
컴퓨터 게임 중에서 가장 제작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바둑이다. 현재까지 많은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이 개발됐지만, 아직까지 사람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바둑이 그만큼 복잡하기 때문이다. 서양의 게임 체스의 경우에는 컴퓨터가 세계 챔피언을 이기기도 하지만 바둑의 경우에는 컴퓨터가 아예 사람과 대적할 수가 없다.

그래서 컴퓨터 바둑은 컴퓨터끼리 경기를 시키는데, 이 경기에서 이긴다는 것은 그 나라의 소프트웨어 기술 수준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컴퓨터 바둑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데, 이 대회에서 북한이 거의 매번 우승을 하며 독보적인 활약을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일본, 우리나라가 북한을 이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 특히 미국 프로그래머들은 밤을 새가며 시스템을 개발하고, 중국과 일본은 연대를 맺으면서까지 시스템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2007년에도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6연승을 거두었다.

■ 바둑과 수학이 만났다.
요즘 동서양을 막론하고 바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게임이론학자로 유명한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버클리 캠퍼스 수학과 벌리캄프 교수는 바둑 실력은 10급도 안 되지만 1994년 바둑의 끝내기를 수학적으로 분석한 <수학적 바둑(Mathematical Go)>을 출간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특히 벌리캄프 교수 주최로 2007년 11월 28일과 29일 양일간 한국기원에서 ‘쿠폰바둑대회’가 열렸는데, 이 대회에서는 우리나라의 프로기사 안조영, 송태곤, 원성진, 한상훈, 장주주, 루이나이웨이(장주주와 루이나이웨이의 경우 2011년 중국으로 귀국) 등 6명이 참여했다.

‘쿠폰바둑’이란 벌리캄프 교수가 끝내기의 정확한 가치를 측정하기 위해 고안한 것으로 간단히 말해 ‘바둑+숫자 쿠폰’으로 이루어진 게임이다. 두는 방식은 일반 바둑과 똑같다. 다만 바둑판 옆에 10부터 9.5, 9, ··· 1.5, 1 등을 0.5단위로 숫자가 적힌 ‘쿠폰’이 각 점수 당 한 장씩 준비돼 있다.

이 쿠폰은 두 대국자가 차례로 바둑을 두다가 종반에 이르러 반상에 남은 끝내기가 10집 이하밖에 없을 때부터 사용한다. 즉, 자기 차례에 남아 있는 가장 큰 끝내기가 10집이 안 된다고 생각되면 착수를 한 번 쉬고 대신 10점짜리 쿠폰을 가져간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이제 남은 쿠폰 중에 가장 큰 점수는 9.5점이므로 자기가 둘 착수의 가치가 더 크다고 생각하면 계속 착수를 하면 되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면 자기도 쿠폰을 가져오면 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계속 끝내기를 하다 보면 결국 쿠폰을 보두 가져가게 되고 바둑도 끝나게 된다.

바둑이 모두 끝난 후에 각자의 집과 보유한 쿠폰의 점수를 합해서 흑백이 서로 몇 집 차이인지를 확인한다.

이처럼 많은 수학자와 과학자의 노력으로 바둑에 대한 수학적 연구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앞으로는 끝내기뿐만 아니라 초반이나 중반까지 수학적으로 계량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언젠가는 프로기사 수준의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 제작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러다가는 컴퓨터가 스스로 수학을 연구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 이광연 - 한서대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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