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의 무한동력, 가능할까?

열차의 무한동력, 가능할까?

주제 전기/전자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13-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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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세계 79개국 정상은 지구 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해 ‘CW-7’ 살포를 결정한다. CW-7은 지구의 대기온도를 인위적으로 낮추기 위해 개발된 인공냉각제. 항공기를 이용해 대기 상층권에 CW-7을 대량으로 뿌린 뒤 강력한 한파가 몰아쳐 빙하기가 닥쳤다. 지구상의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생명체는 오직 지구를 순환하는 ‘설국열차’에만 존재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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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는 인공냉각제 때문에 지구에 신(新)빙하기가 닥쳤다는 독특한 설정을 갖고 있다. 여기에 화려한 출연진, 400억 원이 넘는 제작비 등으로 이슈가 됐는데, 8월 25일 기준 약 88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몰이 중이다.

이 영화의 주 무대는 한파를 피해 달리기 시작해 17년간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는 열차다. 영화에서는 동력을 어떻게 얻는지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일단 보이는 것만으로는 무한동력으로 달리는 셈이다. 쉬지 않고 달리는 열차, 과연 과학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설국열차를 탄 사람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것은 바로 엔진이다. 설국열차의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곳으로, 열차 안 사람들의 운명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엔진은 운동에너지나 열에너지를 발생시켜 열차를 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하고 사람들을 얼어붙은 지구로부터 보호하기도 한다. 설국열차가 17년 동안 달린 바탕에는 엄청난 에너지를 만든 엔진이 있는 것이다.

설국열차의 모델로 우선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자기부상열차’다. 자기부상열차는 자기력을 이용해 차량을 레일 위에 띄워 움직인다. 레일과 접촉이 없어 소음과 진동은 물론 마찰로 손실되는 에너지도 적다.

자기부상열차를 만드는 핵심원리는 ‘렌츠의 법칙’이다. 자석이 도체 주변을 움직일 때 이 주변에는 변화에 반발하는 방향으로 자기장이 발생해 밀어내거나 당기는 힘이 발생한다는 전자기법칙이다.

자기부상열차에 설치된 자석은 레일 밑에 설치된 전자석과 같은 극을 마주하게 돼 뜨게 된다. 이후 레일에 설치된 선형모터(일반적인 모터의 원형 코일을 선형으로 편 형태)에 흐르는 전류의 방향을 지속적으로 바꾸게 되면 레일에서 약 40cm 간격으로 설치된 N극과 S극이 주기적으로 바뀐다. 그러면 렌츠의 법칙에 의해 열차와 레일 사이에는 인력과 척력이 빠르게 번갈아 작용하게 된다. 열차와 레일이 ‘밀당(밀고 당기기)’을 시작한 셈이다. 앞쪽의 레일이 당기고 뒤쪽의 레일은 밀어내며 열차는 뜬 상태로 앞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일반 열차에 비해 자기부상열차의 에너지 효율이 높다는 발표도 있다. 미국자기부상열차연합에 따르면 시속 200km에서 일반 열차가 전력 29와트시(Wh(전력량), 1Wh=1W의 전력을 한 시간 동안 공급한 에너지)를 소비한 반면 자기부상열차는 22Wh를 소비했다. 또 시속 300km에서 일반 열차는 전력 51Wh를, 자기부상열차는 34Wh를 소비했다. 속도가 빠를수록 자기부상열차의 에너지 효율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특히 ‘사람의 팔이 몇 분 만에 얼어 부서질 정도로 추운 빙하기’라면 초전도 자석을 이용한 자기부상열차라는 상상도 해볼 수 있다. 초전도 현상은 온도가 영하 273.15도인 ‘절대 0도’ 부근에서 도체의 저항이 ‘0’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절대 0도에 있는 도체에 전류를 흘리면 초전도 자석을 만들 수 있는데 전류를 많이 흘려줄수록 최대 20테슬라(T, 자기장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의 강한 자석이 된다. 초전도 자석을 이용하면 자기부상열차가 더 강력한 자기장을 기반으로 초고속으로 달릴 수 있다.

초전도 현상을 일으키는 온도를 만들기 위한 냉각기를 구동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든다. 하지만 빙하기 지구라는 극저온 상태의 외부 환경은 설국열차가 써야 하는 이 에너지를 줄이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무선전력전송기술을 도입한 전기버스

무선전력전송기술을 도입한 전기버스 버스가 정차해 있는 동안 정류장 바닥에 설치된 급전선에서 자기장이 발생해 버스 하단의 집전장치로 전력을 보낸다.

또 설국열차가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충전 받고 있을 수도 있다. 열차는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상황. 유선으로 연결해 에너지를 전달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영화 속 엔진의 개발자인 윌포드는 설국열차에 무선으로 에너지를 전달받는 ‘무선전력전송기술’을 도입했을 것이다. 무선전력전송기술은 와이파이나 블루투스를 통해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데이터를 주고받는 것처럼 자동차나 버스, 열차 같은 교통수단에 무선으로 손쉽게 에너지를 전달하는 방법이다.

설국열차에 적용될 수 있는 무선전력전송기술은 ‘자기유도’ 방식이다. 자기유도는 전선 속 코일 주변의 자기장이 변하면 전력이 발생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코어가 설치된 도로 밑 지점에 또 다른 코어를 가진 교통수단이 접근하면 자기유도에 의해 전력이 발생하고, 이는 두 코어가 만드는 ‘폐루프’를 통해 교통수단으로 전달된다. 교통수단 속 코어는 전력을 받아들여 사용할 수 있는 전압으로 안전하게 바꾸어 충전을 마친다.

무선전력전송기술 연구는 국내에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2013년 6월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무선 충전기술을 실제 트램에 적용, 운행에 성공한 데 이어 국토교통부는 8월 6일부터 무선 충전 전기버스 시범 운행을 시작한다고 밝힌 상태다. 이 둘 모두 자기유도 방식으로 운행된다. 무선전력전송기술로 인해 동력 공급이 끊기지 않는다면, 설국열차처럼 1년 365일 내내 멈추지 않고 달리는 기차를 현실에서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 전준범 -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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