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의 생체 정보를 병원에 전송 완료했습니다

귀하의 생체 정보를 병원에 전송 완료했습니다

주제 과학일반/정책
칼럼 분류 퓨처기사
칼럼 작성일 2013-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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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18일, 설 쇠고 일주일이 지났지만 난 아직도 설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 이름은 유향기, 올해 떡국 한 그릇 더 먹어 35살. 화려한 싱글이다. 인간의 수명이 100세로 늘어나면서 여자의 결혼적령기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늘었다. 결혼도 이제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반평생을 함께 살 건데, 결혼 잘못해서 두고두고 후회하며 사느니 확실한 남자가 아니면 굳이 결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뭐 요즘 세태이기도 하고. 아기가 갖고 싶다면 정자은행에서 우량 정자를 구입해 아이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설 전날 찾아온 삼촌과 고모가 ‘왜 결혼 안 하느냐’, ‘여자는 때 놓치면 X값 된다’ 등 저속한 표현까지 써가며 양동작전으로 날 몰아세웠다. 틈만 나면 결혼한 걸 후회하시는 분들이 왜 나에겐 명절날만 되면 이토록 결혼 전도사 역할을 하시는지 이해가 안 간다. 선문답, 침묵, 무시 등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가며 상황을 벗어나려 해봤지만 백약이 무효. 일주일이 지난 오늘까지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늘은 화려한 솔로한텐 가장 비참하다는 주말 아침. 늘 그렇듯 약속이 없는 관계로 늦잠을 실컷 즐길 심산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침대가 아이돌스타도 소화하지 못하는 웨이브를 하며 송중기 목소리로 날 깨우는 것이 아닌가!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공주님! 회사 갈 시간이라고요~!”

귀하의 생체 정보를 병원에 전송 완료했습니다 본문 이미지 1

비몽사몽간에 침대 머리맡에 있는 정지 버튼을 눌렀다. 스마트 침대1)의 알람 기능을 주말 모드로 변환했어야 했는데 깜박했다. 그 바람에 잠이 확 깼다. 하지만 따뜻한 잠자리를 떨쳐버리고 일어나기가 싫었다. 벽에 걸린 TV를 향해 ‘아침 드라마’라고 말하자 대화형 스마트 TV2)에서 어제 보던 드라마가 이어서 나온다. 스토리가 막장 드라마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갑자기 지루해졌다. 손가락으로 TV를 가리키며 까딱거리자 다음 채널로 넘어간다.3) 홈쇼핑에서 국내 최저가라며 다이어트 음료를 열심히 설명하는 MD가 갑자기 뽀글 파마를 한 엄마로 바뀌면서 잔소리를 쏟아낸다!

“아직까지 늘어져 자는겨! 엄마 시장 보고 곧 들어갈 테니 방 청소 좀 해놔잉!”

나는 화들짝 놀라 침대에서 떨어질 뻔 했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났다.

“할 말 있으면 휴대폰으로 하지, TV에 왜 나타나고 그래! 엄마는 방송 스타일이 아니라구 했잖아!”

“난들 어케 알어? 너한테 휴대폰한 것 뿐이여.”

요즘엔 통화가 안 되면 자동으로 TV나 다른 디지털 기기로 접속돼 어떻게든 상대방과 연결시킨다. 유비쿼터스가 만든 새로운 세상이다.

마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나는 뭐 먹을 게 없는지 냉장고로 갔다. 냉장고 모니터에는 김치의 숙성도와 우유와 과일의 신선도가 그래프로 잘 나와 있다.

“흠, 우유 마시기 딱 좋은 상태네.”

냉장고 문을 열어 우유를 꺼내려는 순간, 모니터에 엄마의 얼굴이 또 짠~ 하고 뜬다.

“이것아, 우유 먹으면 살 쪄. 옆에 채소즙 갈아놨으니 그거나 먹어! 그렇게 살 쪄서 어디 시집이라도 가겠냐! 그리고 집 청소는 해놨니? 곧 들어간다잉!”

요즘 나는 엄마의 손바닥 안이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엄마의 휴대전화에 다 나타나기 때문이다. 유비쿼터스 세상이 되면 다들 편리하고 행복할 거라고 했지만 나의 사생활은 이미 끝났다.

나는 어쨌든 엄마의 잔소리를 더 듣기 싫어 애완견 로봇 ‘부담스러우니’를 불렀다.

“부담스러우니~~”

그러자 부담스러우니가 달려와서 내 허벅지에 올라타며 부담스런(?) 애교를 부린다. 실제 애완견 보다는 못하지만 로봇 애완견도 귀엽긴 귀엽다. 나는 부담스러우니에게 인상을 찌푸리며 거실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랬더니 부담스러우니가 내 의도를 알아차리고 열심히 방청소를 한다.4) 이곳저곳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먼지란 먼지는 다 핥아먹는다. 그리고는 나에게 느끼한 미소를 한번 던지고 충전기가 설치된 자기 집으로 쏙 들어간다. 저건 필시 로봇이 아니라 요물이다.

웃! 아침부터 차가운 우유를 마셔서일까? 갑자기 배에서 신호가 왔다. 급히 화장실로 가 변기에 앉았다. 아랫배에 힘을 줬더니 시원함과 동시에 찢어질 듯한 통증이 함께 동반됐다.

이때 화장실 벽에 부착된 스피커에서 침착하고 냉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변에 미량의 혈액이 섞여 나옴. 항문과 괄약근에 이상 조짐 발견. 현재 측정한 생체정보를 병원으로 보내겠습니까?”

나는 조금 놀라기도 하고 걱정이 되어 “오케이”라고 답했다. 삐~ 하는 전송음이 잠시 들리더니

“귀하의 생체정보를 병원에 전송 완료했습니다.5)

화장실을 나와 외출 준비를 하던 중 휴대폰이 울렸다.

“항문병원 닥터 김입니다. 귀하는 현재 초기 치질 단계가 의심됩니다. 가까운 시일 내 병원을 방문하셔서 검사를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한편으로는 창피하고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고 해서 작은 목소리로 그러겠다고 했다.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참고

  • KISTI 미래백서 2013.

  • 정영훈 -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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