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록테테스

필록테테스

[ Philoctetes ]

요약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멜리보이아의 왕이다. 소년 시절 히드라의 독이 퍼져 고통 받는 헤라클레스의 죽음을 도운 뒤 그의 활과 화살을 받았다. 그리스 연합군의 일원으로 트로이 원정에 참가했으나 뱀에 물린 상처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도중에 렘노스 섬에 버려지는 신세가 된다.
필록테테스

필록테테스

외국어 표기 Φιλοκτήτης(그리스어)
구분 왕 > 멜리보이아
상징 버림받은 자
관련 상징 활과 화살, 악취나는 상처
관련 사건, 인물 헤라클레스의 모험, 트로이 전쟁

필록테테스 인물관계도

※ 관계도 내 인명 클릭시 해당 표제어로 연결됩니다.

필록테테스 인물관계도
헤라클레스

필록테테스는 테살리아 멜리보이아의 왕 포이아스와 데모나사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헤라클레스가 고통스런 죽음을 맞을 때 이를 도운 보답으로 그의 활과 화살을 얻었고 트로이 전쟁에도 참가하였다.

신화 이야기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을 얻은 필록테테스

필록테테스는 소년 시절 양떼를 찾아 오이타 산을 지나다 장작더미 위에 누워 신음하고 있는 헤라클레스를 보게 된다. 헤라클레스는 켄타우로스네소스의 계략에 빠져 히드라의 독이 묻은 옷을 무심코 입었다가 온몸이 썩어 들어가는 고통을 당한다(→‘네소스’ 참조).

엄청난 고통을 견디다 못한 헤라클레스는 스스로 장작더미 위에서 불에 타 죽고자 하였으나 부하들은 아무도 감히 그가 누운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지 못하였다. 이에 필록테테스가 장작더미에 불을 붙여주었고 헤라클레스는 감사의 뜻으로 자신의 활과 히드라의 독이 묻은 화살을 주었다.

헤라클레스는 또 필록테테스에게 자신이 죽은 장소를 비밀에 부칠 것을 당부했으나 훗날 필록테테스는 사람들의 추궁을 견디지 못하고 오이타 산으로 가서 발을 굴러 말 대신 행동으로 그 위치를 일러주었다.

다른 설에 따르면 헤라클레스의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고 활과 화살을 받은 것은 그의 아버지 포이아스라고 한다. 포이아스가 나중에 그것들을 아들 필록테테스에게 물려주었다는 것이다.

홀로 버림받은 필록테테스

필록테테스

필록테테스 장 제르맹 드루에, 1786년, 샤르트르 순수미술관

필록테테스는 헬레네의 구혼자 중 한 사람이기도 했는데, 이때 맺은 ‘구혼자의 맹세’로 인해 그리스 연합군의 일원으로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게 된다(→‘헬레네’, ‘틴다레오스’ 참조).

필록테테스는 멜리보이아의 병사들을 일곱 척의 배에 태우고 트로이 원정길에 올랐지만 도중에 들른 테네도스 섬에서 제물을 바치다가 그만 물뱀에게 다리를 물리고 말았다. 필록테테스는 상처에서 심한 악취가 풍겼을 뿐만 아니라 통증이 너무 심하여 끊임없이 비명을 질러댔다.

악취와 소음을 견디지 못한 그리스군은 필록테테스를 근처의 렘노스 섬에 버리고 가자는 오디세우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를 섬에 홀로 남겨두고 트로이로 향했다. 렘노스 섬에 버려진 필록테테스는 가지고 있던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로 새와 짐승을 잡아먹으며 연명하였다.

일설에 따르면 필록테테스는 뱀에 물린 것이 아니라 헤라클레스의 독화살에 발을 다쳤다고 한다. 화살집에 들어 있던 히드라의 독이 묻은 화살이 실수로 발등에 떨어져 상처가 난 것인데, 이는 필록테테스가 맹세를 어기고 자신의 죽은 장소를 밝힌 데 대한 헤라클레스의 복수였다고 한다.

그리스 연합군에 복귀한 필록테테스

하지만 필록테테스는 10년의 세월을 홀로 렘노스 섬에서 지낸 뒤 다시 그리스군에 복귀하게 된다. 10년 동안이나 승패를 가리지 못하고 계속되는 전쟁에서 그리스군이 이기기 위해서는 필록테테스가 가지고 있는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헬레노스의 예언 덕분이었다 (→‘헬레노스’ 참조).

헬레노스는 원래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로 뛰어난 용사이자 예언자였다. 그런데 파리스가 죽은 뒤 헬레네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서 데이포보스에게 밀리고 나서 낙담하여 홀로 산 속에 칩거하고 있다가 오디세우스에게 붙잡혀 그리스군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밀을 발설하게 되었던 것이다(→‘데이포보스’ 참조).

그리스군은 필록테테스를 다시 데려오는 임무도 오디세우스에게 맡겼다. 오디세우스는 필록테테스가 자신을 얼마나 원망할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계략을 써서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을 먼저 손에 넣은 뒤 필록테테스가 어쩔 수 없이 따라오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필록테테스에게 트로이에 가면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아들 마카온(혹은 포달레이리오스)의 치료를 받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마카온은 아폴론의 도움으로 필록테테스를 깊은 잠에 빠뜨린 뒤 상처 부위를 절개하여 썩은 살을 도려낸 다음 아스클레피오스가 케이론에게서 배운 비방에 따라 제조한 약초를 환부에 붙여 상처를 치료하였다. 일각에서는 이를 인류 최초의 마취 수술로 보기도 한다.

상처 입은 필록테테스

상처 입은 필록테테스 니콜라이 아빌고르, 1775년, 코펜하겐 국립미술관

필록테테스의 귀향

상처를 치료받은 필록테테스는 전투에 참가하여 파리스를 활로 쏘아 죽이는 등 뛰어난 공로를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파리스를 죽였다는 이야기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렘노스 섬에 홀로 남겨진 필록테테스를 다시 그리스군 진영으로 데려오게 한 것이 헬레노스의 예언이었는데, 헬레노스의 예언은 파리스가 죽은 뒤에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따르면 필록테테스는 그리스군의 장수들 중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무사히 귀환하여 행복한 여생을 보낸 드문 경우에 속한다. 하지만 또 다른 설에 의하면 그는 귀향길에 폭풍을 만나 이탈리아 남부로 떠밀려가서 크로토나 부근에 페텔리아와 마칼라 같은 도시들을 건설한 뒤 신전을 건립하고 나그네의 수호신인 아폴론에게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을 바쳤다고 한다.

관련 작품

필록테테스의 신화는 그리스 고전시대부터 많은 작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스 3대 비극작가인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가 모두 동명의 비극을 썼지만 현재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소포클레스의 『필록테테스』뿐이다.

그밖에 핀다로스,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 퀸틸리아누스 같은 고대의 작가들도 필록테테스를 작품 소재로 다루었다.

근대의 작품으로는 앙드레 지드의 희극 『필록테트』, 소포클레스의 작품을 개작한 동독작가 하이너 뮐러의 『필록테테스』, 워즈워드의 소네트 『렘노스 섬의 필록테테스』, 조지 엘리엇의 소설 『플로스 강변의 물레방아』등을 꼽을 수 있다.

참고자료

  • 호메로스, 『일리아스』
  •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 작자 미상, 『호메로스 찬가』
  • 소포클레스, 『』
  • 히기누스, 『이야기』
  • 아폴로도로스, 『비블리오테케』
  • 오비디우스, 『변신이야기』
  • M. 그랜트, J. 헤이즐, 『』, 범우사
  • 피에르 그리말, 『』, 열린책들
  • W. H. Roscher, 『Ausführliches Lexikon der griechischen und römischen Mytholog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