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년(丁亥年), 1947년
1월 4일
• 전재민수용소로 개방할 요정 13개소 중 8개소에 대한 명도(明渡) 결정.
1월 5일
• 과학자동맹 서울시지부 결성.
• 국립서울대학교 문리대학 예과 학생대회에서 3개 대학 휴학령 철폐를 주장함.
1월 7일
• 서울시내 적산요정 중 일부를 전재민수용소로 개방. 전재민 778명 수용.
• 속간.
1월 8일
• 1월 9일까지 중앙극장에서 열린 전국문화단체총연맹 주최 예술제에서 투탄사건이 일어남. 약간의 부상자 발생.
1월 15일
• 철도운임 대폭 인상.
• 장충단수용소전재민, 주택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시청에 쇄도함.
1월 18일
• 반탁학생들이 인민당 · 인민보 · 서울인민위원회 등을 습격함.
1월 28일
• <대한독립신문> 속간.
이달
• 경성체신국을 서울체신국으로 개칭.
2월 1일
• 서울시내 전차노선을 구간 운행으로 변경.
2월 2일
• 국립서울대학교 이공학부 교수단, 국립서울대학안 철회를 요구함.
2월 3일
• 국립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국립서울대학안 반대 맹휴에 돌입함.
• 서울학생통일촉성회, 국립서울대학안 부당성 지적 담화를 발표함.
2월 4일
• 국립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립서울대학안 철회와 사범대학 독립을 요구하며 맹휴함.
2월 5일
• 국립서울대학교에서 동맹휴학을 하고, 동 대학교 약대 · 예대 · 치대에서 국립서울대학안 반대 결의문을 발표함.
• 휘문중학교, 경찰 간섭 반대와 국립서울대학안 반대 등을 요구하며 맹휴함.
• 서울시, 위생박물관 건립을 계획함.
2월 7일
• 영등포 조선피혁회사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계 종업원들과 경찰이 충돌함.
2월 9일
• 국립서울대학교건설학생회, 국립서울대학안 관련 결의문과 성명서를 발표함.
• 건국학생연맹맹휴반대투쟁위원회, 맹휴 중지를 요구함.
2월 11일
• <세계일보> 속간.
2월 12일
• 종로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결성대회 개최.
2월 13일
• 국립서울대학교건설학생회 주최로 서울시내 중앙예배당에서 맹휴진상폭로대회를 개최함.
2월 14일
• 국립서울대학안 반대로 휴교한 중학교에 대한 휴교를 해제함.
2월 15일
• 9개 대학 학장회의에서 러취장관이 건의한 국립서울대학안 해결책을 논의함.
2월 17일
• 국립서울대학교 교수들, 입법의원에 국립서울대학안에 대한 건의안을 제출함.
2월 28일
• 2월말 현재 서울 시내 주거 전재민은 2만 744세대, 10만 5,800명.
3월 4일
• 서울대학교건설학생회, 총 등교 권유 성명서를 발표함.
3월 5일
• 독립운동사 자료수집위원회 발족. 김의연(金毅演) · 조소앙(趙素昻) 등을 위원으로 하고, 본부를 낙원동 209번지에 둠.
• 국립서울대학교 문리과 · 법과 · 의과대학 등 각 학생회에서 맹휴를 중지하고 등교하기로 결의함.
3월 14일
• 국회 입법의원, <국립서울대학안> 수정안을 가결함.
3월 16일
• 조선적십자사 창립총회 개최. 회장 김규식(金奎植).
3월 25일
• 서울 시내 대한관 · 동락관 · 서울관 등 적산요정과 여관 2개, 사찰 1개소가 시에 접수됨. 전재민 114세대 772명 수용.
3월 31일
• 3월말 현재의 서울 시내 의료기관 분포 상황은 공의(公醫) 16, 취직의 476, 개업의 616, 합계 1,108명임.
4월 1일
• 서울중앙전화국, 전화의 도수요금제를 폐지하고 균일요금제를 실시함.
• 미군정청, 사직공원에서 안재홍(安在鴻) 등과 군정 고관들 참석 아래 제1회 식목일 기념식을 거행함.
4월 2일
• 조선축구협회 서울지부 주최로 서울운동장에서 상하이원정축구대표단과 학생일반 혼성간의 환송 경기를 개최함.
4월 6일
• 중앙여자중학교에서 남방잔류동포구출촉진회(南方殘留同胞救出促進會) 결성대회 개최.
4월 10일
• 서울시, 새로운 식량배급 통장을 새 배급표로 갱신함.
4월 12일
• 서울시, 의무교육 실시를 위해 국민학교의 월사금(月謝金)을 전폐하기로 결정함.
4월 19일
• 서울시, 성인문맹퇴치 사업을 전개함.
4월 20일
• 서윤복(徐潤福), 미국 보스톤의 세계마라톤대회에서 2시간 25분 39초로 우승함.
4월 26일
• 서울운동장에서 서윤복(徐潤福)의 보스톤 마라톤대회 우승 축하행사 거행.
• 서울 시내 거주 전재민은 2만 824세대, 10만 5,626명. 본적은 북한 58%, 다음이 서울 · 경기 · 경북 등의 순서임.
4월 27일
• 서울 시내 거주 전재민관리처에서 전재민 중 612세대에 적산가옥을 명도함.
4월 30일
• 4월 현재 서울시 인구는 136만 1,444명(외국인 5,316명).
이달
• 중앙여자전문학교를 중앙여자대학으로 개편.
• 서울의 천주공교신학교(天主公敎神學校)를 성신대학으로 승격.
5월 1일
• 월남자 증가로 식량 배급을 변경하여 쌀 1홉 4작, 잡곡 1홉 1작씩을 배급함.
5월 2일
• 배화여자중학교, 메이데이 남산공원행사 참석 학생 150명에 대하여 학부형 동반 등교를 명하고, 이를 실행하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수업을 거절하고 교실에서 축출함.
5월 6일
• 배화여자중학교, 메이데이 남산공원행사 참석 150명 중 주모자 7명을 퇴학처분한다고 발표함.
5월 7일
• 서울시내 중학교에서 메이데이 식장에 참가한 학생들에게 정 · 퇴학을 처분함.
• 서울 시내 통행금지시간을 오후 11시~오후 5시까지로 2시간 단축하고 통행금지 사이렌을 중지함.
5월 8일
• 덕성여자중학교, 메이데이 행사 참가 학생 24명에 대하여 무기정학을 처분함.
5월 10일
• 서울시 학무국 마틴고문, 메이데이 행사 관련 배화여자중학교 퇴학 학생 등에게 복교를 지시함.
5월 13일
• 서울시, 보스턴 마라톤 제패기념체육관을 건립키로 결정함.
5월 15일
• 현재 서울시수용소에 월남이재민이 매일 150명 이상 입소함.
5월 20일
• 서울시, 6월말까지 각 동회(洞會) 혹은 1통(統)에 1개소 이상씩의 한글 강습회를 운영함.
5월 21일
• 서울시 참사회(參事會), 9월 1일부터 시내 국민학교 수업료를 폐지하기로 결정함.
5월 23일
• 5월 27일까지 창경원에서 전국 농악제 거행.
5월 25일
• 서울시 주최 우유아(牛乳兒) 건강심사 표창식을 거행함.
5월 26일
• 서울시, 한강 · 청량리~영천간 간선도로 수리를 실시함.
5월 28일
• 김형민(金炯敏) 시장, 전재민 수용을 위해 사찰과 빈집을 개방하겠다고 언명함.
• 서울시, 아현동 300여 토막민에 철거령을 내림.
• 전재동포원호회 서울지사 결성.
5월 29일
• 배화여자중학생들, 6월 2일까지 메이데이 기념행사 참석과 관련한 퇴학생들의 복교를 요구하며 농성함. 일부는 단식 투쟁.
5월 30일
• 서울보건부인회 결성.
5월 31일
• 서울시교육위원회 구성.
6월 1일
• 서울시에 현재 허가 등록된 출판물은 일간 38종, 주간 62종, 반(半) 월간 8종, 월간 119종.
• 독립신보사(獨立新報社) 주필 고경흠(高景欽), 신당동에서 피습당함.
• 전차 요금을 구간당 1원에서 2원으로 인상.
6월 3일
• 서울중학교에서 서울시 성인교육대회 개최.
6월 4일
• 합동통신사(合同通信社), 국내 최초로 무선발신을 개통함.
6월 6일
• 국립박물관, 다시 개관함.
6월 7일
• 서울시, 남하 전재민으로 인한 인구 포화 상태와 관련하여 임시수용소 설치를 계획함.
6월 10일
• 체신부, 국제우편물 사무 취급을 개시함.
6월 13일
• 국립서울대학안 맹휴 문제가 일단락됨. 국립대학이사회에서 <국립서울대학안> 관련 제적학생에 대한 무조건 복교를 결정함.
• 미군정청, 서울시에 빈민구호용 물자 아홉 화차분(貨車分)을 배급함.
6월 18일
• 서울특별시교육회 창립.
6월 19일
• 남한 내 아편중독 환자 1만 4천 명 중 1만여 명이 서울 시내에 거주함.
6월 23일
• 중앙청광장에서 미국의 보스톤 마라톤대회에 참가했던 서윤복(대회 우승)과 손기정(孫基禎) · 남승룡(南昇龍) 세 선수 개선환영회를 개최함.
6월 25일
• 서울 시내 71개 국민학교에서 1만 3,665명 졸업.
6월 29일
• 서울운동장에서 보스톤 마라톤 제패 경축 경기대회 개최.
6월 30일
• 국립대학교 의과대학에 편입된 경성의학전문학교 계열 학생들이 국립서울대학안을 반대하고 총퇴학을 결의함.
• 서울 시내 57개소 신사(神社) 입구에 세워진 문[도리이, 鳥居] 파괴공사 시작.
이달
• 서울 시내 문맹자가 약 40만 명으로 추산됨.
• 1946년 2월 경희궁터에 신설된 중학교 이름을 서울중학교로 확정.
7월 1일
• <서울신문>을 <조선중앙일보>로 개칭 속간.
• 중앙전재민대책위원회, 남하 동포의 서울 거주를 금지키로 결정함.
7월 2일
• <국립서울대학안> 실시에 따른 의대 2부제 차별로 경성의학전문학교 계열 학생들이 총퇴학을 결정함.
7월 3일
• 남산에 설치되었던 일제 신사(神社) 입구 문[도리이, 鳥居] 철거.
7월 4일
• 서울 시내에서 미국 제171주년 독립기념일을 맞아 각종 행사를 개최함. 시청 앞 광장에서의 관병식, 남산에서는 미군이 48발의 축포 발사, 창덕궁 후원에서는 미군장병을 초대한 조선상공회의소의 원유회 개최, 밤에는 남산 위에서 미군부대의 불꽃놀이 개최 등.
7월 8일
• 서울 시내 부랑아가 3,700여 명으로 추산됨.
7월 9일
• 아침에 동대문 일부가 붕괴됨.
7월 10일
• 신당동 적산가옥 600여 호에 대하여 명도령이 내려짐.
7월 16일
• 신당동주택대책위원회, 적산가옥을 미군 숙소로 사용하기 위한 주택명도령에 대하여 하지 (John R. Hodge)중장에게 탄원서를 제출함.
• 김형민(金炯敏) 시장, 중등학교 기부금 강요 적발시 엄중 처단한다고 발표함.
• 현재 교실부족이 심한 동대문 · 성동 · 영등포에서 3부제 수업 실시.
7월 23일
• 서울 시내 쓰레기 수거 부진으로 사설 청소차가 출현함.
• 24일까지 전국적으로 장맛비가 내림. 수도관구 가옥 561호 피해.
7월 24일
• 서울 시내 각 국제사업기관, 시내 부랑아 300여 명을 감화원(感化院) · 소년원 · 수용소에 수용함.
7월 26일
• 6월 17일부터 실시한 서울 시내 음식점 정비로 면허업자의 70%를 정비함.
이달
• 정신여자학교, 정신여학교로 재인가어 개교.
8월 1일
• 중지되었던 광화문우체국 전신전화 사무 개시.
• 이날까지 서울 시내 돈사(豚舍)를 시외로 추방함.
8월 3일
• 서울운동장에서 여운형(呂運亨) 장례식을 해방 직후 최초의 인민장(사회장)으로 거행.
8월 6일
• 국립서울대학교이사회, 국립서울대학교 초대 총장에 이춘호(李春昊)로 결정함.
8월 8일
• 한국에서 미국으로의 첫 항공우편 발송.
8월 9일
• 서울시, 가솔린 배급을 재개함.
8월 11일
• 서울대건설학생회, 학원 내 악질분자 제거 요청 성명서를 발표함.
8월 13일
• 휴간.
8월 14일
• 국립서울대학안 반대 학생 복적(復籍) 허가.
• 해안경비대학을 해사대학으로 개칭.
8월 17일
• 미국에서 온 구호물자 122화차(貨車) 중 24화차가 서울에 배정됨.
8월 18일
• 김포에 미국으로부터 온 최초의 항공우편물 23통 도착.
8월 21일
• 제1회 전국중학지구별 초청 야구대회 개최. 이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로 발전.
8월 22일
• 수도경찰청, 서울 시내 부랑아 일소에 강권 발동 개시함. 매일 심야~새벽에 가두에서 방황하는 걸인을 강제로 모아 25일까지 1,903명을 강원도 · 충청도 등에 분산 이주시킴.
8월 25일
• 재경지방신문기자협회 결성.
8월 28일
• , 8월 13일부터 12일간 휴간한 것으로 인하여 무기정간 처분됨.
8월 29일
• 서울시, 제2차 전재민 지방 이주를 실시하여 대전과 충주에 500명씩 이주시킴.
이달
• 서울시에 신탄 공급을 담당하는 서울연료주식회사 발족.
9월 1일
• 서울시, 곡물용 말과 되를 리터(ℓ)제로 바꿈.
9월 14일
• 서울역~서대문간 전차운행 복구.
9월 17일
• 9월초부터 서울 시내 무허가 토막집 1천여 호를 철거하여, 현재 3천호 남아 있음.
• 시천교당에서 한국학생단(韓國學生團)과 건국학생연맹(建國學生聯盟) 통합체인 대한학생총연맹(大韓學生總聯盟) 결성식 거행.
9월 18일
• 교동공립보통학교를 교동국민학교로 개칭.
9월 20일
• 용산 · 서울 · 경복중학교에 야간부 개설.
9월 22일
• 서울 시내 전차 100대 운행.
9월 29일
• 원남동~세종로간 전차선 신설을 계획함.
이달
•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진명여자중학교로 변경.
• 동국대학교, 명륜동에서 중구 필동 3가 26번지로 본부를 이전함.
10월 1일
• 서울중앙방송국, 호출 부호를 <여기는 서울방송국입니다>에서
10월 9일
• 조선어학회 주최로 경운동 천도교강당에서 한글 반포 502주년기념 겸《조선말 큰사전》발간식을 개최함.
• 번 · 방(方) 신부가 초대 교황사절로 임명되어 서울에 옴.
10월 10일
• 경기도 신탄 도외 반출에 대한 허가제가 철폐되어, 서울시민이 경기도 내의 신탄을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게 됨.
10월 13일
• 10월 19일까지 서울운동장에서 제27회 전국체육대회 개최.
10월 16일
• 문교부, 정식 인가된 학교를 발표함. 서울지역 인가 정규 대학 : 국립서울 · 연희 · 고려 · 이화여자 · 동국 · 성균관 · 성신(聖神) · 중앙여자대학교, 세브란스의과대학원.
10월 18일
• 행정명령 7호로 <해방통신폐쇄> 공포.
10월 19일
• 실업 · 빈곤 · 질병환자에게 무료 구료제도(救療制度) 실시.
10월 21일
• 서울시, 광복 후 2천 개의 가로등을 점등함. 주요 거리에 영란등(鈴蘭燈)을 설치하기로 함.
10월 24일
• 영등포역 내에서 두 열차가 충돌 · 전복됨. 사상자 26명.
11월 1일
• 경성역을 서울역으로 명칭 변경.
• 석탄 부족으로 호남선과 경경선(京慶線) 일부 열차 운행이 중지됨.
• 재단법인 단국대학교 설립 인가.
11월 3일
• 단국대학교, 종로구 낙원동 282번지에서 2학부 5학과로 개교함.
11월 9일
• 서울시, 성동구와 영등포구 세궁민(細窮民) 3만 세대에 장작 반 평씩을 지급함. 지급 가격 : 한 평당 2,500원.
• 서울시, 1세대당 분탄 60㎏씩을 배급함.
11월 13일
• 동대문경찰서, 관하 각 서점에서 좌익 관계 서적을 압수함.
• 서울시, 실업자 상태를 발표함. 8월 31일 현재 서울시 인구 160만 명 가운데 직업인은 3%에 불과.
11월 15일
• 가솔린 배급 부족으로 경성전기주식회사 버스 운행이 정지됨. 장작 · 채소운반 차량은 절반 정도가 운휴함.
11월 16일
• 서울시 주최로 독립문 앞에서 독립문 건립 52주년 기념대회를 개최함.
11월 17일
• 순국선열기념절준비위원회, 서울운동장에서 순국선열 추모기념식을 거행함.
11월 19일
• 서울시, 인구 160만 명, 28만 1천 세대를 돌파함.
11월 20일
• 마장동에 전재민주택 20개 동이 완성되어 청량리 전재민 800세대가 이주함.
11월 22일
• 시민극장을 시민관으로 개칭.
11월 25일
• 서울시내 국민학교 교장회의에서 연료난으로 인하여 겨울방학을 종래 12월 21일부터 1월 20일까지인 것을 2월 14일까지로 2주일 연장키로 결정함.
11월 28일
• 국학전문학교를 대학으로 승격.
12월 13일
• 종로구청이 화재로 전소되어, 수송국민학교에 임시 사무소를 설치함.
12월 15일
• 문교부, 남한 정규 고등교육기관 현황을 발표함. 국립서울 · 연희 · 고려 · 이화여자 · 성균관 · 동국 · 세브란스 의과 · 중앙여자 · 경성성신 · 국학 · 단국대학.
12월 19일
• 서울지구 전력난으로 전력공급시간을 오전 · 오후 8시간씩 제한하여 송전함.
• 서울시, 올림픽후원회를 결성함.
12월 22일
• 석탄 부족으로 24개 왕복열차가 운휴됨.
12월 24일
• 오후 4시경 종로 탑골공원에서 26세 청년이 조국의 비운을 개탄하며 할복자살 미수한 사건이 발생함.
12월 27일
• 국민대학관(國民大學館) 교사로 사용하고 있는 남산동 동본원사(東本願寺) 명도(明渡)를 서울시로 이전함.
12월 30일
• 서울시, 남산동 동본원사(東本願寺)를 교사로 쓰고 있는 국민대학관(國民大學館)에 축출을 명령함.
• 장서각 소장《조선왕조실록》원본 850여 권 중 700여 권 등이 도난된 사실이 발견됨.
12월 31일
• 일제강점기 때의 창씨 개명령을 완전 말소함.
• 서울시공관(市公館) 개관. 입관료 105원.
• 창덕궁경찰서, 장서각 소장《조선왕조실록》 원본 도난 범인 3명 중 2명을 체포함.
이해
• 신흥전문관(新興專門館) 설립.
• 홍문대학관, 흥국사(興國寺)에서 중구 저동 2가의 덕우사로 이전 및 홍익대학으로 개편함.
• 건국기술학교(建國技術學校)를 한양야간공업학교로 승격.
• 난지도를 서울기독교청년회 캠프장으로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