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년(乙酉年), 1945년

을유년(乙酉年), 1945년

1월 1일

• 경성가정여숙(京城家庭女塾)을 중앙여자상과학교로 인가.

1월 11일

• 중동학교를 사립 중동학교로 개칭.

2월 16일

• 윤동주(尹東柱) 사망.

이달

• 예수성심신학교를 경성천주공교신학교로 개칭.

3월 1일

• 경부선 복선 개통.

3월 18일

• 총독부, ‘결전(決戰) 교육조치’를 발표함. 초등학교 외의 모든 학교 수업 정지, 모든 학생을 강제 노동 또는 징용, 군대에 동원.

3월 22일

• 풍문여학교 설립 인가.

3월 31일

• 재단법인 강제학원(康濟學園) 설립.

4월

• 이화여자전문학교를 경성여자전문학교로 개칭.

5월 1일

• 서울 전차 요금을 10전(錢)에서 15전으로 인상.

8월 4일

• 창경원 개방 중지.

8월 15일

• 일부 여객 열차 운행이 중지됨. 중지 대상 : 서울~목포, 서울~청진, 부산~안동, 이리~여수, 평양~함흥 · 만포 · 희천 구간.

• 배재중학교 휴교.

• 영화 · 연극 · 흥행 등 일반 오락기관에서 자발적으로 공연을 중지하기 시작함.

• 사립중동학교를 중동중학교로 개칭.

8월 16일

• 서울학도대회 개최.

• 소련군이 입경한다는 풍설에 10만여 군중이 경성역에 쇄도함.

• 조선학술원 창설.

8월 17일

• 경성부 북아현정(北阿峴町) 북부정회(北部町會) 내 주민 200여 명, 자위단을 조직함.

• 식량영단본부, 경성 근교에 있는 7만여 석의 주요 식량을 경성 시내 배급소에 운반함.

8월 18일

•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조직 및 제1회 협의회 개최.

• 경성 재류 일본인 유지(有志), 신조선의 좋은 협력자와 재경성 동포 연락기관이라는 명분으로 ‘경성내지인세화회(京城內地人世話會)’를 조직함.

8월 19일

• 대륙극장에서 전경성정총대연합회(全京城町總大聯合會) 결성.

8월 20일

• 종로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전국체신인대회 개최.

8월 25일

• 중지되었던 각종 흥행이 재연(再演)됨.

8월 26일

• 서울~해주간의 유선 단절로 남 · 북통화가 처음으로 끊김.

8월 29일

• 경성의 중등학교 이상 학도들, 부민관(府民館)에서 조선학도총궐기대회를 개최함.

• 장훈학교(長薰學校)에서 조선약제사회 결성.

이달

• 아사히(旭) 의학전문학교를 세브란스 연합의학전문학교로 교명 복구.

• 동아고등공업학원(東亞高等工業學院)을 건국기술학교(建國技術學校)로 개명, 교지는 성동구 신당동 251번지로 이전함.

9월 1일

• 배재중학교, 8 · 15해방 때 휴교 후 다시 개교함.

9월 3일

• 휘문중학교에서 중등교육자대회 개최.

9월 4일

• 경성 시내 각 중등학교 체조선생과 체육관계자로 조직된 체육지도자회에서 학교 교련의 ‘호령집(號令集)’과 ‘도수체조용어집(徒手體操用語集)’을 결정, 발표함.

• 창간.

9월 5일

• 경성전기주식회사, 일본인 간부 퇴진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단행함.

9월 8일

• 경성일보사에 있던 한국인 사원을 중심으로 <조선인민보>를 창간함. 발행인은 처음에는 김우도(金迂道)였으나, 10월 하순부터 홍증식(洪璔植)이 맡아 좌익계열의 기관지 역할을 함.

9월 9일

• 일본어 방송인 710KHz 제1방송 폐지, 970KHz 제2방송을 제1방송으로 변경하여 우리말 방송 시작.

• 미국적십자사, 경성적십자병원을 접수함.

9월 10일

• 오후 3시 인사정(仁寺町) 승동예배당(勝洞禮拜堂)에서 한국애국부인회 발회식 개최.

• 재경 각 전문대학교 직원 약 7천여 명이 오후 2시 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전문대학교 교육응급대책협의회를 개최함.

• 명동성당에서 5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스펠만 미국 뉴욕 대주교 집전으로 해방 축하 미사를 거행함.

9월 11일

• 남북철도 운행 중지.

• 종로2정목 완영(完永)빌딩에서 조선적십자 창설 준비위원회 결성.

9월 12일

• 덕수국민학교에서 경성초등학교후원회연합회 결성.

9월 14일

• 주한미육군사령부, 경성 등 서울의 명칭을 ‘서울’로 통일하여 사용함.

9월 15일

• 중등교육자대회에서 조선임시중등교육자협회 결성. 9월 19일 각 학교장 이하 중등학교 직원 전체가 총사직 결행하기로 의결.

• 사단법인 조선방송협회(옛 경성중앙방송국)를 서울중앙방송국으로 개칭하고 미군이 접수함.

• 조선물산장려회, 종로 영보빌딩에 회관을 두고 10년만에 활동을 재개함.

• 동아교통공사(東亞交通公社), 한국인 종업원에게 접수되어 조선여행사(朝鮮旅行社)로 개칭됨. 종로 화신과 경성역전 안내소 등에서 업무 개시.

9월 16일

• 낮 12시 50분부터 북위 38선 이남 각 방송국 방송 재개.

9월 19일

• <해방일보> 창간. 사장 공산당중앙집행위원인 권오직(權五稷).

• 야간통행금지 시간을 오후 10시∼다음날 오전 4시까지로 단축 시행.

9월 20일

• 극단 서울예술극장 조직.

9월 22일

• 장도빈(張道斌), <민중일보>를 창간함.

9월 23일

• 효자동~신용산간 전차가 미군정청 모퉁이에서 탈선 · 전복되는 사고가 일어남. 3명 즉사, 50명 부상.

• 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조선육상경기연맹 결성.

9월 24일

• 광복 후 처음으로 서울 시내 국민학교 개교 및 교장을 한국인으로 임명.

• 4천여 명의 학생들이 서울운동장에서 집회한 후 시가행진함. 연합군 환영, 일본의 노예교육 타파, 학문과 연구의 자유 등 주장.

• 전국도서관대회를 개최, 조선도서관협회를 결성함.

9월 25일

• 미군정청, <경성일보>를 정식으로 접수함. 일본인 직원은 당분간 계속 고용. 일본정부 및 일본인의 재산을 미군정이 소유.

9월 26일

• 조선천주교회, 한국 독립 감사 미국 사제와 장병 환영식을 개최함.

9월 27일

• 광화문네거리 소방감시소에서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 신호를 부활함.

9월 28일

• 서울의 일반 가축 및 젖소[乳牛]를 검사 후 도살하도록 함.

• 경성여자배화학교 폐교. 재학생을 종로국민학교로 전출.

• 중앙보육학교 개교.

9월 29일

• 사학연구회(史學硏究會) 결성.

• 조선국악회 창립.

9월 30일

• 재경변호사들이 법조회를 조직함.

• 조선식량영단, 조선생활필수품회사로 개칭함.

• 숙명여고에서 조선원호단체대회 구성.

• 종로2정목에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결성.

이달

• 경주와 부여박물관을 국립박물관의 분관으로 편제.

• 경성척식경제전문학교를 보성전문학교로 교명 환원.

• 명륜연성소를 명륜전문학교로 환원 개교.

• 한양공업중학교 설립.

• 조선체육회 조직. 사무소는 종로 기독교청년회관.

10월 1일

• 서울 시내 각 사립 국민학교, 광복 후 처음으로 개교함.

• 전 총독부도서관을 ‘국립도서관’으로 현판을 바꾸어 닮.

• 중앙보육학교를 중앙여자전문학교로 개편.

• 미군정청,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를 접수함.

• 중등학교 이상 학교 개교.

10월 2일

• 통행금지 단축에 따라서 서울 시내 전차운행시간을 오전 5시~오후 9시 30분까지로 연장 운행함.

• 조선어학회, 일제에게 압수되었던 <우리말광> 원고를 경성역 내 조선운송주식회사 창고에서 발견 되찾음.

10월 4일

• 김영욱(金榮郁), 를 창간.

• 화신백화점(和信百貨店), 종업원 700명이 종업원대회를 열고 생활대책위원회를 조직함.

10월 5일

• 전문학교 이상의 학교, 광복 후 처음으로 개학함.

• 김제영(金濟榮), 를 창간함.

• 정인익(鄭寅翼), 을 창간함.

10월 7일

• 최초로 여자 교장이 임명됨. 경기고등여학교 : 고황경(高凰京), 무학고등여학교 : 차사백(車士百).

• 미군정청, 경성대학에 미국인 총장 · 교수를 임명함.

10월 8일

• 경성측후소 등 14개 출장소를 일본인으로부터 접수.

• 서울시내 전차운전노선을 도심지 중점 배차로 변경.

• 한국 소재 일본 신궁(神宮) 철폐 완료.

• 일본인 판 · 검사가 연루된 아편밀매단 검거.

10월 9일

• 조선어학회 주최로 천도교회관에서 한글날 기념식을 거행함. 기념식 후에 수송국민학교에서부터 시가행진.

10월 12일

• 항공 교육과 수송에 필요한 기재 정비를 위하여 여의도비행장에 조선항공협회 대표들의 출입을 허가함.

• 경성구휼동맹(京城救恤同盟), 무면허 구휼사업을 금지하는 방침을 발표함.

• 화신백화점(和信百貨店) 종업원자치위원회에서 종업원의 최저생활 확보를 요구하며 농성함.

• 경성구휼상담소, 전재민의 무면허 구휼사업을 규제하기 위하여 면허 발급을 개시함.

10월 13일

• 국립과학관 개관. 관장 곤충학자 조복성(趙福成).

10월 15일

• 시내 국민학교 교사 400명 신규 발령. 시내 국민학교 교사는 1,200명으로 증가.

• 영등포를 제외한 각 인보관(隣保館) 주최로 문맹 퇴치를 위한 국문강습회를 개최함.

• 국립도서관 개관.

• 경기공립고등여학교, 정동 1번지 옛 경성제일공립여자고등학교 교사로 이전함.

• 성균관 대성전에서 광복 후 처음으로 추계 석전제(釋奠祭) 거행.

• 세종로의 경찰관강습소를 조선경찰학교로 개칭.

10월 16일

• 종로경찰서, 영등포 종방(鍾紡) 창고물품 횡령사건 관련 일본인 경찰관들을 구속함.

10월 17일

• 경성제국대학을 경성대학으로 개편하고, 경학원(經學院)을 성균관으로 개칭.

• 서울대학교 총장에 해군대위 알프레드 크로후트(Alfred Crofte) 임명.

10월 18일

• 폭행을 행한 용산경찰서 일본인 경찰 체포.

10월 22일

• 경성여자전문학교를 이화여자전문학교로 교명 환원.

10월 23일

• 10월 24일까지 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전조선신문기자대회 개최, 조선신문기자회를 결성함.

10월 25일

• 밤 8시 10분경 서대문형무소에 구류 중이던 미결수 27명이 탈주하는 사고가 일어남. 26일 아침까지 10여 명을 제외하고 다시 체포.

10월 26일

• 서울시민보건체조단 조직.

• 서대문형무소에서 집단 탈옥한 미결수 대부분 체포.

10월 27일

• 10월 30일까지 경성운동장에서 제26회 전국체육대회 개최. 당시 대회의 정식 명칭은 ‘제1회 조선올림픽대회’.

• 혜화전문학교 개교.

• 최희남(崔熙南)을 중심으로 서울합창단을 재발족함.

10월 29일

• 조선학도대, 11월 3일을 ‘학생의 날’로 제정함.

10월 31일

• 서울 53개 공립 국민학교 교장과 교두(敎頭) 임명.

이달

• 조선인민원호회, 경성역 앞에 전재동포구호소를 설치함.

• 석탄상동우회(石炭商同友會)의 공급으로 시민에게 석탄 배급 실시.

• 서울 거리에 역마차가 등장함.

11월 1일

• 미취학 아동 취학을 위하여 서울 소재 일본인 국민학교 13개를 개교함.

• <중앙신문> 창간. 일본인 재등오길(齋藤五吉) 발행하던 조선상공신문사의 인쇄시설을 인수하여 김형수(金亨洙) · 황대벽(黃大闢) · 이상호(李相昊) 등이 발간.

• 국제통신 발족.

• 야간통행금지시간을 밤 0시~오전 4시까지로 단축 실시.

11월 2일

• 조선학도대, 11월 5일까지 학생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함.

11월 5일

• 시내 전차를 마포까지 운행하면서 72대에서 80대로 증차함.

• 경성전기주식회사, 전차 승차요금을 15전(錢)에서 50전으로 인상함.

• 서울 시내 공립 국민학교장회의 개최. 국어강습회 개최와 미취학아동 취학문제 결정.

11월 7일

• 경성대학 일본인 교수 60명 면직.

• 단군전봉건회(檀君殿奉建會)와 조선국술협회(朝鮮國術協會) 주최로 서울운동장에서 개천절 경축식을 거행함.

• 오후 10시 10분경 혜화정(惠化町) 동성상업학교(東星商業學校) 교실에서 발화하여 교사가 전소됨.

11월 8일

• 국립민족박물관 창립.

11월 9일

• 국악원 발족.

11월 10일

• 미군정청, <매일신보>에 재정조사를 명분으로 정간을 명령함. 실제 정간 이유 : 동 신문에서 미군정의 조선인민공화국 비난을 비판함.

• 6일 동안 성균관 명륜당에서 전국유림대회 개최. 성균관대학 설치 등 결의.

11월 16일

• 전국청년단체총동맹 결성.

11월 17일

• 중앙전화국장, 일본인이 소유한 전화의 양도를 인정하지 않음을 언명함.

11월 20일

• 경성부도서관과 종로도서관에서 도서대출을 다시 시작함.

11월 21일

• 서대문형무소를 서울형무소로 개칭.

• 해방 후 처음으로 명륜정(明倫町)~미군정청~시청 앞까지의 정기 노선버스 2대를 운행함.

• <매일신보>를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고쳐 속간함. 사장 오세창(吳世昌).

• 창간.

11월 23일

• 1940년 8월 10일 일제에 의해 <동아일보>와 함께 폐간되었던 <조선일보> 복간.

• 남대문통 총포화약회사에서 조선국군학교육성회발기인회를 개최함.

11월 24일

• 종로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조선빙상경기협회 창립.

11월 26일

• 경성부, 매월 24일을 ‘청소일’로 결정함. 시내 각 국민학교 5 · 6학년 학생을 동원해 청소하기로 함.

11월 28일

• 서울인민위원회, 시민생활대책위원회를 설치함.

12월 1일

• 1945년 8월 10일 일제의 강압으로 폐간되었던 <동아일보>를 중간(重刊)함.

• 서울운동장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환영회 개최.

12월 3일

• 국립박물관 개관. 초대 박물관장 김재원(金載元).

• 서울인민위원회 주최로 제1회 시민생활대책위원회 개최, 협동조합서울연합회기성위원회를 조직함.

12월 4일

• 국군학교를 광장리(廣壯里) 전 일본병사로 이전.

12월 5일

• 서대문구 냉천동 감리교신학교 내에 군사영어학교 설치. 미군지휘관 통역관 양성.

12월 6일

• 전국청년단체총연맹 서울연맹, 오후 8시부터 명월관(明月舘)에서 김구(金九) 환영회를 개최함.

• 조선문학건설본부와 프롤레타리아문화동맹, 조선문학가동맹으로 통합함.

12월 7일

• 극단 태극성, 조일좌(朝日座)에서 창립 공연.

12월 8일

• 천도교대강당에서 전국농민조합총연맹 결성.

• 조선군사후원회 · 한국광복군후원회 · 한국광복군군사원호회 등 3개 원호단체를 대한민국군사후원회로 통합.

12월 10일

• 조선사연구회 창립.

• 서울의 출판업자와 잡지사 대표 60여 명, 미군정청 회의실에서 출판문화협회기성회를 조직함.

12월 11일

• 미군정청, 국립법제도서관(國立法制圖書館)을 신설함. 초대 관장 장후영(張厚永).

12월 12일

• 조선건국대학(가칭) 창립기성회 조직.

12월 18일

• 밤 8시 40분경 원남정(苑南町) 197번지 한국민주당 총무 백관수(白寬洙) 집에 수류탄 투척사건이 일어남.

12월 19일

• 극단 조선, 창립공연 개최.

• 서울 차가인동맹(借家人同盟), 전 일본인 소유주택의 독점을 배격한다고 결의함.

• 경성부립도서관 종로분관을 경성부립종로도서관으로 독립 개관.

• 서울운동장에서 임시정부 개선을 환영하는 대회 개최.

12월 20일

• 황금정(黃金町) 약학전문학교에서 경성대학 외 20여 개 학교 대표 300여 명이 서북학우회총회결성식을 개최함.

12월 21일

• 조선부녀총동맹 결성.

12월 23일

• 서울운동장에서 순국선열추념대회 개최.

• 경성부청 앞에서 임시정부 환국환영 마라톤대회 개최. 해방 후 첫 마라톤대회로 80여 명 선수 참석.

12월 24일

• 용산공작소에서 최신식 기관차 제작 완성.

• 서울예술극장, 창립 공연.

12월 25일

• 극단 민예, 창립 공연.

12월 26일

• 경성음악학교 창립.

12월 27일

• 용산공작소에서 제작한 최신식 기관차로 수원행 시운전을 함.

12월 29일

• 조선인민보사(朝鮮人民報社)에 폭력단 약 20명이 침입, 인쇄공장 파괴, 사원 폭행 등을 감행함.

12월 31일

• 음악전문학교 설립 인가. 교장 현제명(玄濟明), 교사는 남산국민학교 구 교사. 1946년 2월 1일 개교 예정.

이해

• 창극 단체 국극사, 국도극장에서 창립 공연.

• <해방뉴스>를 제작, 극장에서 상영함.

• 경성부내에 종합배급제 실시.

• 박문사(博文寺) 폐지.

연관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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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년(丙午年), 1906년
신해년(辛亥年), 1911년
병진년(丙辰年), 1916년
신유년(辛酉年), 1921년
병인년(丙寅年), 1926년
신미년(辛未年), 1931년
병자년(丙子年), 1936년
신사년(辛巳年), 1941년
병술년(丙戌年), 1946년
신묘년(辛卯年), 1951년
병신년(丙申年), 1956년
신축년(辛丑年), 1961년
병오년(丙午年), 1966년
신해년(辛亥年), 1971년
병진년(丙辰年), 1976년
신유년(辛酉年), 1981년
병인년(丙寅年), 198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