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대 고분

오륜대 고분

[ 釜山 五倫台 古墳 ]

지역 부산

부산광역시 금정구 선동 하현(아랫선동)에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군이다. 고분군은 1940년에 만들어진 회동저수지(속칭 오륜대) 북쪽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수영강의 중류역에 해당되는 곳으로 동-서로 뻗은 나지막한 구릉(해발 60여m)을 이루고 있다. 고분군은 1967년 회동저수지의 확장공사로 수몰되었다가 1971년 가뭄으로 돌덧널(石槨)이 노출되면서 부산대학교박물관에 의하여 일부가 발굴되었고, 1995년 부산시 상수도본부가 수원지 준설작업을 진행함에 따라 1996년과 1997년에 걸쳐 나머지 부분이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 의하여 발굴되었다.

1971년의 조사에서는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 27기, 독널무덤(甕棺墓) 1기가 고인돌(支石墓) 1기와 함께 조사되었다. 돌덧널은 대부분 외덧널식(單槨式)이고, 1기(9·10호)가 이혈묘광창자형(異穴墓壙昌字形)의 주부곽식(主副槨式)이었다. 돌덧널의 크기는 길이 1.7-4.4m, 너비 0.5-1.0m 내외이고 장축은 대부분 동-서 방향이나 1기(9호)만이 남-북 방향이었다. 평면 장방형(長方形)의 돌덧널은 네 벽을 판석을 세워 조립한 것과 깬돌(割石)을 쌓아 축조한 것 2가지 형태로 구분되는데, 전자가 3기인 반면, 후자가 25기로 주류를 이룬다. 바닥에는 깬돌이나 판석을 깐 것도 있으나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1호분과 9호분은 뚜껑돌(蓋石)이 덮여 있지만 나머지에서는 뚜껑돌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많은 것들이 원래부터 뚜껑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돌덧널의 내부에는 제3호분에서 꺾쇠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나무덧널(木槨)이 사용된 것도 있었던 것 같다. 토기는 양 단벽측에 부장을 한 것도 있으나 한 쪽 단벽측에 부장한 것이 많았는데 대부분 북단벽측에 많이 부장을 하였다. 독널무덤는 돌덧널무덤인 28호분의 딸린무덤(配葬墓)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적갈색연질긴독를 중심독으로 하고 도질반형토기를 뚜껑으로 한 뚜껑식(有蓋式)이다. 출토유물로는 굽다리접시, 굽다리사발, 굽다리목긴항아리, 손잡이잔 등의 신라계토기류와 고리자루큰칼(環頭大刀), 검·투겁창(矛)·도끼·화살촉·덩이쇠(鐵鋌) 등의 철기류가 있다. 고분의 축조연대는 출토유물로 보아 대략 5세기 전반과 후반 사이로 추정된다.

1996년과 1997년의 조사에서는 삼국시대 분묘 64기, 조선시대의 움집터 2동, 석축 3기, 호상유구(濠狀遺構) 1기 등이 조사되었다. 조사된 삼국시대 분묘들은 구릉의 정상부에 밀집 분포하였는데, 조선시대 이래 이곳이 거주지역으로 되면서 대부분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무덤은 5-6세기대의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과 움무덤(土壙墓), 7세기대의 앞트기식돌방무덤(橫口式石室墓)으로 나눌 수 있다.

돌덧널무덤은 대체로 길이 3-4m, 너비 1m 내외의 세장(細長)한 장방형(長方形)이다. 장축은 등고선의 방향과 같은 남-북 방향이 많으나 구릉의 위쪽에 분포하는 것들은 등고선과 직교하는 동-서 방향이었다. 돌덧널의 벽은 하단에 냇돌(川石)을 세우고 그 위에 눕혀쌓기 한 것과 하단부부터 눕혀쌓기 한 것으로 구분된다. 바닥에는 사람머리크기의 냇돌을 1겹 깐 것과 바닥 전면에 자갈돌을 깐 것으로 구분되는데, 냇돌을 깐 것이 아래에, 자갈돌을 깐 것이 위에 분포하는 특징이 있다. 앞트기식돌방들은 파괴가 심하여 원상을 찾기 힘들었으나 주검받침(屍床)의 형태와 벽면 축조수법으로 돌방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돌방은 길이 2m 내외, 너비 1.5m 내외의 장방형으로 고분군의 위쪽인 동북쪽에 조영된 특징이 있다. 벽석은 큰 냇돌을 가로눕혀쌓기 하였고, 바닥에는 주먹크기의 냇돌을 1겹 또는 2겹 정도 깔아 주검받침을 만들었다. 구덩식돌덧널과 함께 조영된 움무덤은 길이가 3m를 넘지 않는 소형이다.

고분군에서 북쪽으로 2㎞ 떨어진 두구동 임석 고분군에서는 모든 분묘의 구조가 앞트기식돌방무덤인데 비하여, 이 고분군의 주묘제는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이라는 점에서 비교가 된다. 그리고 고분의 규모에 비하여 특히 많은 철기들이 부장된 특징도 있다. 고분군에서 출토되는 토기류가 대부분 신라양식토기라는 점에서 이 고분군은 부산지역이 신라에 복속된 후의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고분군을 축조한 집단은 1971년 조사때 13호분에서 출토된 피(稗)의 경우로 보아 밭농사(田作)을 주로 하는 농경취락의 구성원들로 추정되고 있다.

참고문헌

  • 오륜대 유적 조사 개보(洪潽植, 博物館硏究論集 6, 釜山廣域市立博物館, 1997년)
  • 五倫台古墳發掘報告書(釜山大學校博物館, 197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