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화나시에보문화

아화나시에보문화

[ Afanasievo 文化 ]

아화나시에보문화

아화나시에보문화

기원전 3,000년경 남부 시베리아에 분포한 동석기시대(銅石器時代) 혹은 초기청동기시대문화로서, 예니세이강 하안의 아화나시예바 고라(Afanasyeva Gora) 유적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주 분포지역은 예니세이강 상류의 미누신스크분지인데, 최근에 우코크(Ukok), 우스뜨-꼭싸(Ust-Koksa)등의 알타이의 산악지대와 중국 씬지앙성(新疆省)에도 커르무치(Keermuchi) 유적같이 중앙아시아에서도 속속 발견되고 있다.

아화나시예보 문화를 입증하는 대부분의 고고학적 증거는 무덤으로서, 집자리〔住居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며, 단지 예니세이강유역의 떼쁘쎄이(Tepsey) 다층위유적의 한 문화층에서 동 문화의 전형적인 토기가 공반된 화덕자리〔爐址〕가 발견된 예가 있을 뿐이다.

무덤은 군(群)을 이루어 밀집하며 주위에 낮게 원형의 석렬이 돌아가는 것이 특징이다. 무덤구덩〔墓壙〕은 대체로 괴석(塊石)으로 충전되었으나 돌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어 지역마다 그 양상이 다양하다. 널〔棺〕은 설치되지 않았으며 자작나무 껍질을 무덤구덩 주위에 돌린 예가 확인된다.

무덤구덩 내에는 불을 땐 흔적과 동물뼈 조각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매장 전후에 일정한 의식을 거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검〔屍身〕은 굽혀묻기〔屈身葬〕 및 옆으로굽혀묻기〔側臥屈身葬〕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펴묻기〔伸展葬〕는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홑무덤〔單人葬〕이 주를 이루며 일부 어울무덤〔多人葬〕도 보이는데, 부부장으로 추정되는 이인장(二人葬)의 경우 양 주검은 서로를 마주하고 누워있으며, 가족장으로 추정되는 경우도 발견되었다.

껴묻거리〔副葬品〕로는 주검 머리〔頭部〕 근처에서 발견되는 토기와 옷의 치레걸이〔裝身具〕인 짐승뼈나 이빨로 만든 장식품 등이 있다. 토기는 어깨가 축약된 반란형토기(半卵形土器)가 대표적으로, 전면에 찰문(擦文), 침선무늬〔深線文〕, 그리고 톱니무늬〔鋸齒文〕의 형태로 사선무늬〔斜線文〕가 새겨져있고, 구연부에 반관통의 구멍무늬〔孔列文〕가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 외에 간돌도끼〔磨製石斧〕, 뼈로 만든 소형치레걸이와 금속기로는 순동제(純銅製) 칼, 귀걸이, 낚싯바늘이 소량 발견된다.

양, 가축화된 소, 말의 뼈 등이 발견되었는데, 이전에는 이런 짐승의 목축 내지는 가축화의 증거가 전혀 발견되지 않다가 갑자기 발전된 형태로 출현한 것을 유라시아 초원지역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돈강유역 및 흑해 연안에 존재했던 ‘고대얌문화공동체(古代土壙墓文化共同體 Drevneyamaya Kultura)’를 영위한 주민이 이주한 결과로 본다. 이는 또한 첨저형(尖底形)의 반란형토기(半卵形土器), 장방형으로 판 무덤구덩, 유물복합체 등에서 두 문화의 유사성이 뒷받침한다. 또한 아화나시에보문화와 그 이전 시기에 시베리아에 존재하던 문화 사이에는 전혀 동질성이 없다는 점과 형질인류학적인 자료로 볼 때 아화나시에보인은 유럽인 계통이라는 점으로도 증명이 된다.

1950년대 데베쯔(Debets)의 연구에 의하면 아화나시에보문화를 영위한 주민의 형질적 특징은 장두장신(長頭長身)으로 시베리아에서 이전 시기에 거주했던 몽골로이드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라고 한다. 또한 알타이(Altai), 미누신스크(Minusinsk), 투바(Tuva), 몽골 등지에서 발견된 아화나시에보문화의 인골들은 약간의 지방적인 특색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고대얌문화공동체의 두개골과 기본적인 속성을 공유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화나시에보문화의 주체는 기본적으로 인도-유럽인에 속하지만 몽고인과 혼합된 특성이 나타나기 때문에 순수한 이주민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강인욱)

참고문헌

  • 소련고고학개설(데.아.아브두신 저, 정석배 역, 학연문화사, 1994년)
  • 시베리아의 선사고고학(최몽룡·이헌종·강인욱, 주류성, 200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