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룡리 유적

삼룡리 유적

[ 鎭川 三龍里 遺蹟 ]

지역 진천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삼룡리에 위치하는 철기시대에서 백제시대에 이르는 토기가마 유적으로, 1986년 이래로 한남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되었다. 1987년도에 1기, 1988년도에 2기, 1989년도에 2기, 1990년도에 6기 등이 조사되었다. 삼룡리에서 발굴된 가마는 크게 6군으로 분류된다. 1군은 삼룡리 88-1·2호와 움집자리(竪穴住居址) 2기, 2군은 삼룡리 89-1호, 3군은 삼룡리 90-1-6호, 4군은 삼룡리 89-2호 및 움집자리 2기, 5군은 87-1호와 폐토기 퇴적장(86년도 발굴) 등이다. 이 중 대표적인 가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88-1호 가마는 야산 경사면에 바닥과 벽은 지하로 들어가고 천장부는 지상에 나오게 설치한 반지하식 굴가마이다. 내부는 점토를 두껍게 발라, 바닥은 두께 3㎝, 벽의 최대 두께는 10㎝의 소결점토(燒結粘土)로 되어 있었다. 앞으로부터 아궁이, 연소실, 소성실의 3부분으로 이루어졌는데 유일하게 아궁이와 연소실이 수평으로 연결되어 있다. 전체길이 5.4m, 소성실 최대너비 1.3m였고, 소성실 바닥은 13˚의 경사면을 이루고 있다. 가마터 앞에 폐토기와 재의 퇴적층이 형성되었는데, 폐토기는 주로 타날문토기였으나 경질무문토기편도 약간 섞여 있었다.

89-2호 가마는 낮은 야산 능선 아래 경사면에 설치되었는데, 가마의 잔존상태와 지형으로 보아 연소실쪽으로부터 야산 경사면 아래 지하로 굴을 파서 설치한 것이었다고 판단되었다. 가마의 기본구조는 앞의 초기 가마와 같이 수직식 연소실 뒤에 소성실이 있는 형식인데 전체 규모가 확대되었고, 소성실의 평면은 가운데 배가 부른 기미가 있으나 세장방형(細長方形)에 가깝다. 수직식 연소실의 바닥은 연소실 바닥에서 일단 얕은 턱을 두고 올라간 다음 약 20˚의 경사면을 이루고 있다. 뒷벽쪽이 잘려나가 가마 전체의 길이를 알 수 없었으나, 잔존 길이 5.7m였고, 소성실의 최대너비는 1.9m이다.

87-1호 가마는 폐토기 퇴적장(86년도 발굴)과 약 7.5m의 거리를 두고 위치해 있다. 가마 입구인 아궁이쪽은 완전하게 남아 있으나 가마 상부는 모두 파괴되었고, 소성실 바닥도 북쪽 끝 부분이 잘려 나갔다. 요(窯)의 장축은 야산의 능선방향과 직교하며, 그 형태는 지하식 굴가마로 추정된다. 잔존한 가마 전체의 길이는 5.9m, 최대너비 3m였으나 원래의 길이는 6m가 약간 넘었을 것이다. 아궁이 벽에는 점토를 발랐던 흔적이 없고, 소성실 벽에는 원래 점토를 발라 굳어진 점토막이 형성되었으나 대부분 탈락되고 일부만 남아있다. 출토유물은 흑회색경질토기로 6개체분이 수습되었다. 기형은 둥근바닥항아리, 독모양토기, 입곧은항아리, 바리모양토기, 그릇받침모양용기이고 받침모루도 출토되었다.

이들 가마의 특징은 평면형태가 장타원형이며, 연소실과 소성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소성실의 바닥은 연소실에서 일단 야트막한 턱을 두고 올라간 다음 완만한 경사면을 이루는 굴가마이다. 또한 연소실 앞이 수직으로 이루어져 있는 수직식 연소실이라는 점과 굴뚝시설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특이하다.

토기 가마터 이외에도 폐토기 퇴적장 1개소와 움집자리 4기가 발견되었다. 폐토기 퇴적장은 1986년도에 조사되었는데, 여기에는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즉 흑회색경질토기, 회백색연질토기, 적갈색연질토기가 있다. 흑회색경질토기는 태토가 아주 곱고, 표면에 자연유(自然釉)가 덮히지는 않았으나 고화도로 소성된 석기질의 토기로 납작바닥바리모양토기, 목이 약간 길게 뻗은 입곧은항아리와 둥근 몸체의 대소 항아리, 난형 몸체의 항아리가 있다. 회백색연질토기는 소성온도에 여러 가지 차이가 있어 경질에 가까운 것부터 연질까지 다양하다. 기형은 독모양토기, 난형항아리로 독모양토기는 입술부까지 의사승석문(擬似繩蓆文)이 타날되었으며, 항아리모양토기는 목을 제외한 어깨부부터 타날한 것이 대부분이다. 적갈색연질토기는 태토에 석립이 전혀 섞이지 않은 아주 고운 태토로 만들어진 것과 굵은 석립이 많이 섞인 거친 것까지 다양하며 소성도도 역시 경질부터 연질까지 다양하게 있다. 집자리는 반타원형 내지는 말각방형(抹角方形)의 움집자리로 일부는 작업장으로 추정되는데 역시 많은 타날문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 百濟土器窯址特別展(韓南大學校 博物館, 1993년)
  • 鎭川 三龍里遺蹟과 原三國時代 土器(崔秉鉉, 發表要旨, 제13회 韓國考古學大會, 1989년)
  • 忠北 鎭川地域 百濟土器 窯址群(崔夢龍·崔秉鉉, 百濟時代의 窯址硏究, 文化財硏究所, 198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