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일기

승정원일기

[ Seungjeongwon ilgi (Diaries of the Royal Secretariat) , 承政院日記 ]

요약 조선시대에 왕명(王命)의 출납(出納)을 관장하던 승정원에서 매일매일 취급한 문서(文書)와 사건을 기록한 일기. 1999년 4월 9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승정원일기

승정원일기

지정종목 국보
지정일 1999년 4월 9일
소장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재지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103호 동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신림동,서울대학교)
시대 조선
종류/분류 기록유산 / 전적류 / 필사본 / 일기류
크기 3,243책

1999년 4월 9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승정원에서 편찬한 일기로 필사본이며, 3,243책이다. 이 일기의 작성은 승정원의 주서(注書)와 가주서(假注書)의 소임으로, 한 달에 한 권 작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사건이 많을 경우에는 2권 이상으로도 작성하였으며, 반드시 그 다음달 안으로 완성하여 보존하였다.

원래 조선 개국 초부터 일기가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어 1623년(인조 1)부터 1894년(고종 31)까지 270여 년간의 일기만이 현존한다. 또, 1744년(영조 20)의 승정원 화재로 인하여 《승정원일기》의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1746년(영조 22)에 일기청(日記廳)을 설치하고 홍계희(洪啓禧)·임정(任珽)·이철보(李喆輔) 등 45명에게 개수(改修)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선조와 광해군 시대의 사료(史料)는 거의 소실되었으므로, 1623년부터 1721년(경종 1)까지의 일기만 개수하기로 결정하여 1747년(영조 23)에 548책의 개수를 완료하였다. 이 책의 개수시에는 기사마다 그 출처를 명시하고, 책 끝에 서역낭청(書役郞廳)과 교정낭청(校正郞廳)의 성명을 기입하여 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한 것이 하나의 특색이 되었다.

1888년(고종 25)에 또다시 승정원에 화재가 발생하여 1851년(철종 2)부터 1888년까지의 일기 361책이 소실되었으므로, 1889년에 박용대(朴容大)·김종한(金宗漢)·김병수(金炳洙)·민영달(閔泳達) 등 15명에게 재차 개수토록 하여 1890년에 이를 완료하였다. 이 《승정원일기》는 1894년 갑오경장(甲午更張) 이후 관제(官制)의 변경에 따라 《승선원일기(承宣院日記)》 《궁내부일기(宮內部日記)》 《비서감일기(秘書監日記)》 《비서원일기(秘書院日記)》 《규장각일기(奎章閣日記)》 등으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국권침탈 때까지 계속 작성되었다.

이는 조선시대의 최고 기밀기록이며,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일성록(日省錄)》 등과 더불어 국사연구에 귀중한 사료이다. 1961년부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원본의 초서(草書)를 해서(楷書)로 고치고 구두점을 달아 축쇄(縮刷)한 영인본이 간행되었다. 2001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